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가려진 시간> 보기 - 청소년의 잃어버린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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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수능이 끝났다. 그들이 대학입학을 위해 수년간 학습하며 보낸 시간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들의 시간을 진지하게 성찰해볼 영화가 개봉되어 소개한다.

 

영화제목에 나오는 가려지다가리어지다의 준말로 시각을 가로막는 무엇 때문에 보이지 않거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한 행위 혹은 우발적인 사건으로 발생한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가리거나 혹은 무엇인가에 의해 우연히 가로막혀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영화제목 가려진 시간은 누군가가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된 것이 시간임을 말한다. 굳이 특정인의 행위를 거론하지 않는다면 우연한 사건 때문에 마땅히 볼 수 있는 시간이 보이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시간은 어차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만일 볼 수 있거나 드러나야 하는 것의 의미로 시간을 말한다면, 그것은 변화 혹은 성장을 가리킨다. 시간은 처음부터 변화를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구성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 제목은 무엇인가가 시각을 가로막거나 혹은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가로막혀 보이지 않게 된 변화들 혹은 나타나지 못하게 된 변화들을 떠올린다. 영화는 그것을 독특한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감상 포인트는 마땅히 보여야 하는 변화들이 무엇이고, 또 무엇이 그것을 보이지 않도록 방해하는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이하 스포일러 있음)

먼저 영화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수린(신은수)는 재혼한 엄마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에 건설현장에서 발파 작업을 하는 의붓아버지와 함께 낯선 섬으로 이사 온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해서 한층 더 외로워진 수린은 유일한 의지가 되어야 할 의붓아버지에게도 마음을 두지 못한다. 그가 엄마의 교통사고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수린은 믿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학 간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마저 쉽지 않다. 자기만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 수린에게는 유일한 낙이다. 유체이탈과 같은 현실과 거리가 먼 일에 관심을 보이고 자기만 알아볼 수 있는 기호를 사용하여 일기를 적는다. 이런 수린에게 보육원 출신의 성민이 다가와 친구가 된다. 수린과 성민은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기호로 소통하고 그들만이 아는 공간에서 놀며 우정을 쌓아간다.

 

어느 날 성민의 친구들과 함께 철조망을 넘어 금지된 발파현장을 구경하러 갔는데, 발파현장 근처 작은 동굴에서 빛을 발하는 알 같이 생긴 물체를 발견한다. 아이들은 태식에게서 할아버지가 들려주셨던 말씀을 전해듣는다. 이 말에 따르면 보름달이 뜨는 때에 동굴이 열리는데, 그곳에는 시간을 잡아먹는 요괴가 산다고 한다. 이 요괴에게 사로잡히면 아이는 청년이 되어 깨어나고, 청년은 중년이 되어야 깨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수린이 죽은 엄마에게서 받은 머리핀을 찾으러 동굴로 다시 돌아간 때에 동굴 밖에 머물던 아이들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알을 깨뜨린다. 알이 깨짐과 동시에 세상의 모든 것은 멈추어버리고 오직 아이들의 시간만 흐르는 이상한 일을 겪는다. 천식을 앓던 아이는 멈춰버린 세상에서 약을 구하지 못해 죽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먹어 청년이 된 태식은 모든 것이 정지해버린 상황에서 불안과 지루함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해 자살한다. 성민 역시 태식의 뒤를 따르지만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 모든 것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성민은 가까스로 살아나 현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모든 것이 멈춰버린 시간 동안 그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성민이 마을로 돌아왔을 때 마을은 발칵 뒤집혀 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수린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지만, 수린의 말은 거의 횡설수설에 가까울 정도다. 아이를 찾을 만한 단서를 얻지 못한다. 이 때 성인의 모습으로 등장한 성민(강동원)은 수린에게 다가가 자신이 성민임을 밝힌다. 그러나 수린은 성인 남성을 성민으로 알기에는 너무 큰 충격이라서 성민을 알아보지 못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유괴된 것으로만 알고 있던 까닭에 수린에게 나타난 그 남자를 범인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수린은 성민이 놓고 간 공책에서 자기와 소통할 때 사용하던 기호들을 발견하고 또 그것으로 기록된 내용을 해독하고는 성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알게 되고 동시에 그 남자가 성민임을 확신한다. 모두가 유괴범으로 단정하고 쫓고 있을 때, 오직 수린만 그 사람이 성민임을 믿는다. 과연 두 사람의 관계에서 진실은 무엇일까? 성민을 가장한 아동성애자일까? 아니면 사라졌던 진짜 성민이가 맞는 걸까?

