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사역자들의 까칠한 현장이야기-2] 교회학교에 페미니즘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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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적으로 틀지워진 사회

‘수련회 기간 피곤하더라도 형제들이 놀라지 않도록 눈썹은 꼭 착용하세요.’라는 가이드가 실린 수련회 책자.
화장을 하지 않고 온 친구에게  “오늘 얼굴이 예의가 없네.”라는 농담.
“오빠들이 그렇게 얼평(얼굴평가)하고 몸평(몸매평가) 해요.”
수련회 때 남성 청소년들이 모인 방에서 밤새도록 이어지는 교회 이성친구들의 몸매 평가.
자랑처럼 늘어놓는 이성 친구와의 성관계 경험.

 위에 나열한 이야기는 실제로 단 1년 동안 청소년부에서 직접 경험하거나 전해 들었던 일들입니다. 이런 외모 평가는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남성에게 성적 매력을 인정받아야 하는 평가대상으로 틀 짓는 일입니다. 남자는 자신을 꾸미지 않아도 놀림감이 되지 않으며, 화장하지 않았다고 예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고, 몸매를 가꾸지 않아도 걱정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성은 늘 남성의 시선에 평가당하며 살지요. 청소년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런 틀짓기를 배워갑니다.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여성은 <Pick Me>라고 노래하고, 남성은 <(오늘 밤 주인공은)나야 나>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여성은 선택받는 대상이고, 남성은 이미 무대의 주체이며 주인공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지만 남자는 외모를 보느니라.”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런 인식은 마치 성경이 지지해주는 진리처럼 퍼져있습니다. 남성의 여성 외모 평가는 배려인 듯, 걱정인 듯, 농담인 듯 정당화됩니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불평등한 것이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교회가 사회에서 틀 지워진 문화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당연한 문화로 수용한다면, 이 틀짓기는 교회 안에서 신앙의 일부처럼 확고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WHY FEMINISM?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이곳에 모인 자매-형제님들과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설교 전에 이런 축복인사를 하곤 합니다. 아무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아 설명을 덧붙이는데요, 이상하게 형제가 꼭 앞에 불려야 한다는 틀이 있는 것 같아서 순서를 바꿔 보았다고 말이죠. 그래서 제 별명은 페미니스트 전도사입니다.

어느 날 한 여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전도사님, 페미니즘은 왜 평등주의같이 거부감 없는 단어를 안쓰고 굳이 페미니즘이라고 불러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이 친구에게 했던 대답을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가부장제 사회는 남성만이 세상을 평가하고 이끌어갈 수 있다고 믿는 사회였어. 그래서 여성은 세상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정의할 수 없고, 남성의 눈에 일방적으로 평가당해야만 했어. 페미니즘은 여성을 평등한 인격으로 평가해 달라는 부탁이 아니라, 여성도 자기 자신을, 세상을 평가하고 이끌어가는 동등한 주체라고 주장하는 학문이거든. 평등주의라고 말하면 학문의 정체성이 잘 표현되지 않지.” 완벽한 설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학생은 이 설명에 납득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책을 읽고 싶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삶의 길을 스스로 보여주시고,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이나 각 지방에서 예수를 따르기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가르침의 핵심을 거절하며 ‘사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인해 모인 공동체들은 내부에서부터 분열을 경험했습니다. 서로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고, 기존에 살아가던 방식으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편지로 교회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노예나 자유인이나 헬라인이나 히브리인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의 지체라고 말합니다.(여기에 여성과 남성은 예외일리 없습니다.) 한 몸의 지체는 평등합니다. 평등한 관계에서는 한 편이 다른 편을 일방적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권력관계를 떠난 평등한 관계를 전제할 때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페미니즘은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여성이 어떻게 차별당해 왔는지를 밝히고, 동등한 주체임을 표현합니다. 여성은 남성의 시선에 의해 부정당했던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남성은 여성에 대한 자신의 폭력을 발견하고, 고쳐나가야 할 방향을 깨닫게 하고, 동등한 동역자로서 여성을 인식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을 허하라
왜 페미니즘이어야 하냐고 질문했던 그 학생의 아버지가 청소년부의 교사를 맡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 찾아오셔서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오늘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10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였는데 10분 동안 저는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의 말이 다 맞더라고요. 전도사님이 아이들의 관심사에 대해서 오히려 더 자세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페미니스트라는 말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으셨을텐데 힘드셨겠어요.”

많은 성도들이 페미니즘은 교회를 비판한다며 경계하는 반응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교회 안에서 갈등을 유발한다고 배척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묻혀왔고 무시했던 여성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을 합니다. 듣지 못했던 목소리를 들음으로 서로를 더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면, 서로를 향한 사랑이 더 세심해질 수 있다면, 비판과 갈등의 시간이 부정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약자의 입을 막으면 반드시 그 공동체는 내부부터 분열합니다. 그러나 서로를 사랑하기 위하여 아픔을 감수하는 공동체는 든든하게 세워질 것입니다.

 

김종욱

“청소년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를 청소년 사역 구호로 삼고 다양한 세상의 목소리를 들려주려고 하는 철없는 청소년 사역자이다.


제15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 X 여성 X 교회

(기타 안내는 www.cricum.org/1315 , www.siaff.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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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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