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택시운전사> 읽기 - 회심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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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영화들

오손 웰즈 감독의 <이방인>(1946)은 첫 번째 홀로코스트 영화(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소재와 주제로 다룬 영화)로 꼽히고 있다. 이 영화는 비록 나치 전범을 추격하는 내용을 포함하나 홀로코스트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홀로코스트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강제수용소 장면을 포함하고 있어 첫 번째 홀로코스트 영화로 종종 언급된다. 특히 <쉰들러 리스트>(스티븐 스필버그, 1994)는 죽음의 수용소를 마치 다큐를 보듯 실감 있게 표현해 홀로코스트 영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 후 홀로코스트 영화는 장르와 내용에 있어서 거듭 새로운 시도를 통해 홀로코스트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때의 실상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그것이 다음 세대에 미친 영향도 다루어 사건의 비극적인 측면을 한층 도드라지게 만들 뿐 아니라 또한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성찰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5.18 영화(5.18을 다룬 영화를 두고 말함) 역시 <칸트씨의 발표회>(김태영, 1987)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영화는 35분짜리 단편 극영화인데, 태극기를 흔들며 광주 곳곳을 활보하는 한 정신이상자를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촬영하는 한 사진작가를 등장시키고 있다. 감독은 정신이상자의 움직임을 따르면서 사진작가의 시각으로 당시 광주의 풍경을 삽입하였고 그럼으로써 간접적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나름대로 상상하도록 표현하였다. 

그 후 5.18 영화는 대체로 그때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조명하는 다큐의 관점에 따라 제작된 것이 많지만, 대부분 피해자의 시각을 반영하는 영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영화 <박하사탕>(이창동, 2000)은 가해자로 참여한 한 군인의 비극적인 인생과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가해자 역시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5.18의 현대적인 의미를 조명한 수작이다. 5.18 희생자의 범위와 의미를 새롭게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26년>(조근현, 2012)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5.18의 비극의 단면을 조명한다. 


비극이 세상에 밝혀지게 되기까지

그런데 5.18의 실상이 서구에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의 다큐 영상이다. 당시 일본 주재 독일 방송국 ARD 특파원이었던 그는 5.18의 사건을 취재하기 위한 신념 하나로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에 왔고,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광주로 잠입하여 광주의 실상을 카메라에 담아 서구 사회에 소개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것이 5.18을 다룬 최초의 다큐 영상이라 볼 수 있다. 그의 영상 자료는 당시 한국에서는 공개적으로 상영할 수 없었고 1987년 한 변호사(당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문재인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의 노력으로 부산에서 비밀리에 상영된 것이 처음이었다. 장훈 감독은 <택시운전사>를 통해 위르겐 힌츠페터가 5.18의 실상을 국외에 처음 소개할 수 있게 된 과정에서 김사복이라 자신을 소개한 한 서울 택시 운전사와 광주의 여러 택시 운전사들로부터 어떻게 도움을 받았는지를 소개한다. 

감독에 따르면 이런 내용이 영화 태어나기까지 과정에서 주요 동기를 제공한 것은 다음의 신문기사라고 한다.  

“내 눈으로 진실을 보고 전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용감한 한국인 택시기사 김사복 씨와 헌신적으로 도와준 광주의 젊은이들이 없었다면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이것은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받은 위르겐 힌츠페터의 수상 소감의 한 부분이다. 장훈 감독이 <택시운전사>를 제작할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수상 소감 한 줄이었다고 한다. 

독일 언론인 힌츠페터와 김사복으로 알려진 택시 운전사, 둘 사이에 대체 어떤 일이 있어난 걸까? 이 질문은 장훈 감독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는 내용을 잘 요약한다. 다시 말해서 영화는 당시의 광주를 하나의 섬처럼 고립시키고 또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던 시기에 어떻게 외국 언론인이 광주로 잠입하여 광주의 실상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고 또 어떻게 광주를 빠져나와 필름을 국외로 송출할 수 있었는지를 추적하면서 바로 택시 운전사 김사복의 역할에 주목한다. 영화 제목은 어느 정도 영화가 누구에게 집중하고 있는지를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 언론인, 특히 지나치게 김사복에게만 집중되어 있어서 언론인으로서 그가 가졌던 느낌과 생각 그리고 그의 입장에서 가진 5.18 경험에 대한 장면이 매우 우회적으로만 표현되어 있는 것은 관객의 입장에서 매우 아쉽게 느끼게 하는 점이긴 하다. 무엇보다 이미 고인이 되어 더 이상 인터뷰가 불가능하겠기에 더욱 안타깝게 여겨진다. 


왜 '택시 운전사'였을까

힌츠페터에게 김사복으로 소개된 택시 운전사의 극중 이름은 김만섭(송강호)이다. 아내를 일찍 여의고 어린 딸과 함께 근근이 살아가는 서울 택시 기사다. 택시 기사로서 활약을 담은 영화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서로 대조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앞부분과 뒷부분을 비교하면서 본다면 영화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스포일러 있음]

첫 부분은 김만섭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오직 딸과의 행복한 삶만을 꿈꾸고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철없다고 비판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소시민으로서 전형적인 캐릭터다. 실제의 인물이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현실을 바탕으로 미루어 보면, 이 장면은 분명 영화적인 상상력에 따라 만들어진 장면일 것이다. 김만섭, 아니 김사복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영화 속 그는 오직 힌츠페터의 인터뷰를 통해서 재구성된 캐릭터일 뿐이다. 정직한 사람이었고, 어려운 사람을 도울 줄 아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고, 택시 기사로서 사명감이 투철하다는 사실이 강조되어 있다. 

