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예배를 행동하라 그것이 곧 우리다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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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를 읽기 전 알아야 할 것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저자의 인간관에 따르면, 인간은 사고하고 믿는 존재가 아닌 몸(신체성)을 입은 사랑에 의해 정향되고 규정되는 존재인 지향적(intentional) 인간관이다. 이러한 인간관은 지향성과 습관을 특징으로 한다. 지향성과 습관을 이해하려면 프랑스 사상가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에 나타난 몸과, 그리고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같은 개념을 알아야 한다. 

먼저 메를로퐁티 사상은 현상학적 전통(후설)과 실존주의(하이데거)를 종합한다. 현상학은 인간의 실존을 그것이 체험된 한에서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서술하려는 것이다. 현상학은 시와 마찬가지로 사물과 정신 사이의 의미작용적인 소통을 재건하려고 한다. 그는 “나는 생각한다” 대신 “나는 지각한다”를 주장한다. 신체(몸)는 세계를 서술하려 하는 이 ‘지각의 현상학’의 핵심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데카르트식 몸과 정신의 이분법이 아니라 몸을 입고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다. 우리는 세상 안에 체현된 존재로서 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일종의 지향성(지향은 대상으로서 항상 무언가를 지향한다. 의식은 ‘…에 대한 의식이다’)을 통해 환경을 헤쳐 나가는 행위자다. 메를로퐁티는 이것을 의식보다 앞선 지식(preconscious knowledge, 선지식)이라 부른다. 가령 내가 커피 잔을 들 수 있는 것은 나에게 손이 있고 그 잔에 손잡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 그 잔은 내 몸에게는 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리적 구조로서 몸과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된 ‘습관-몸’을 분리하면 안 된다. 선지식으로 ‘아는’ 것은 이 ‘습관화된 몸’이다. 우리의 기독교 신앙 역시 우리의 ‘습관-몸’에 새겨진 삶의 방식이라면, 메를로퐁티가 말한 체현의 현상학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다음으로 부르디외는 실존주의의 주관주의와 구조주의의 객관주의를 조화시키기 위해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아비투스는 일상생활에서의 규칙적인 일과가 아니라 사회적 공간 내에 있는 성향들로서 부르디외의 실천이론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공간은 사회적 장이기도 한데, 이 장(field) 속에서의 위치들은 사회적 공간 내의 위치들을 점유하고 있는 자들이 요구하고 또 그들에게 의미있는 이해관계들에 기초한 관계들의 체계를 형성한다. 일종의 행위문법으로서 ‘사회적 장’ 내에서 다른 계급과 구별짓는 구실을 한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특수한 실천들의 생산을 위한 도식의 체계라 부른다. 가령 어떤 교수와 상점 점원 간의 취향의 차이는 그들이 어떤 부모를 두고 태어났는가와 어떤 교육의 장에서 ‘습득’ 했느냐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독교 세계관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넘어 현대 철학적 담론을 신학적 논의로 가져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철학적 신학자다.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Ⅱ)』는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Ⅰ)』와 함께 읽으면 좋을 듯. 저자는 앞의 두 권과 더불어 삼부작을 기획했다. 나머지 한 권은 『왕을 기다리라(Ⅲ)』다. 이 세 권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문화적 예전(Cultural Liturgies)이다. Ⅰ권에서는 예전적 인간관을, Ⅱ권에서는 실천 형상으로서 인간관을, Ⅲ권에서는 정치신학을 다루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Ⅰ)』는  ‘상상력’의 역할에 주목해서 읽으면 Ⅱ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상상력이란 정신기능으로 사물의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상상력은 이성과 감성의 상호작용을 매개로 인식대상을 확장해나가면서 다른 개체와 연관시켜 더 나은 단계로 승화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철학자 칸트가 말한 상상력이란 감성과 이성(오성)을 종합해서 대상을 인식하는 능력으로서, 상상력의 기능은 현존하지 않는 대상을 직관 속에서 표상하는 기능이다. 현대 신학에서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 의도(intention)를 재창조하여 ‘사태 그 자체’ 즉 현상을 드러나 보이게 한다는 현상학적 해석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저자는 훗설, 메를로퐁티, 리꾀르 등에 의해 제시된 상상력을 제시한다. 가령 훗설의 ‘사태 자체로 돌아감’이라는 사유작용을 통해 우리의 의식 속에서 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상상력이 요구된다. 저자에 의하면, 상상력이란 명제화에 반대하여 지향성이라는 주된 정서적 능력이며, 몸으로 감성 영역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사회적 능력이요 신체적 지성의 과정이다. 