 

영화는 이미 처음부터 모든 이야기의 전모를 드러낸다. 어쩌면 이것이 관객을 더욱 혼돈으로 몰아가기 위한 전략일 수 있지만, 필자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멈추었을 때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들과 성장과정을 이미 다 밝혔기 때문에 무엇이 진실인지를 놓고 추리하는 긴장감을 겨냥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다른 목적을 향해 가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 것은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은 아이들의 시간만 흐르고 다른 시간은 멈춰버린 판타지 장면과 그것이 주는 비유의 힘에 압도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아이에서 갑자기 성인이 되어 나타난 성민에게서 잃어버린 시간을 설정해놓고, 그것 때문에 현재와 겪는 갈등, 곧 수린의 믿음과 어른들의 불신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 상황을 흥미 있게 전개하였다.

 

어떻게 보면 어른들의 합리적인 세계와 아이들의 판타지 세계의 갈등을 겨냥한 이야기 같다. 어른들의 편견에 가려진 아이들의 세계를 말하는 것일까? 특히 성민을 어려서부터 키워온 보육원 원장이 성인이 되어 나타난 성민이가 어릴 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의심을 극복하지 못하는 장면은 수린이 자신과 소통했던 비밀언어 때문에 성민을 신뢰하는 태도와 비교할 때 매우 대조적이다. 이것이 아이와 어른의 차이일까? 영화는 어른과 아이의 세계가 다르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일까?

 

그렇게 보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는 비유적인 측면을 너무 간과한다. <가려진 시간>은 성민이 친구들과 함께 경험한 시간경험과 그것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 그리고 그 경험에 대한 어른들의 불신의 상관관계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 영화는 대한민국 청소년의 현실을 유비한다. 그들이 시간과 공간에서 어떻게 갇혀 지내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철저히 가려진 시간을 보냄을 폭로한다. 이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자.

 

입시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는 대한민국 청소년은 모든 것을 잘 갖춰놓은 환경에서 갇혀 지낸다. 비록 예외는 있다 해도, 누구도 이것을 쉽게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치원시기부터 조기교육에 시달리고, 비록 원치 않아도 입시경쟁의 현장으로 내몰린다. 사회는 그곳에 높은 방어벽을 세우고 또 모든 것을 갖추어 놓고는 나가지 말라 한다. 가만히 있으라 한다. 시간뿐 아니라 공간도 막혀 있다. 그런데 만일 어른들의 시간과 공간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면, 과연 누가 그들을 인정할 것인가? 이것은 갑자기 성인이 되어 등장한 성민이 직면한 상황이다. 사람들은 그가 진정으로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하기보다, 그가 성인남자로서 여자 아이에게 접근했다는 사실만을 놓고 유괴범이며 아동성애자로 낙인찍는다. 그의 시간, 곧 변화와 성장은 사회적인 편견과 제도의 시각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어른들의 계산된 사고와 기대에 가려져 있다. 아니, 청소년 보호라는 미명하에 의도적으로 은폐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경찰은 수린에게 거짓말을 강요한다. 가려지는 일이 의도적으로 일어났다면 그것은 은폐다. 청소년의 시간과 공간은 어른들의 필요에 의해 은폐되고, 청소년은 어른들에 의해 구성된 시간과 공간에 갇혀 지낸다.

 

규격화된 사회와 규범화된 시간과 공간을 빠져나가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든 더 이상 사회로부터 환영받지 못한다. 그들의 변화는 어른들의 계산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한다. 제도 밖의 세계는 존재한다 해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의 시간과 공간은 어른들의 가치관에 의해 철저히 가려져 있고 또 막혀있다. 아니 은폐되어 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도 없다. 그곳이 어떤 곳이고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성민을 알아보고 그에게 일어난 변화를 믿은 사람은 그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기호를 쓸 수 있고 공간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수린 뿐이었다.

 

<가려진 시간>은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시간과 공간에 갇혀 있음을 폭로한다. 또한 우리가 마땅히 보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환기하고, 그리고 동시에 그것들을 가리는 것들이 우리 사회에 현재함을 폭로한다. 아이들을 망치게 할 의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려졌다는 표현을 택했지만, 사실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은폐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의해 철저히 은폐되어 청소년들은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찾지 못한 채 유랑하는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들의 변화와 성장을 낯설어 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그들을 인정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어른들이 쌓아놓은 벽을 과감하게 무너뜨려야 할 때다.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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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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