둘째 부분은 독일 언론인을 태우고 광주로 잠입하는 과정이다. 택시비로 왕복 10만 원을 약속받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김만섭은 전혀 예상치 않은 광주의 현실을 보고는 돌아갈 생각을 한다. 그러나 밀린 집세에 해당하는 많은 택시비에 대한 욕심으로 검열하는 군인을 속여 광주로 잠입하는 데에 성공한다. 광주에서 그는 한편으로는 주유소에서 무료 주유를 받고, 시위 현장에서 받은 주먹밥, 그리고 광주 택시 기사의 집에서 받은 따뜻한 환대를 경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경과 시민이 대치하고 있는 시위 현장에서 신변의 위기를 느낄 뿐 아니라 서울의 집에 혼자 있는 딸과의 소풍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돌아갈 결심을 굳힌다. 

셋째 부분은 그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서 경험한 심경의 변화다. 영화 내용의 많은 부분은 비록 힌츠페터가 살아있을 때 했던 인터뷰에 근거한 것이라 해도 대체로 영화적인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영화는 사실 전달보다는 느낌을 전하는 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만들어졌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 이렇게 볼 경우 영화가 특별히 강조하는 점은 5.18을 보는 외부인의 시각과 경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택시 운전사의 시각은 관객의 시각으로 바뀌게 되고 영화를 보는 관객은 비록 간접적이긴 해도 그의 경험을 공감하면서 현실에 참여하게 된다. 관객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내야 하는 배우 송강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으며, 그는 이 역할을 매우 잘 소화해 내었다. 그의 빼어난 연기 덕분에 관객은 더 이상 제삼자가 아니라 광주의 한 시민과 동일한 입장에서 5.18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나머지 마지막 넷째 부분은 힌츠페터가 무사히 광주를 빠져나와 일본으로 돌아간 이후이다. 광주에 잠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광주를 빠져나가는 일이 녹록지 않았는데, 두 사람은 서울 택시 번호판을 보고서도 무시한 한 군인과 광주 택시 운전사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힌츠페터는 약속대로 세계 언론에 광주의 참상을 알렸고, 그 후 언론상 수상을 위해 서울을 방문했을 때 행한 수상 소감에서 자신을 ‘김사복’으로 소개한 택시 운전사를 찾으려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영화 <서칭 포 슈가맨>(말릭 벤젤룰, 2011)을 많이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네 부분을 종합적으로 볼 때 영화에서 백미로 꼽히는 장면은 김만섭이 광주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또한 딸과 함께 소풍 가기로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 서울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겪은 심경의 변화다. 그는 거금의 택시비를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서 정부의 발표만을 믿고 광주의 실상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갑작스레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그로 하여금 갑자기 광주로 방향을 돌리도록 작용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진실에 대한 책임감? 광주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 승객에 대한 책임감? 그가 직접 경험한 광주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서? 

이 장면은 당시 택시 운전사만이 아니라 외부인으로서 광주를 보는 오늘 우리가 어떤 의미에서 5.18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택시 운전사 개인의 경험을 넘어 오늘과 다음 세대에까지 갖는 의미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장면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감독은 영화에서 밝히지 않고 오히려 관객 자신에게 맡겼다. 관객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감상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모든 것들이 함께 작용한 복합적인 감정이 작용했다고 본다. 그는 승객에 대한 책임감도 강했고, 자신을 따뜻하게 환대했던 사람들이 폭도로 오해받는 것을 모른 채 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으며, 그들이 겪는 끔찍한 일들을 쉽게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비록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긴 해도 정직하게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일말의 진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비록 마땅히 서울로 돌아가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해도, 과감하게 광주로 방향을 돌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점은 더 이상 제삼자적인 관점으로만 볼 수 없는 대한민국의 왜곡된 현실에 대한 책임감이다. 다행스럽게 정권이 바뀌어 새로운 현실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동안 우리는 언론통제로 인해 감추어지고 왜곡되고 거짓으로 포장된 현실을 살아왔다. 내일이 아닐뿐 아니라 나와 상관없다고 해서 침묵하거나 외면했지만, 사실 왜곡과 은폐와 거짓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시민으로서 공감할 수 있고 또한 시민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있다면, 더 이상 나의 길을 가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불의한 현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로서 부름을 받은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주변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다는 건 건강한 시민으로서 뿐 아니라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광주로 돌아간 '택시 운전사'처럼

끝으로 택시 운전사의 심경 변화와 서울로 가는 길에서 광주로 돌아가는 길로 과감하게 돌아서는 일을 기독교적인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회심이라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길을 갈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돌아서도록 부름을 받는다. 그것이 회심이다. 비록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또 그 일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충분하다 해도,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그들을 돕는 것을 하나님의 부름으로 받아들이고 과감하게 돌아설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만일 회심을 주저하고 또 그 결과로 인해 나타날 상실을 염려하고 또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택시운전사>의 김만섭의 회심을 통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회심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회심의 결과가 무엇일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뤄지는 일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은 결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기에 회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최성수 박사가 본 <택시운전사>는?   

기독교적 가치 (4.0)       작품성 (4.0)       대중성 (4.5)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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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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