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들



코미디언 피트 홈즈(Pete Holmes)는 복음주의적인 말을 자랑스럽게 하는 사람이다. 그는 종종 팟캐스트(podcast)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할 때 주로 쓰는데, 이는 자서전적인 HBO 드라마 <크래싱(Crashing)>의 주제이다. 또한 이를 뛰어넘어 종교로부터 받게 되는 영적인 압박을 덜 받는 방법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한다.

피트 홈즈는 최근 ‘바나(Barna)’ 설문조사[링크]에서 언급하고 있는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은(Spirituality But Not Religious)”이들로 자신 스스로를 정의하는 그룹에 부합하는 전형적인 예이다.

이러한 SBNR 그룹에 속한 일부는 여전히 종교와의 소속을 주장하기도 한다.(피트 홈즈가 여전히 기독교와 함께 일을 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SBNR 에 속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정통 신학에서 벗어나 좀 더 보편적인 관점으로 옮겨갔다. 그 중 삼분의 일이 하나님은 보편적인 양심이라고 믿고, 50%는 다신론을 믿는다. 다시 말하면, 이들의 영적인 관점은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이다. ‘바나’의 한 기사에 따르면,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라고 간주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고, 이것도 아마 자신들이 좋아하는 대로 나타난다. 이 부류는 자신들의 영적 상태의 자유에 가치를 둔다.”

최근 팟캐스트에서, 피트 홈즈는 자신은 여전히 기독교의 언어를 고수하고 있지만, 지금은 좀 더 넓은 형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가 다 속하게 되는 더 큰 보편적인 진리를 가리키는 주제다.

이것은 아주 일반적이다. SBNR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같다고 믿고, 이 중 반은 형식적인 종교가 해롭다고 믿는다. 이 그룹에 속하는 많은 이들이 종교는 때로 진리를 품고 있지만 진리를 역이용하거나 왜곡한 형태로 나타나는 ‘인조적인 상자’로 본다. 이들에게 종교는 진짜 영적 경험을 만들어낼 때만 가치가 있지만, 이런 종류의 경험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같다.
찬성/반대

위의 그래프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이들을 크게 두 집단으로 보았다. 첫 번째 집단은 영적 생활은 중요하다고 믿지만, 종교적인 믿음은 삶에서 그만큼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면, 기독교 같은, 특정 종교와 부합하지만, 반년 동안 교회 예배는 드리지 않고 있을 수 있다. 이와 약간 다른, 두 번째 집단은 영적인 상태는 부합하지만, 종교적이지 않다. 때로 종교를 믿지 않고, 이 집단의 12%는 무신론, 30%는 불가지론, 58%는 종교와 부합하지 않는 형태로 믿는다.

최근 피트 홈즈는 ‘나쁜 기독교인(Bad Christian)’이라는 팟캐스트의 게스트로 나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는 현실 세계의 ‘스노 글러브(snow globe)’에 있습니다. 뭘 취하시겠어요? 아직도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으세요? 좋아요. 저처럼, 신화적으로? 좋아요. 자유롭게 하세요. 자, 교회 주차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웃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해방에 대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척추를 타고 오르는 그 따끔따끔한 느낌, 그 걸 느낄 때, 알게 되죠. 이런 걸 여러분들에게 가르치려고 목사님이 필요하지 않잖아요. 골프할 때도 알게 되고, 성관계를 맺을 때도 알게 되죠. 그거면 되지, 무엇을 찾으세요?”


‘자신에게 맞으면 무엇이든지 된다’는 영적 상태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BNR)’ 사람들에게, 영적 진리에 가장 딱 맞는 접근 방법은 실용성이다. 더 깊은 진리에 들어간다면 된다는 식이다. 이 때문에, 공통적인 영적 행위는 요가, 명상, 침묵·고독, 자연과 시간 보내기 같은 활동을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태평양 연안 북서부, 캘리포니아 주 부근이나 콜로라도 주 볼더 시 같은, 종교적이지 않은 문화권이지만 영적 초월 상태로 알려진 지역에서는,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한 때 기독교 지대에 있었던 높은 교회 출석률만큼이나 영적 문화적 의식이라는 생각이 퍼져 있다.

‘바나’의 기사에 따르면, ‘실질적이고 개인적인 자율성을 밖에서 시간을 보내며 얻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결국, 자신의 삶과 밖의 세계를 종교적인 영역으로 이해하는 이 사람들이, 왜 영적 행위에서 더 비형식적이고 개인적인지 이해하게 된다.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대할 절호의 기회

기독교가 이런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5세기에 성 패트릭(St. Patrick)이 아일랜드에 선교사로 갔다. 그는 이전에 죄수로 아일랜드인과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를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특히나 자연을 깊이 이해하는 신비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가톨릭 복음 전통 형식을 깼다. 너무나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로마와 충돌하기 시작했지만, 그와 있었던 아일랜드 사람들은 복음과 문화 사이에 잠식되었다.

아일랜드의 이단 믿음이 장애물로 여겨지기 쉽지만, 성 패트릭은 이것을 기회로 보았다.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똑같다. 어느 때나 ‘무엇이나’ 얘기하는 걸 들어 보면 영적 진리와 광대하게 열린 의지에 대해 품고 있는 깊은 호기심이 있다는 걸 알아채게 될 것이다. 다는 아니지만, 이것은 이런 사람들에게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자신과 반대하는 절대 진리에 대해서는 거부하지만, 영적 믿음에 대해서 토론하고 이런 얘기를 들으려 하는데, 그것도 ‘기쁘게’ 하려 한다.

이들에게 복음은 변증론을 사용해서 믿음 체계를 공격하는 게 아니다. 영적 상태가 대화의 주류를 이루어 시간이 지나면서 우정을 쌓는 것이 아니라, 이런 영적 상태의 접근 방식을 거부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견해를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바나’의 기사에 따르면, “(이들은) 물질세계를 넘어 생각하고 초월을 경험하는 보기 드문 경향을 보인다. 이런 갈망은 깊고 영적인 대화로의 문을 열 수 있고, 때때로, 아마 기독교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듣고 싶어 할 수 있는 문을 열 수도 있다. 그들의 대화의 경향성은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참고기사]’과 나누는 대화와는 틀림없이 다르다. 이들의 영적 상태의 이해처럼, 교회를 향한 상처와 의심은 다른 곳에서 온다. 이 두 집단 모두 삶의 영적인 부분을 향해 본질이 기울어지고 있는 교회 밖 사람들을 대표한다.

조슈아 피즈(Joshua Pease)
조슈아 피즈는 작가이자 연설가로 미국 콜로라도에서 부인과 두 자녀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그의 전자책, <그때 내 옆에 없었던 하나님(The God Who Wasn't There)>은 아마존에서 구매할 수 있다.

원문은 www.churchleaders.com에 게시된 "What Does the ‘Spiritual but Not Religious’ Crowd Actually Believe?"를 문화선교연구원에서 비영리 목적으로 번역, 편집해 한국교회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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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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