(번역) ‘기독교 예술’은 안전할 수 있다. 그런데 좋은가? By Ethan Ren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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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친구와 함께 있다가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어떤 타입의 음악을 듣느냐고 물었고 그는 내게 자신이 ‘기독교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그게 장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기독교인들은 모든 장르의 범위에 걸쳐서 음악을 만들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메탈 밴드의 상당수는 기독교인들이다. 하지만 나는 존 포어맨이 "사람들은 구원받았다. 사람들은 크리스천이다. 음악은 크리스천이 아니다. 예수님은 음악이 천국에 가도록 하기 위해 돌아가시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람들을 위해 돌아가셨다."는 말에 대해 지적한 것을 좋아한다. 


오늘날 기독교 예술에 무슨 일이 있는가?

최근 나는 기독교 예술과 우리가 세상의 창조적인 시도들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생각을 많이 했다.

Michael Gungor는 그와 친구들은 첫 5초만 들으면 어떤 음악이 ‘기독교적'인지 실패하지 않고 맞출 수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음악들이 더 가짜같고 진부하기 때문이다.

Bono는 기독교 예술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실함이 결여되어 있는데, 성경의 찬송가책인 시편에서는 진실함이 너무도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나는 기독교 미디어계 자체가 독특한 틈새 시장을 개척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들은 최고의 영화, 가장 독창적인 음악 또는 가장 독특한 책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만들어지는데에는 일정한 경계가 있는 경향이 있고, 이 경계는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다른 말로 사람들이 기독교 미디어를 지속적으로 보는 이유는 그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비 로비(오클라호마에 있는 공예품을 파는 가게 - 역주)에서 원본처럼 보이지만 대량생산된 키치한 예술품을 사거나 '빈티지'한 나무에 좋은 구절이 새겨진 것을 살 수 있지만, 최소한 이것에는 욕이나 누드가 없을 것이다. 

많은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안전함과 대피처가 정직, 진실성 그리고 위험보다 더 소중한 세계에 속하고 있다.

우리는 좋은 것보다는 안전해지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C.S 루이스가 나니아 연대기에서 하나님을 아슬란이라는 캐릭터로 표현한 것과 정확하게 반대이다.

“아슬란은 사자에요. 아주 대단한 사자.”

“오오” 수잔은 말했다. “나는 그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안전한가요? 나는 사자와 만난다는 게 불안하게 느껴져요.”

“안전?” 비버가 말했습니다. “누가 안전에 대해서 말했나요? 물론 그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선합니다. 그가 그 왕이라고요. 내가 말했잖아요.”

이것이 내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그는 안전하지 않지만 그는 선하고 좋으신 분이다. 쓰나미의 아름다운 힘이나 파괴적이고 슬슬 기어오는 회오리바람처럼 하나님은 안전하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분은 좋으시고 아름다우시다.

미국의 기독교는 어떤 것은 허용되고, 어떤 것은 의심스럽고, 어떤 것은 절대로 금지된 공간을 만들었다. 나는 ‘재즈 같은 하나님은’이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 웃어버렸다. 이 영화는 더 통렬한 것이 되어야 했다. 기독교 영화가 되기 위해서 그들은 영화 전체에서 욕설을 조금 사용하였지만, 더이상 나쁜 것은 없었다.

나는 영화관에서 걸어나오면서 이 영화에 대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문했다. 내 대답은 다른 모든 기독교 미디어처럼,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상당히 좋다. 기독교 영화로서는.

왜 기독교인들은 다방면에 걸쳐서 좋은 영화나 음악을 만들 수 없는가?

하지만 나는 세상에서 일하는 기독교인 창작자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컨저링 영화의 창작자들은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영적 세계의 실제에 대해 굳어있는 미국인들을 일깨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의 크리에이터 역시 우리 주변에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들을 마법이라는 상징을 사용해 비슷한 사명을 갖고 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선두적인 메탈 밴드 대부분이 기독교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August Burns Red, The Chariot (long live), The Devil Wears Prada 등이 그렇다. 나는 종종 왜 기독교인들의 집단에서 이런 장르는 분명하게 번성하고 있는 동안, 다른 장르는 주류 미디어를 따라가지도 못하고 있는지 놀라고는 한다.(나는 어쩌면 이것이 하드코어가 투쟁에 대해 열려있고 분노를 격려하는 장르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이러한 창작활동들은 주된 것이라기 보다는 예외에 가까워 보인다. 기독교인들은 다른 기독교인들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위한 벽과 경계선 안에서 피난처를 찾는것처럼 보인다.

“내가 이런 것을 말해도 될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기독교인이 이러한 생각을 세상의 다른 것들보다 더 많이 생각한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작업이 장애물이고, 결국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하는데 방해물이 된다.

우리가 그 속에서 일할 수 있는 벽을 쌓는다면, 우리는 한줌의 기독교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부응할 수 있겠지만, 그 외의 세계에 미치는 것에는 실패할 것이다. 예수님의 말처럼 우리가 갖고 있는 ‘비둘기 같은 순결함’을 조금 내려놓고, 더 영리해지고 독창적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 예술에는 자유가 필요하다

올해 초 크리스천 래퍼 Lecrae가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해 발언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에 대한 반발이 그와 그가 자신의 작품을 창조하는 방식을 바꾸어놓았다. 사람들은 그가 ‘기독교적인 것들로 랩을 하는 착한 크리스천 래퍼’라는 이미지를 원했지만, 그가 자신이 마주하고 몸부림치고 있는 진짜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자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에 맞서기 시작했다.

Lecrae가 크리스천 아티스트가 말할 수 있도록 허락된 경계의 바깥을 배회하기 시작하자 다른 이들은 예민해졌다.

나는 블로그의 '게시' 버튼을 누르면서 내가 세상에 내보인 것에 대해서 불안해한 적이 많았다. 너무 나갔나? 나는 종종 나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이번에는 너무 많이 나누었나? 

그래도 내가 정직함과 연약함에 대해 말할 때마다 피드백은 항상 긍정적이었다. 나는 꾸며내고 세세하고 예의바른 대화에 기독교인들이 싫증나있고 우리는 이 세계와 우리의 영혼의 뒤틀린 부분을 다룰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기독교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즐겁고 편안한 세상에서 고통과 분노와 슬픔과 분쟁이 없이 사는 것인 척 해왔다. 우리가 이러한 현실들에 눈을 더 뜨게 될 때 우리의 예술과 목소리와 우리의 증언이 더 강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모든 것을 다 가진 척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더 정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세상에서 나의 분노와 외로움과 깨어짐을 더 이상 숨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당신도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으로 세상의 부서지고 상처받은 장소들을 찾아가 만지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셨는지 증언하는데, 인위적이기 보다는 정직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예술은 우리의 편안한 커뮤니티 바깥에 있는 누군가에게 도달하는 것을 막는 거품을 관통해야 한다.


Ethan Renoe 에단 레노는 강연자, 작가, 사진작가로 최근에는 로스 엔젤러스에서 살고 있다. 그는 6개의 대륙에서 살았고, 6개의 학교를 다녔고, 28개의 직업을 가졌었고, 한손 턱걸이를 4개 했다. 그는 최근에 무디 성서학원을 졸업했다. ethanrenoe.com에서 글을 확인할 수 있다. 원문은 Churchleaders.com에 게시된 "‘Christian Art’ May Be Safe, But Is It Good?" 이며,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번역하여 한국교회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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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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