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대중문화 읽기] 수다 꽃이 피었습니다: 동백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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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이하 '김'): <동백꽃>이 최근 시청률 20%를 넘으면서 화제성과 대중성, 그리고 사회적인 의미를 고루 갖춘 드라마로 손꼽히고 있다. 종영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드라마가 갖고 있는 함의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학생의 시선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소개 좀 해달라. 

고나현(장신대 신대원, 이하 '고'): <동백꽃> 보고난 후 친구랑 이야기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린 신학생 고나현이다.

장조리나(장신대 신대원, 이하 '장'): 드라마를 좋아하고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는 신학생 장해림이다. 장조리나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종영을 몇 회 앞둔 11월 13일 수요일에 만난 두 학우. 왼쪽이 장해림 학우, 오른쪽 고나현 학우.

: 평소에 드라마를 잘 보나?

장: 많이 본다. 퓨전사극 같은 드라마를 좋아한다.

: 아주 많이 보지는 않는데 주기적으로 하나씩 본다. 넥플릭스로 보는데 <동백꽃>도 넥플릭스로 보고 있다. 드라마라는 장르를 좋아한다. 

: 그 이유가 있나? 드라마만의 매력이라면?

고: 영화는 2시간 정도면 끝나는데 드라마는 섬세하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고 캐릭터도 자세히 다루고. 그게 재밌는 것 같다. 그런 드라마가 많지 않은데 <동백꽃>은 모든 캐릭터를 다 입체적으로 다루니까 더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장: <동백꽃>은 코믹과 스릴러 요소가 잘 버무려져 있다. 동백이가 주인공이라 서사를 끌고 가지만 시선을 분산시킨다고 해야 하나? 우울함도 전복한다. 

김: 장르가 코믹, 로맨스, 스릴러다. 어딘가 인터뷰에서 비율이 4:4:2라고 하던데 <동백꽃 필 무렵> 작가가 필력이 있다. 임상춘이라는 30대 초반의 여성 작가다. 필명인데 여성인지 남성인지 몇 살인지 알 수 없게 의도적인 게 있는 것 같다. <동백꽃>은 세련되게 기존의 선입견을 깨면서도 모성과 가족, 마을이라는 소재로 세대를 아우르는 전통적인 감성도 있다. 예를 들어 외부적인 환경은 완벽하고 내면적으로 연약한 상류층의 남성에게, 사회경제적 여건은 취약하지만 내면은 건강한 젊은 여성이 의존하고 감정적 지지를 제공하던 기존의 공식을 비튼다. 그러면서도 옹산이라는 가상의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 안에서 동백이를 통해서 주변 여성들이 각성하고 따뜻하게 변화되는 모습을 그린다.


옹산이라는 마을

장: 모순적인 부분도 있는 게 동백이에게 팔자 센 여자라고 박복하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마을에 도박장도 있고.

고: 처음에 동백이가 등장했을 때 젊은 여성에 대한 다양하지만 불쾌한 시각을 보여준다. 술집 여성, 남성을 홀리는 유혹자로 보는 시각이 계속 동백이를 괴롭힌다. 미혼모로서, 젊은 여성으로서 살아갈 때 사회의 시선들이 모순적인 게 너무 많다. 성적 대상으로 보면서 낮춰 보고, 술집 여자로 보는 사회적 시선을 너무 잘 그렸다.

"근데요. 사장님. 골뱅이 만 오천 원, 두루치기 만 이천 원, 뿔소라가 팔천 원. 이 안에 제 손목 값이랑 웃음 값은 없는 거예요."(동백)

"뭐?"(규태)

"저는 술만 팔아요. 여기서 살 수 있는 건 딱 술, 술뿐이에요."(동백)

김: 동백이가 그런 시선들에 단호하게 대처하지만 쉽지 않은 부분이 많다. 마을이 좁으니까 더 밀도 있게 보여진다.