예전적 인간론의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Ⅱ)』 조망하기

Ⅰ권에서 말하는 예전적 인간론은 예배 실천을 위해 형성된 피조물로서 인간론이다. 이것은 실천이 갖는 형성적(formative) 힘을 인식한다. 기독교교육과 예배가 형성적이기 위해서는 생각(사유)보다 성향(정서, 습관, 감정)을, 지성보다 상상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 그렇다고 반지성주의는 아니다. 지성에서 감성으로 다시 지성으로 환원론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상상력이다. 

Ⅱ권은 지각의 현상학자 메를로퐁티와 사회 이론가요 실천가인 피에르 부르디외 연구 성과를 이용하여 신체성(운동미학/몸)과 시학(이야기/서사) 사이 연관성을 설명하면서 예전적 인간론을 제시한다. 이를 위한 기초는 운동미학(신체성)과 서사(시학/이야기)다. 즉 예배의 신체적 기초와 미학 사이의 관계에서 기독교 예배 형식에 새로운 지향성을 부여한다. 궁극적으로 행동을 만들어 내는 형성의 집합체로서 몸과 이야기의 관련성을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예전적 형성을 위해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상상력은 세계-내-존재(being-in-the-world)의 핵심이다(Ⅱ, 221쪽). 

- 1부

Ⅱ권 1부에서는 기독교 예배 형성과 기독교 교육의 전망을 다루기 위한 이론적 도구를 프랑스 사상가들(메를로퐁티와 부르디외)의 이론을 가져와 상상력, 신체성과 이야기 사이의 상호작용 관계를  다루는 데, 이를 체현의 현상학(phenomenology of embodiment)이라 부른다. 체현의 현상학이 예전적 형성과 연관성을 규정하고 나서, 2부에서는 예전적 인간론이 기독교 예배와 형성(formation)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실천을 다룬다. 1부에서는 ‘세계-내-존재’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 어떻게 우리가 형성의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을 재구조화하며 예배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만들어 내는가를 보여 준다. 예배와 교육, 두 영역에서 Ⅱ권은Ⅰ권의 주장을 더 확장시켜 준다. 즉 궁극적으로 행동을 만들어 내는 형성의 집합체로서 몸과 이야기의 연관 관계를 이해함에 있어서 예전적 인간론을 심화시킨다. 이를 위해서 Ⅰ권의 욕망(사랑)에 대한 설명을 Ⅱ권은 상상력을 가지고 보충한다. 

‘예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 물음의 답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경험한 지적 예배가 아닌 예배 형식에 새로운 지향성을 부여하고 상상력에 있어서 신체성(운동미학)과 이야기(서사)로서 예배 갱신이다. 이 점에서 교회의 증언과 복음의 선포, 그리스도의 몸의 형성에서 예술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1부에서는 체현된 지향성을 주장하는 두 이론, 즉 ‘에로스적 이해’(메를로퐁티)와 ‘사회적 몸’(부르디외)을 다룬다.  

기독교 예배와 기독교 교육은 과거 주지주의에 사로잡혀 몸/이야기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 왔다. 즉 상상력과 신체성과 이야기(서사) 사이의 불가분의 관계를 소홀히 다루어왔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상상력과 지각, 몸, 서사 사이의 상호 작용을 잘 보여준 이가 메를로퐁티다. ‘몸이 어떻게 아는가?’ 그는 이러한 신체적 앎을 ‘지각’이라 부른다. 체현된(embodied) 세상에 대한 지각은 ‘객체(대상)’를 지각하는 ‘주체’가 처리한 지식과 전혀 다르다. 체현된 지각은 우리 몸이라는 매개체 안에 담겨 있다. 우리는 하이데거 신조인 몸을 입고 세계-내-존재 환경 안에 자리한 체현된 존재로서 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지향성을 통해 환경을 헤쳐 나가는 행위자다. 이 행위자는 습관을 통해 세계-내-존재로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어 몸 안에 지니고 있다. 내 몸은 세계를 형성하며 ‘실천의 장’에 둘러싸여 있어서 생리적 구조로서의 몸과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된 ‘습관-몸’을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다. 메를로퐁티가 말한 선지식으로 이 ‘습관화된 몸’은 환원불가능하며 세계-내-존재에 근본적으로 지향을 제공하는 일종의 습관화된 지식 혹은 노하우를 지닌다. 그렇다면 내 몸은 어떻게 배우는가? 기독교 신앙 역시 우리의 ‘습관-몸’안에 새겨진 ‘삶의 방식’이라면, 메를로퐁티가 말한 체현의 현상학은 이런 물음에 답하고 예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몸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예전적 인간론의 첫 번째 이론적 도구 상자로서 메를로퐁티의 나의 몸, ‘습관-몸’이라면, 몸은 어떻게 습관화되는가? 부르디외를 통한 두 번째 도구는 ‘사회적 몸’(2장)이다. 그렇다면 몸은 세상을 어떻게 지각하는가? 

