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라라랜드> 읽기 - 열정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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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는 천재들의 미친 열정을 영화적으로 표현했다고 평가되는 <위플래쉬>의 감독이 만든다는 소문 때문에 제작 단계부터 화제가 된 영화다. 이미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17년 아카데미에서 수상 예정작으로 기대되고 있다. 감독은 <라라랜드><위플래쉬>보다 먼저 영화화하고 싶었지만 제작 여건상 <위플래쉬>가 앞서게 되었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면 감독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라라랜드> 역시 음악 영화로 이번엔 특별히 뮤지컬 형식을 갖춘 로맨스 드라마다. 꿈을 찾아 LA에 둥지를 튼 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을 계절의 변화와 함께 전개한다. 내용적으로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나, 2시간의 상영시간에도 지루함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진부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주차장과 다를 바 없는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펼쳐지는 오프닝 장면에서부터 시작해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힘은 영화 끝까지 이어진다. 뮤지컬 형식이면서도 음악으로만 채워지지 않았고, 그럼에도 청년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심금을 울리는 가사와 함께 서정적인 멜로디는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 물씬 묻어난다.

영화적으로 볼 때도 많은 점에서 주목할 만하지만, 또한 내용적으로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꿈과 갈등과 좌절과 성공으로 점철된 인생을 다루고 있어,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영화다. 게다가 몇 번이고 곱씹어 보기에 충분한 주제, 열정과 현실그 틈새에 끼여 번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과 귀와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로 잘 풀어내었다고 생각한다. 재즈와 친숙해지는 기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라라랜드>는 훌륭한 연기자가 되기 위해 변호사 공부도 그만두고 LA로 온 미아(엠마 스톤)와 재즈의 몰락을 안타까워하며 재즈의 열기를 회복하려는 꿈을 갖고 LA로 온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다. 둘은 몇 번의 만남을 가까스로 비껴가면서 마침내 서로를 마주보는 관계가 된다. 두 사람의 사랑은 계절에서 계절로 이어지면서 영원할 것 같았지만, 그들 자신의 꿈에 대한 기대와 서로가 서로에 대한 기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결실하지는 못한다. 현실의 벽과 그것에 맞서는 방식이 서로 달라 좌절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결실과 좌절이란 결혼을 말한다. 결혼만 빼면 두 사람은 각자의 꿈을 이루는데 있어서 서로에게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세바스찬은 미아의 꿈을 이루게 도와주고, 미아는 세바스찬이 다시금 꿈을 향한 열정을 회복할 기회를 제공한다.

 

영화는 비록 장르적으로는 로맨스라도 남녀의 사랑에만 초점을 두고 있진 않다. <위플래쉬>미친 열정의 크래쉬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영화는 열정과 현실의 상관관계에 주목한다. 그런데 순수하게 열정에만 주목한다면, 다소 김빠진 콜라를 마시는 느낌이다. 그만큼 <위플래쉬>에서 다룬 열정은 흡사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라라랜드>에서 표현된 열정의 최상급적인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감독의 이전 작품을 염두에 두고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열정을 부각하는 정도에 있어서 다소 예외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이전 작품이 그 강렬함 때문에 천재들의 경우라면 몰라도 보통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터라 이번 영화를 통해 일상에서 흔히 겪는 열정과 현실의 관계에 관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주제는 분명 열정이다. 꿈을 향한 열정은 미아로 하여금 출세를 보장하는 변호사 수업을 중도에 포기하게 했고, 비록 수많은 오디션에서 떨어졌어도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했다. 세바스찬은 재즈에 대한 열정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비난과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감내한다. 중요한 것은 꿈의 실현에 있기 때문이다. 열정은 두 사람의 만남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서로의 열정에 끌렸고 또 서로 만나 사랑을 키워가는 동안엔 서로의 꿈을 존중해주었다.

문제는 꿈을 향한 뜨거운 마음에 비해 배우로서의 삶은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또 자신만의 재즈 클럽을 만들려는 시도는 거듭 좌절되는 것, 그야말로 기약 없는 시간만 계속해서 흘러가는 것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의 관계가 진척될수록 서로에 대한 책임감 역시 깊어질 수밖에 없는데, 점점 멀어져가는 꿈과 점점 무거워지는 책임감의 갈등을 푸는 일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열정은 끓어오르지만 꿈을 향한 노력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과연 주변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또 사랑하는 사람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그 꿈에만 올인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비록 내가 원하는 길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위해서라도 현실과 타협하며 비슷한 길을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건 아닐까? 만일 꿈의 실현을 위해 참아야 하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내기 위한 조건이 충분하지 않다면, 혹시 그 꿈은 착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포기해야만 하지 않을까?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는 까닭은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실제 삶의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수많은 질문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고 또 다양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말이겠다. 뿐만 아니라 꿈을 향한 열정과 냉혹한 현실의 갈등 관계를 너무 무겁지 않게 직면할 수 있도록 하고 또한 다소 코믹하면서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것은 대중영화의 특성을 잘 살린 결과라 생각한다.