고: 일부러 그렇게 설정한 게 보인다. 사회는 너무 거대하고 익명성이 담보되니까 시선을 분간하기가 어려운데 마을을 좁게 설정해서 잘 보인다. 

김: 과거에 종렬이가 옹산이란 도시를 정이 많고 따뜻한 마을로 묘사했는데 실제 현실은 다른 부분이 있다. 그런데 어려움이 생겼을 때 도와주기도 하고.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관계가 그 안에 있다. 드라마 안에서도 기존의 여성에 대한 이상적인 여성상에 부합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용식 엄마, 동백이 엄마, 동백이와 향미를 포함해 자영과 제시카 엄마 등 정상적인 남성의 부재, 보호자의 부재 가운데 생존하고 다른 누군가를 부양하며 돌보는 여성들이 연대해가는 모습들이 멋있었다. 까불이 사건을 계기로 마을이 마을다워진다.


여성서사 문화콘텐츠의 등장

장: 요즘 드라마 작가들 사이에서 공부를 많이 하고 각성이 일어나는 것 같다. 기존의 드라마가 여성 시청자들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했다면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너희가 환상을 만들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 같다. <멜로가 체질>도 그렇고, 이번에 공효진 나온다고 해서 봤는데 대사와 스토리, 여성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공포를 다 집어넣었다. 참 잘 만들었다고 하면서 봤다.

고: 얼마 전에 동백이가 엄마가 사라지고 향미까지 죽으니까 눈빛이 변하면서 각성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워낙 연기를 잘하기도 했지만 각성이라는 주제가 좋았다. 요즘 그런 내용이 영화나 드라마에 많이 나온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서 엘사도 그렇고.

장: 용식이가 동백이를 따뜻하게 격려하고 힘을 주지만, 동백이는 그에게 완전히 의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깨닫는 모습이 좋았다. 게다가 동백이가 각성하는 게 용식이 때문이 아니라 향미 때문이라는 게 너무 좋다. 여자가 여자를 각성시키는 것.


다양한 여성들

고: 향미도 엄청난 의미를 담은 캐릭터다. 꽃뱀 프레임에 갇힌 여자로 나온다. 향미가 내뱉는 대사 중에 자신은 뒤가 구린 남자들한테만 보인다는 식의 대사를 한다. 그걸 듣고 소름이 끼쳤다. 꽃뱀 논란이 있을 때 여자에게 뭐라고 하는데 사실 남자도 동조를 한 거다. 바람을 피고 돈을 주고. 그런데 모두가 여자에게 포커스를 맞춰서 쓰레기를 만들어버린다. 

“무슨 은혜요? 제가 뭘 그렇게 신세를 졌어요?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저 아무 짓도 안했어요. 전 죽어라 열심히 사는 것 밖에 안 해요. 근데 왜 다 맨날 제 탓인지 모르겠어요. 그냥 저 좀 놔두세요.”(동백)

장: 마녀사냥을 하는 거지. 자영도 너무 강렬한 캐릭터다. 노규태가 그렇게 찌질한데 자영은 그렇게 기를 못 펴고 살았다. 그런데 동백이에게 변호사 선임하라고 명함 줄 때 너무 멋있었다. 규태도 점점 자영이가 멋있는 여자라는 걸 깨닫는다. 극중에서 아이를 못 낳은 여자로 나오는데 시어머니들은 거의 대부분 똑같은 말을 한다. “너가 잘했어야 아기가 들어서지.”와 같은.

장: 강종렬 와이프도 짠하다. “나 제시카야.”라며 자신을 내세우는데 집에서는 엄마가 “넌 아빠 무섭지 않아?” “아빠 알면 큰일이야” 아빠에 대한 공포와 권위를 말한다.

김: 종렬이의 아내로서 대중의 인식에 부합하기 위해 계속 살을 빼고. 그러니까 거기서 히스테리도 나오고. 그런데 화살은 또 다 여자에게만 가고. 강하늘 엄마도 자기와 비슷한 인생을 산 동백이에게 연민을 느끼는데 막상 자기 문제가 되니까 현실적인 부분에서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장: 그리스도인은 사랑하며 자비로워야 되며 항상 타인에게 관대해야 한다고 설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모습이 많다.


