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책<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를 읽고: 누가 감히 영광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김용규,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누가 감히 영광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글_강영롱 목사(소망교회)

텍스트를 오래 뜯어봤을 때의 장점이란? 텍스트 안에 등장하는 인물의 구도와 사건의 인과관계를 해명할 수 있다. 상상력을 동원하면 텍스트 안으로 진입하는 데도 성공할 수 있다. 등장인물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고 현장의 육성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귀에 금방 들어오지 않는 말의 경우도 헤아림으로써 논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엉켜있는 의미도 선명하게 밝혀낼 수 있다. 그러나 텍스트를 오래 들여다본다고 해서 새로운 해석이 나올까? 골똘히 생각하는 자에게 텍스트를 달리 볼 수 있는 창조적인 영감이 섬광처럼 주어질까?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사유란 대개 외적 계기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로운 경험이 새로운 생각을 견인한다. 성지를 순례하는 경험이 성경이라는 텍스트를 더욱 생생하게 보게 하고, 사람과의 이별, 사업의 실패 등 고난과 역경의 경험이 성경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굴한다. 그렇다고 해서 직접 경험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간접 경험도 할 수 있으니까. 새로운 지적 경험도 성경을 다면적으로 보게 하며 새로운 해석의 세계로 인도하니까. 경험은 사유를 발화한다. 말씀의 정면 뿐 아니라 뒷면과 밑면을 보게 하는 시각의 전환도, 말씀이라는 텍스트에서 출발한 색다른 사유도 결국 경험을 통해서 일어난다.

김용규의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란 책도 어떤 면에서는 경험을 강조한 책이다. 그리스도인의 인문 경험. 신학의 인문학 경험. 고대 교부들은 헬라 철학을 경험함으로써 정통신학을 정립했다. 중세 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남으로써 중세신학을 정리했고, 종교개혁자들은 인문주의자들의 언어를 습득해 텍스트를 새로 읽어냄으로써 종교개혁 신학을 정돈했다. 근대 계몽주의 철학의 수혜를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고안했고, 상대성과 다원성을 주창하는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포스트모던 신학을 말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를 경험하고 그 시대의 인문정신과 지적 성취를 섭렵함으로써 신학은 다시 새로운 활력을 지닐 수 있었다.

 책을 읽다가 근사한 말 하나를 발견했다. “현재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없고, 미래에 대한 지속적이고 분명한 확신이 없다면, 누가 감히 영광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63) 종교개혁자 칼빈의 말이다. 김용규 선생은 이 말을 이렇게 바꾼다. “현재를 사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없고,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속적이고 분명한 확신이 없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과 시대정신에 대한 이해 없이 어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영광을 지금도 빛나게 말해야 한다. 어제 빛났던 언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빛나는 언어로 말해야 한다. 오늘 바로 지금 여기서 우리를 구석까지 비추는 아버지의 영광을 말해야 한다. 그러려면, 오늘 우리 시대를 읽어야 하는 법. 김용규 선생의 지적대로 오늘날 우리 시대는 작은 이야기들로 넘친다. 소소한 일상 이야기이며 한 사람의 감정과 정서, 사람살이의 관심사를 담은 소중한 이야기다. 문화와 요리, 놀이, 관광, 취향에 대한 이야기가 손에 잡히지 않는 큰 이야기를 대체했다면, 우리는 작고 소박한 이야기 안으로 기꺼이 들어갈 수 있어야 하며 새로운 인문정신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어야 하리라.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작은 이야기로 함몰되지 않는 까닭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광처럼 빛나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삶과 인격으로 제시하신 원대한 비전. 선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사로잡은 큰 이야기. 이 큰 이야기에 대한 지속적이고 분명한 확신이 작은 이야기 안으로 침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지금도 여전히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리라.

그리스도인은 현재에 대한 분명한 지식으로 우리 시대에 적합한 시의 적절한 사유를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문주의자들처럼 비관적인 전망을 하지 않는다. 사소한 이야기에 몰두하다가 인간 모두가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될 고귀한 자원과 가치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고, 또는 불멸과 행복과 신성을 꿈꾸다가 다수의 인간이 절망하고 말 것이라는 염세적인 전망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인들이 대대로 거머쥐었던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김용규 선생의 책은 작은 책이다. 금방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그러나 묵직한 책이다. 방대한 서구 지성사를 훑으며 인문학과의 대화를 통한 신학의 성취를 밝히고 인문학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신학의 가능성을 타진한 책이기 때문이다. 난 이 책을 한 번 더 읽으려고 한다. 큰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작은 이야기를 묶어낼 방법을 더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대한 이야기를 좀 더 현실적으로 해야 한다는 목회자로서의 바람을 실현할 실마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강영롱 목사(소망교회 부목사, 문화선교연구원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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