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바울> 읽기- Act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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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도 바울의 말년에 집중하여 당시의 상황과 관련해서 바울을 재현한다. 고증에 많은 공을 들였다 했으니 영화를 보면서 당시 시대상과 기독교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적인 배경은 네로의 광기가 극에 달했던 때인 AD 67년이다. 로마가 불타는 모습을 보며 시를 지었다는 네로는 로마 시민들의 들끓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기독교인을 방화범으로 지목한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콜로세움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집에서 죽음을 당했고, 교회의 지도자 바울은 체포되어 옥에서 사형 집행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가 등장하는데, 그는 복음서에 이어 새로운 집필을 기획 중이다. 누가는 바울을 만나 그의 선교사역을 들으며 사도들의 사역에 관한 글을 쓸 결심을 하고 또 실행한다. 

순교의 역사를 다룬 영화들이 많고, 영화에서 바울은 그 중심에 있기 때문에 필자는 영화 <바울>이 당연히 순교에 초점을 맞추었으리라 생각했으나 이것은 오판이었다. 앤드류 하이엇 감독은 순교 자체에 집중하진 않았다. 그는 오히려 다른 두 가지에 방점을 두고 영화를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당시 상황에서 기독교인이 겪어야 했던 불안과 공포 그리고 박해 상황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갔던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내부적인 갈등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우 뛰어난 전략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순교라는 것이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순교라는 극적인 장면보다 오늘날 기독교인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일상에서 신앙을 압도하는 세속의 흐름 때문에 겪는 불안과 갈등이며,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극복할 수 있는지 혜안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독이 이 부분에 비중을 두고 다뤘다는 것은 감독이 역사적인 관심보다는 오늘 우리에게 바울은 누구이고 또한 교회가 사방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시기에 기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화를 제대로 보려면 바울의 실존과 당시의 기독교인의 생활상에 착목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감상하는 것이 좋겠다. 

감독이 주목하는 다른 하나는 성경 특히 사도행전이 어떻게 기록되었고 전승되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다는 신앙고백은 종종 성경 기록의 저자가 기록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어야 했으며 또한 기록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곤고했는지를 간과하게 만드는데, 감독은 인간 누가와 바울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사도행전이 기록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합리적인 관점은 병을 치료하는 장면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모두가 치료할 수 없다고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바울은 치료를 위해 요청받는다. 그러나 바울은 초월적인 능력으로 직접 병을 치료하지 않았고, 오히려 의사인 누가를 보낸다. 그리고 누가 역시 초월적인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선교지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병을 치료한다. 만일 감독이 극적인 순교 장면을 선호하고 박해의 원인인 하나님 신앙을 전하는 일에 포커스를 두었다면, 병의 치료는 당연히 신앙에 의지하여 이루어지도록 했을 것이다. 복음의 능력을 전하는 일에서 매우 뛰어난 전략인 이 일을 대체 누가 막겠는가! 그러나 감독은 다른 길을 갔다. 이점에 영화를 감상하는 기독교인에게는 매우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당연히 기대한 일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복음서를 기록하기도 했던 누가는 사도 바울과 선교 여행을 동행하면서 의사로서 역할을 잘 감당했으며 또한 사도행전 기록을 통해 바울의 선교사역을 세상에 널리 알린 장본인이다. 사도행전을 기록하기 위해 옥중에 갇혀 있는 바울을 방문하는 일에서도 목숨을 거는 결단이 필요했지만, 사도행전이 전 세계로 전해지는 과정을 표현한 마지막 장면은 꽤 인상 깊다. 감독은 사도행전이 단지 사도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또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 성도들을 통해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역사로만 끝나지 않고 오늘날의 성도들이 성령에 따른 삶을 통해 직접 써내려가야 살아 있는 말씀이 된다는 말로 들린다.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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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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