가장, 사장, 여성

장: 종렬이 필구에게 장난감 사주고 책가방 사주고 하는데 “아빠랑 살래?”라고 물을 때 필구가 엄청 운다. 우리 엄마도 혼자 나를 키우셨는데 아빠가 양육비를 하나도 안 줬다. 그러니까 엄마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미용 기술 하나로 날 키웠는데 엄마도 동백이처럼 똑같이 당한 거다. 여자 혼자 애 키우니까 동백이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남자들이 집적대고. 용식 엄마나 동백이처럼 우리 엄마가 당한 거지. 경제력까지 딸리니까 강해져야 하고 악착같이 살았다. 그래서 애 혼자 키우는 미혼모나 이혼모에 공감이 많이 된다. 

김: 사역자도 마찬가지지만 사회에서 여성은 가장이 아니기 때문에 사례를 덜 줘도 되고, 권고사직을 당하기도 하고, 반대로 남자는 능력이 부족해도 계속 기회를 주고 승진이 되고 심지어 범죄를 저질러도 너무 관대하다. 여성도 똑같이 생계부양자이자 누군가의 보호자로 살아가고 있는데 차별받는다. 동시에 현실적으로 여성에게 생계부양 수단이 얼마 없다. 미용이나 식당, 술집이라든지. 서비스업을 할 수 밖에 없으니까.

장: 그런 관점에서 나는 남자는 돈, 남자는 경제력 같은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 그게 같이 악순환이다. 서로 부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의 각성이 필요하다.

고: 업에 대한 것도 동백이가 까멜리아 사장인데, 술과 안주를 파는 곳의 사장인데 그걸 사장이라고 인정 안 해준다. 사장,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줌마라고 낮춰 부른다. 제대로 부르는 사람이 유일하게 용식이다. 그런데 동백이도 이런 상황을 차별적이라고 인식하기보다는 자신을 “두루치기 하나 팔아서 우리 필구 먹여 살리는 거야”라고 자기 업에 대해 무시하는 시선으로 내면화되어 있다. 그런데 용식이 덕분에 자기가 사장이라고 각성하게 된다. 종렬이가 나타나서 흔들릴 수도 있는데 경제적인 게 필요한 전부가 아닌 거다. 가장으로 가정을 책임지는 한 사람으로 서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김: 말 한마디,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드라마에서 말하는 것 같다. 

고: 동백이에게 답답했던 건 수그러들고 자기표현 못하고. 그런 게 답답하면서도 감정이입이 됐다. 백소영 교수님의 책 <페미니즘의 기독교의 맥락들>에서 여성적 죄에 대해 자기표현을 못하고 희생자의 자리에서 머무르려고 하는 거라고 하셨는데 그게 동백이에 대입이 되더라. 세상의 많은 여성들이 리더로 나서기 힘들어 하고 사람 많은 식당에서 ‘저기요’ 한 마디 하는 걸 힘들어 한다. 자꾸 수그러들고 희생하려고 하고 보조적 역할 하려고 하는 여성이 많은 것 같다.

장: 사모하겠다는 신학생들도 있다.

고: 신학교 여학우들도 강한 이미지로 비춰질까 염려할 때가 많다. 제 안에도 그런 마음이 있다. 어디에서 온 건가 싶다. 왜 강한 여자로 비춰지길 두려워할까? 여성들끼리 응원해주는 게 필요한 것 같다.