부르디외의 답은 그의 핵심 개념인 아비투스(habitus)를 이해하는 데 있다. 즉 실천감각으로서 아비투스다. 실천 감각으로서 아비투스는 주지주의적 관념론에 반대해 언제나 실천을 지향하는 구조화되어 있으며 구조화하는 성향이 있다.  

기독교 교육과 형성의 목적을 기독교적 아비투스의 습득으로 본다면, 부르디외와 저자가 말하는 아비투스는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고 우리의 환경을 경험하고 맥락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행동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성향들의 결합체다. 그렇다면 아비투스를 어떻게 습득하는가? 저자는 부르디외의 토착민 은유를 빌어 설명한다. 토착민이 되는 것은 문화적 성취다. 우리는 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태어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부르디외가 말하는 ‘토착민’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태어나지만 그 공동체의 아비투스를 지니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새로운 아비투스 습득을 위해서는 입문(=끌어들이기)과 체내화라는 더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들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사회적 몸 안에 통합되는 것은 사회적 몸이 내 몸을 끌어들여 이뤄진다. 여기서 필요한 입문의 역학은 운동미학적(신체적)이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지향(아비투스, 실천 감각)이 우리 몸 안에 새겨져 있다. 따라서 사회적 몸은 가장 평범한 수단을 통해, 즉 신체의 자세, 의례화된 리듬을 통해 내 몸을 징집함으로써 나를 그 몸의 일원으로 만든다. 

-2부

2부(성화된 지각)에서는 도구 상자를 사용해 예배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작동방식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예배의 작동방식은 메를로퐁티와 부르디외 모두가 주장하듯이, 우리는 몸과 이야기(서사)의 결합체에서 살아간다(3장). 즉 서사나 시의 미학적 힘이 우리의 세계-내-존재를 근본적으로 지배하는 신체적 기분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우리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사이’ 공간에서 살아간다. 메를로퐁티가 보여주듯이 습관의 습득이 육체적 구조의 재배열이라면, 부르디외처럼 말하자면, 아비투스를 습득한다는 것은 사회적 몸 및 삶의 방식에 대한 그 몸의 전망으로 통합되는 것을 뜻한다. 

기독교 예배 실천의 핵심은 성령께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시키시는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이야기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방식이다. 이 이야기가 마음에 이르는 길은 몸을 통하는 것이다. 몸은 상상력의 통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메를로퐁티와 부르디외에게서 얻은 도구 상자를 활용해 의도적인 기독교 예배의 형성적 실천의 중요성은 바로 기독교 예배와 교육을 위해서는 지각의 성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 예배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새로워진 느낌, 변화된 ‘실천 감각’을 지닌 채 우리를 세상으로 내보내야 한다.”(302쪽)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은 예배자들은 말씀을 일상에서 행동하는 자들로 형성해야한다.


나가면서

이 책은 초중등 교육 과정 기독교 교사들, 목회자들, 교회와 캠퍼스의 찬양인도자와 예배기획자, 그리고 신학도와 성찰적 젊은 예술가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준다. 상상력의 통로인 몸으로 체현하려는 리더들을 위한 영적지침서로서 충분하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훌륭한 문학작품들, 좋은 영화와 시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재미를 더하고 동시에 도전을 줄 것이다.


박성관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다. 기독교윤리와 문화, 복음과 문화와 연관 속에서 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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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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