 

열정과 현실의 관계와 관련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젊은 세대 가운데 꿈이 없는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많아진 이유는 한편으로는 풍요로운 시대에 살다보니 꿈을 꿀 만한 직접적인 동기가 되는 결핍 현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이것에 관한 지적은 많은 사람들을 통해 들을 수 있으니 접어두자. 경우에 따라서는 꿈 자체에 대한 개념마저 없을 수도 있지만, 이 경우는 교육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것도 제외하자.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꿈을 꾼다고 해서 또 강렬한 열정을 품고 있다고 해서 꿈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의 벽에 대한 좌절감이다. 열정이 급속도로 식는 까닭은 좌절하는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보았거나 아니면 직접 좌절감을 경험했기 때문일 수 있다. 꿈은 기대를 낳고, 기대는 열정을 낳고, 열정은 간혹 미친 열정을 낳는 법인데, 이 단계를 거치고 난 후에도 꿈이 이뤄질 것 같지 않은 현실이 전개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외 없이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만일 현실의 벽에 부딪혀 두려움에라도 사로잡히게 된다면, 열정은 급속도로 식어 꿈은 그야말로 백일몽으로 전락한다.

 

사실 열정이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건 진실이다. 관건은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 <위플래쉬>에선 그 현실이 또 다른 미친 열정으로 표현되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울이는 미친 열정이 서로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에 비해 <라라랜드>는 매우 실제적인 현실을 제시한다. 현실의 벽은 자신의 열정의 진의를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사실과 그것으로부터 오는 불안과 염려로 표현되었다. 인생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하는 사람의 안정된 삶에 대한 책임감은 열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제시된다. 세바스찬이 돈을 벌기 위해 재즈를 포기하고 친구의 밴드에 합류하여 연주활동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부모와 통화하는 미아의 말에서 그녀가 안정된 삶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오해였지만, 책임감 있는 남자라면 그녀의 말을 당연히 그렇게 들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실의 벽에 부딪힌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기보다는 재즈에 대한 꿈을 포기했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자신의 진심을 몰라준 세바스찬에 대해 미아의 실망감은 클 수밖에 없었고, 게다가 자신이 직접 쓴 대본을 공연한 첫 연극무대의 실패로 미아는 꿈에 대한 불안감을 넘어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곁을 떠난다. 미아와 세바스찬 두 사람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관객은 분명 이 시대의 청년들과 그들의 현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라라랜드(LA의 별명이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상태를 가리키는 관용어), 곧 상상의 세계로 이어진다. 그곳에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 미아와 세바스찬은 각각의 영역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서로를 만난다. 미아는 결혼하여 딸을 두고 있다. 두 사람이 함께 엮어가길 원했던 결혼의 꿈은 전혀 다른 현실로 바뀌었고, 미아는 그녀가 만들어준 이름의 재즈클럽에서 세바스찬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으나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게 된 채 오직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서로의 눈길이 마주쳤을 때 두 사람은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생각했을까? 영원히 서로를 사랑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헤어졌기에 어쩌면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했을 두 사람에게는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뜨거운 열정이 다시금 불타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현재는 그들의 열정이 부딪혀야 하는, 그러나 결코 넘을 수 없는 또 다른 현실이었다.

 

라라랜드는 LA의 별명이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상태를 가리키는 관용어다. 라라랜드가 영화의 배경인 LA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두 사람이 헤어진 지 5년이 지난 뒤에 전개되는 삶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혹시 세바스찬이 미아가 지어준 이름으로 연 재즈클럽의 사장으로서 연주하는 모습을 남편과 함께 바라보면서 잠시 동안 상상했던 그 세계를 말하는 것일까?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 것이라 해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뜨거운 열정을 가졌으나 현실의 벽에 막혀 꿈을 포기해야 했던 사람에게는 두 사람이 헤어진 후 성공한 삶이 라라랜드일 것이고, 서로 헤어져 각자의 길에서 성공했지만 더 이상 만남이 없었던 사람에게는 미아의 상상이 라라랜드일 것이다. 영화의 배경인 LA를 라라랜드로 이해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열정이 현실을 만날 때는 강력한 충돌로 파열음을 내거나 식어버리거나 심지어 재만 남겨 놓고 꺼져버린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열정은 꿈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열정 자체가 관건은 아니다. 문제는 꿈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꿈의 실현을 위해선 열정이 있어야 하지만, 비록 열정이 식었다 해도 그것이 다시는 타오르지 않는 상태로 영원히 꺼져 있는 것은 아니다. 꿈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고, 그래서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면, 열정은 비록 식었다 해도-꿈에 관한한 쉽게 꺼지지 않는 게 열정이다-열정의 불씨는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어 내 삶의 일부가 되지 않을까?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결코 나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나의 꿈으로 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 꿈을 나의 것으로 삼는다면, 나의 열정은 순종과 헌신으로 나타난다. 비록 현실이 꿈을 용납하지 않고 또 열정을 급속하게 식어버리게 한다 해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의 열정을 언제든 다시금 타오르게 해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열정을 동반한 순종을 통해 현실의 벽을 넘어 하나님의 현실이 된다.




최성수 박사가 본 <라라랜드>는?     기독교적 가치         작품성        대중성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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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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