“동백씨, 이 동네에서요. 제일 세고요. 제일 강하고, 젤로 훌륭하고, 젤로 장해요.”(용식이 동백에게)

“나 원래 폼 나. 173에 8등신. 끝내주는 아들 있고 여기 자영업 사장님이야. 나 혼자서도 폼나는 사람이었어.”(동백이 종렬에게)

"내 걱정해주는 사람 하나가 막 내 세상을 바꿔요."(동백)


세 남자의 사랑

장: 나는 종렬이와 하늘이를 대비해봤을 때 종렬이도 동백이를 사랑했지만 둘의 큰 차이는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이 용식이에게 있었고 성장해나가고. 그런데 종렬이는 동백이를 사랑하지만 자기중심적이다. 주변에서 보면 발전적인 사고를 하는 남자 신학생들도 막상 연애나 결혼 같은 자기의 문제 앞에서는 적용이 안 된다. 이 친구들도 정작 자기 문제에서는 사모감이나 참한 친구를 와이프로 둔다거나 하는 등. 

고: 종렬이가 그리워하는 게 동백이일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오히려 동백이가 했던 희생적 사랑, 내조, 그런 것을 목말라하는 게 아닐까. 제시카를 대할 때 더 드러나는 것 같다. 필구를 만났는데도 사과 한 마디 안 하고. 필구도 안타까운 게 엄마를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시선이 내면화 된 거 아닐까? 딸이었으면 그랬을까 싶다. 아들이니까 주변에서 엄마를 네가 지켜줘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내가 왜 쌈닭이 된 줄 알어? 엄마, 엄마 때문에. 내가 왜 엄마를 지켜야돼? 엄마가 나를 지켜줘야지, 나는 1학년인데, 1학년이 왜 엄마를 지켜?”(필구)

“내가 너한테 나 지켜달라고 그랬어?”(동백)

“나도 귀찮아. 근데 내가 엄마를 지킬 수밖에 없다고, 나빼고 세상 사람들이 다 엄마를 싫어하니깐”(필구)


김: 명대사들을 가져왔다. 마무리 차원에서 하나씩만 뽑아서 이야기해보자.

“다정하고 싶어요. 다정은 공짜니까. 그냥 서로 좀 친절해도 되잖아요?”(동백)

고: 동백이 대사라서 이걸 뽑았다. 동백이가 멋있는 게 강자에게는 강하고 약자에게는 약하다. 드라마가 지향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나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강강약약으로 사는 게 하나님의 뜻인 것 같다.

김: 사회는 강약약강(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하게)이지만.

장: 노규태에게 땅콩을 안 줄 때 정말 좋았지.(웃음)


“내 팔자가 니 꺼야? 내 팔자는 내 소관, 핀대도 내 덕, 꼬여도 내 탓! 아니, 니가 뭔데 내 팔자를 폈다 말았다 해?”(동백)

장: 내 인생, 내 팔자를 외부에서 규정하는 경우가 있다.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혹은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면서 서로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 이런 걸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김: 그런 지점을 드라마가 잘 다루는 것 같다. 이걸 신앙적으로 표현한다면?

장: 진리가 자유케 하는 것? 자유가 진리케 하기도 하고? 양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창조영성에 관한 책인데 기독교가 개인을 죄인으로 보고 속량 받는 구원을 강조하다보니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드라마가 동백이 안의 고유함, 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힘과 역량을 드러내라고 격려하는 것 같다. 그러면 점점 우리가 가진 시야들이 넓어지고 자유케 되는 것들이 있을 거라고. 방종이 아닌, 자유가 너희를 진리하게 하리라고 말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동백)

김: 희망적인 대답을 하고 싶어서 골랐다. 사람 자체가 기적이기도 하지만 사람으로 말미암아 기적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인간이 홀로 서기까지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마을에 부정적인 단면도 있으나 까불이를 계기로 서로 끈끈해지고 가장 보통의 영웅들이 깨어나고. 동백이처럼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 서고, 서로가 서로에게 주체적인 누군가가 되도록 도움을 주는 것. 그때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수다 꽃에 함께한 사람들

동백꽃 기다리는 맛으로 사는 신학생 고나현(장신대 신대원 1학년)

아름다운 가능성을 읽어주고 그것을 호명하는 일을 하는 천국소녀 장조리나 (장신대 신대원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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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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