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타노스의 두얼굴, 이상한 매력과 심각한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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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의 두 얼굴, 이상한 매력과 심각한 위험성

어벤져스의 도착지: 엔드게임, 미친 타이탄인 타노스를 평가할 시간 

글_Ben Fleagle 

스타워즈의 황제 펠퍼틴부터 스잔 콜린스의 헝거게임에 가학적인 스노우 대통령까지, 영화에는 대표적인 적이나 악랄한 계획이 적지 않다. 오늘날의 가장 큰 악역 중 하나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한정된 자원과 우주의 인구과잉의 해결책으로 대량 살상을 계획하는 냉정한 군 지도자, 마블 서사의 악당 타노스다. 타노스의 의도는 정당한 문제에 기초해 있지만, 그의 방법론은 크게 잘못되어 있다.

이 비뚤어진 타이탄인은 우주 생명의 반을 제거하면 생존자가 번영할 것이라고 믿고 있고,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그럴듯하다. ‘인피티니 워에서 양녀 가모라와 논쟁하면서, 타노스는 찢어지게 가난한 가모라 고향 행성의 대량학살을 자신의 윤리적 명분으로 인용한다. 자신이 개입한 후로 살아남은 아이들은 부른 배와 맑은 하늘만 알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와 같은 설명은 종종 #Thanoswasright (‘#타노스가맞았다’) 같은 경향의 보호막을 일으키며 타노스를 따르는 합법적인 추종자 팬을 양산해 낸다.

그러나 타노스의 추론은 생명의 가치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 타노스는 정말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런 죽음은 자신의 큰 그림의 계획를 완성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당연히, 생명은 통계적인 살인자를 통해 맞바꾸거나 조절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개인의 영혼은 깊은 내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고, 바로 그래서 어떤 대량학살의 해결책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타노스의 가장 큰 실수는 거만함이다. 모든 그릇된 생각의 오류를 떠나, 우주의 고치려는 타노스의 계획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린 것이었다. 가모라에게 설명하듯이, 타노스는 반드시해야하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유일하게 자신이라고 믿고, 오직 자신만이 옳을 수 있다는 자아도취된 정신상태를 고수한다. 변화의 무게는 그의 어깨에만 있다고 믿어서, 자신이 우주의 이익을 위해서 의무를 다해야만 하는 구세주이다. 이것은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괴물의 정신상태와 같다. 그것은 창조로 위장한 파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진짜 세계의 폭군은 영웅으로 나타났다는 데 있다. 그 통치 아래에 살던 시민은 이야기의 다른 면을 보아, 폭군의 등장을 구세주의 탄생으로 오해했다. 우리가 어떤 인간에게 신뢰를 두게 되면, 그가 정치인이든, 운동선수이든, 지식인이든, 그가 부패하기 쉽다는 사실을 놓칠 수 있다. 진정한 영웅은 등장할 수도 없다거나 사기를 높이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의 미화가 제어할 수 없는 위험한 자만심이나 권력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보라색 타이탄인의 등장이 오늘날 우리에게 위협의 태세를 줄 것 같지는 않지만, 타노스의 망상은 일상생활의 지도자에게서 선명히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자신의 권위를 너무 많이 가져간 상사나 항상 말로 대중을 기쁘게 하는 정치인이든지, 우리는 이들의 숨겨진 폭군의 모습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가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발뒷꿈치 아래에서 이런 망각한시민을 비웃을 수도 있지만, 쉽게 설득력 있는 연사의 공허한 약속에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미묘한 강압이 폭군의 가장 좋은 권력의 통로이다. 관계나 타당성이나 사랑에 대한 필요가 이용당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이런 가정된 영웅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폭군은 대중의 호소를 통하여 세상에 대한 문제를 만들어, 지도자의 왜곡된 이데올로기에 헌신된, 새로운 씨 뿌리는 추종자를 생성한다. 타노스가 블랙 오더에게 충성심에 영감을 주었던 것처럼, 폭군은 부하의 열정을 키울 것이다. 우리의 정신을 발판으로 하여 비뚤어진 표제와 집단사고(groupthink)를 폭군이 하나의 매개체로 사용할 수 있지만, 폭군과 더불어 생각없이 따르는 사람들 모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크든 작든, 폭군은 물러나게 만들어야 하지만, 잘 계획하고 옳은 자세로 시도해야 한다. 마태복음 1016절에 나와 있듯,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한다. 이것은 귀와 눈을 비이성적인 논리를 깨닫고 불식시키는 데 맞추고, 폭군의 말에 여전히 동요하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보이고 행동으로 용기있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벤져스는 전투에서 타노스를 굴복시켰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시각으로 독재자를 대항하라고 부름 받았다.


벤 플리글(BEN FLEAGLE)

벤 플리글은 심리학과 학생이자, 보드 게임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를 좋아한다.

원문은 https://relevantmagazine.com/에 게시된 "The Strange Appeal and Serious Danger of Saying Thanos Was Right"이며,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비영리 목적으로 번역, 편집하여 한국교회에 소개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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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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