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대중문화 읽기] 조커는 어떻게 선을 포기하고 악인이 되는가? - 영화 <조커>



악인은 태어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선악에 대한 인간 본성 고찰은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었다.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성선설과 성악설은 인간의 선한 본성을 확산시키자는 쪽이나 악한 본성을 억제하고 선한 행위로 이끌자는 쪽이나 모두 혼란스럽고 피비린내 나는 실제 너머의 평화를 열망했다. 

최근 개봉한 <조커>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고 한국에서 개봉 첫날부터 흥행 열풍을 일으켰다. 코믹스 영화로서 드물게 대중성만큼이나 작품성까지도 인정받은 것이다. 히어로물이 아니라 빌런을 다루면서 선악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 끝에 첨예한 논쟁의 지점에 도달했다. 그것은 범죄를 양산하고 확산시키는 사회에 대한 경고와 범죄에 대한 정당화 사이에서다. 

새로운 시선, 새로운 이야기

DC의 배트맨 시리즈는 여러 차례 재해석되고 새롭게 창조되어 왔다. 그 중에서 가장 뜨거웠던 작품이라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시리즈이다. 놀란은 부정의와 부패가 만연한 고담시를 지키는 배트맨(크리스천 베일)의 탄생과 인생에 집중하는 한편,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그저 이유 없이 재미를 위해 악을 저지르는 광기 어린 모습에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악당으로 손꼽곤 했다. <조커>의 토드 필립스 감독은 DC 원작의 큰 줄기를 가져오면서, 배트맨 없이 조커의 기원에 좀 더 현실감을 싣는다. 타인을 향한 조롱이 곧 웃음이 되는 잔인한 사회에서 “세상에 웃음을 주기 위해 태어난” 한 남자가 모든 것을 잃고 광기를 획득하는 순간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는 전작처럼 화학물질에 빠져 생긴 흉터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웃음’을 강조하며 피의 분장(扮裝)을 한다. 영화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아서의 망상이고 실제인지 논란도 있지만, 이 부분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는 왜 '조커'가 되었나

코미디언을 꿈꾸는 직업 광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신경에 문제가 있어 ‘병적 웃음’ 증상을 보인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꿈은 사회적 소외와 폭력을 견디는 힘이었다. 어느 날, 원치 않게 총 한 자루를 손에 넣게 되고 원치 않는 웃음이 터지면서 조커로서의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리게 된다. 동네 아이들조차 자신을 비웃으며 폭행을 가해도 너그럽게 넘어가던 아서는 동료, 친아버지라 믿었던 토마스 웨인, 사랑했던 어머니, 그리고 롤모델인 쇼 호스트 머레이 프랭클린까지, 자신을 지탱하던 이들에게 차례로 배신과 폭력을 당하고 꿈을 조롱당하는 사건들을 마주하면서 점차 악으로 변모한다. 영화의 초반, 아서가 고달픈 하루를 마감하며 허름한 옷을 입고 높디높은 계단을 힘겹게 올라갔다면,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아서는 조커가 되어 강렬한 원색의 양복을 입고 가뿐한 발걸음으로 춤을 추며 계단을 내려온다. 그리고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조크뿐 아니라 꿈, 인생, 그리고 존재를 비웃던 모든 무례한 것들을 말이다. 

아서는 죽었다. 그러자 이중 잣대로 세계를 주관적으로 재단하며 빈자(貧者)들을 멸시하는 부자(富者)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는 폭도들의 ‘영웅’이 되었다. 아서는 어머니가 부르던 애칭 ‘해피’ 안에 갇혀 수없이 웃었지만 한순간도 행복해본 적이 없었다. 반면, 조커는 더 이상 ‘웃음’을 억누를 필요가 없었고, 자신의 조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더 이상 애쓸 필요가 없었다. Joke-r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물음, 우리의 응답

악인은 태어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영화 <조커>는 무능한 선인(善人)에서 힘 있는 악인(惡人)으로 변화하는 조커의 성장을 그리며 사회경제적 문제와 인간소외를 함께 다루고 있다. 무례와 조롱, 무시와 냉대, 폭력과 억압이 사회 안정과 질서유지에 기여하는 동안, 악이 어떻게 재생산되고 확산되는지를 묻는다. 

기독교 사랑에 대한 윤리학적 분석으로 저명한 진 아웃카는 아가페 사랑이란, 동등한 배려를 베푸는 것이라 말한다. 여기에서 동등(同等)이라 함은 모든 인간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차별이나 배제가 없는 것이며, 배려(配慮)라 함은 상대의 필요나 요구, 복지를 깊이 염원하고 최선을 다해 실천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기독교 사랑의 실천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함께 가며,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표현된다.(눅 10:25~37) 나아가 이 사랑의 관계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처럼 이타적 헌신을 내포하는 사회윤리적 정의와 함께 있다. 

태초의 인간이 죄를 지은 이래, 마음을 지키고(잠 4:23), 선을 행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하나님의 명령(딤전 6:12, 18)은 행복을 좇는 나, 너,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우리의 응답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에 따라 크고 작은 조커들을 우리 곁에서 실제로 만날 수도, 하나님 나라의 평화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이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김지혜 목사(문화선교연구원 책임연구원)

공간디자인과 신학을 공부했다. '문화'와 '타자'는 언제나 인생의 중요한 화두다. 문화분석에 관심이 있으며,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와문화 전공 박사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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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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