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기독교인은 인공지능과 미래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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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 대해서 많은 서술들이 있는데, 이 서술들은 쉽게 공포심을 불러온다. 왜냐하면 이들은 무지를 촉발시키며 무지란 공포의 진원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포들은 타당한가?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해야 하는가, 아니면 들뜬 마음으로 수용해야 하는가.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

인공지능(AI)이란 컴퓨터 사이언스의 한 분야로 마치 인간이 하는 것처럼 현실 세계에서 행동하고 배우고 적응하는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를 만드는데 전념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인간의 가능성들을 증폭시키고 지루한 작업들을 자동화하여 우리가 인간으로서 하는 것처럼 처리하게 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킬러 로봇의 재앙에 대한 것은 아니며 로봇을 이용해서 재앙을 제거하는 것에 가깝다.

그 중심을 보면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입력하고, 처리하고, 출력하는 행동이다.
절차적인 면을 보면 이것은 배우고, 문제를 해결하고, 트렌드를 예측하고, 질문에 답을 주며 데이터가 말하는 것에 기반하여 추천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더 많이 할수록 더 똑똑해지며 그런 이유로 지능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인공지능은 무서운가?

처음에 말했듯 인공지능에 대해서 많은 서술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서술들은 쉽게 공포심을 불러온다. 왜냐하면 이들은 무지를 촉발시키며 무지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진원지이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 분야 전문가들은 크게 동의하지는 않지만 인공지능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잠재적인 위험이 있다는 쪽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는 인공지능이 무서운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깊게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떤 발명이든 인간의 행동을 흉내내기를 시도하는 것은 질문들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누가 인공지능의 윤리적 경계를 정할 것인가?” “옳고 그른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우리의 가치를 정의하지 못하는데 기계가 그것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의 일이 가지는 가치와 존엄에 인공지능은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인공지능은 결과적으로 실업을 일으킬 것인가?” “인공지능이 미래의 분쟁조절 중재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인공지능이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이다.


인공지능은 신앙을 바꿀 것인가?

인공지능 혁명은 사회를 변화시키기 시작했고, 계속 변화시킬 것이다. 
이 혁명은 교회와 기독교 기관에 기회가 될 것이다.
이것은 신앙을 확신으로 바꾸지는 않겠지만, 이것은 사람들이 신앙, 자기 자신, 그리고 세계에 대해 믿고 있는 것들을 바꿀 것이다.
신앙에 대해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왜” 믿는지를 알며 자신들의 믿음을 간단하고 자신 있게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변화하는 문화적 환경은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실천되고 성과를 거두는가를 확실히 붙드는 것보다 우리가 누구를 믿는가를 더 확실히 붙들 것을 요구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복음을 전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그렇다! 로마의 대로와 인쇄기,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복음을 전파하는데 혁명적이었던 것과 같이 인공지능은 “땅 끝까지” 전파하는데 혁명적일 것이다.
그것은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을 바꿀 것이고,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는지도 바꿀 것이다. 
인공지능은 분명히 우리가 복음을 전파해야할 책임에서 면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회를 늘려준다.
이것은 메시지를 바꾸지도 않는다. 단순히 전달하는 방법을 바꿀 뿐이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는데 인공지능을 이렇게 이용할 수 있다.

◾성경을 어떤 언어든 언제든 실시간으로 번역할 수 있다.

◾장애가 있는 분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독특한 방법을 발전시킨다.

◾자살이나 자해를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식별하고, 막고, 희망을 나누어준다.

◾신앙에 대한 어떤 질문이든 간에 언제든지 모든 플랫폼에서 답해준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그들을 지역 교회와 연결해준다.

◾신앙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 사람들과 그 지역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연결해준다.

◾이 외에도 많다.


기독교인은 인공지능과 미래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믿고 우리가 왜 믿는지를 알고, 우리의 기술들을 다양화하고, 우리의 사명에 확신을 가지고 성령님께 순종함으로써 미래를 수용할 수 있다.


기독교인이 인공지능과 미래를 수용할 수 있는 3가지 다른 방법

◾하나님이 미래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신뢰하기

그분은 이미 미래에 계시고, 과거에도 그 미래를 알고 계셨다.
그분은 무슨 일이 생기는지 놀라지 않으신다.
우리가 확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시간과 마주할 때, 우리는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을 붙들 필요가 있다.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안전함을 찾기 위해 과거를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돌아볼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이 무엇을 이루셨는지를 상기하기 위해, 그리고 그분이 여전히 하실 것이라는 것으로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서이다.
그분이 과거에 신실하셨음은 우리가 그분이 미래에도 신실하실 것을 다시 한 번 알려준다.


◾예수님이 교회의 중심임을 확신하기

교회는 다른 형태나 표현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가 예수님 중심적이고, 문화를 주도하며, 생기 있고, 생명을 주고, 혁신적이고, 큰 생각을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필요를 바꾸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첨단 기술적이며 첨단 접촉적이다. 우리가 기술 속으로 밀려들어갈수록 사람들은 다른 이들과 연결될 수 있고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배울 수 있는 접촉적인 환경을 원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교회를 유지하는데 집중하는 복음의 수호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변화를 위한 마음으로 복음의 창조적인 공급자로 있는다면, 우리는 사회가 근원을 위해 교회를 찾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에게 접촉하는 것을 다르게 생각하기

지금까지 해 온 것을 생각하지 말고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라.
우리가 어떻게 닿지 않았던 사람들과 닿을지, 우리가 어떻게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지, 기술이 사회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바꾸어갈지 꿈꾸라.
이것을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인터넷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인공지능 채팅 봇을 사용한다. 사람들이 영혼의 문제가 생겼을 때 인공지능 채팅 봇을 사용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사람들은 문자메세지를 작성할 때 인공지능을 통해 자동완성 기능을 사용한다. 사람들이 자동완성 기능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접속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통해 구글맵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알게 된다.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알게 된다고 상상해보라.
우리는 미래가 무엇을 잡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누가 그것을 잡고 있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공포와 믿음이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선택한 것의 열매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종결자이신 예수님께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이것을 붙잡고 서기에, 용기있고 당당하게 미래를 신나게 마주하자.


Reuben Skewes 루벤 스큐스는 호주에서 PK로 태어났으며 직업으로는 그래픽 디자이너이며 남편이다. 그는 수년간 문제를 겪고 있는 십대들을 위해 일했으며 교회에서 사역자로 섬기고 있고 최근에는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선교와 인공지능을 결합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척하고 있다. 이 글은 한국교회를 위해 비영리 목적을 문화선교연구원에서 Churchleaders.com에 게시된 "Should Christians Fear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Future?"을 번역해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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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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