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신드롬’에 담긴 21세기 인간의 염원




저는 아예 보지 않았어요. 경건한 신자가 어떻게 <도깨비> 같은 드라마를 시청하죠?”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한 권사님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색을 하고 말씀하셨다. 도깨비니 저승사자니 삼신할머니에 칠성신까지, 이런 잡신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는 것은 불신앙이라는 말씀이셨다. 이것이 과연 불신앙이냐 아니냐는 본 글의 논점이 아니다. 다만 웬만한 내러티브로는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모으지 못한다는 요즘 시국에, 온 국민을 도깨비 열풍으로 이끈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 현상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나는 도깨비를 열심히 봤다. 전공상 문화콘텐츠를 가까이 해야 하는 까닭도 있지만, 한 신앙지에 연재하는 글쓰기를 위해서 숙제처럼 선택한 드라마였다. 그런데 첫 회부터 신학자인 나에게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 대사가 있었다

네 백성의 마음이 너를 살리는구나. 너에겐 적이었으나 그 또한 생명. 어느 죽음도 잊히지 않으리라. 내가 네게 내리는 상이자 너의 벌이다. 검을 뽑으면 무로 돌아가 평안하리라.” 

드라마 안에서는 칠성신이라고 불리는 신적 존재가 불멸의 삶을 살게 된 도깨비 김신에게 한 말이다. 생명의 무게는 같고 어느 죽음도 정당화될 수 없으니 대가를 치르라는 말이 묵직하게 남았다.

불교적 세계관이니 샤머니즘적 신앙이니 말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어느 한 개별종교만을 콕 집기는 어려운, 상당히 잡스런신관이다. 동양적 종교심을 배경에 깐 드라마라는 것이 더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난 언제나 그대와 함께였다.”

운명은 신이 던지는 질문이다. 답은 그대들이 직접 찾아라.” 

까불이 재벌 3덕화에게 빙의한 칠성신의 이 깊은 대사에 잠시 도깨비에 나타난 신관을 묵상해볼 유혹도 없지 않았으나, 적어도 신관이나 종교적 세계관에 있어서 이 드라마는 숙성되고 체계적인 사상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드라마 작가에게 이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판타지로 즐기자고 만든 드라마 내용을 신학자가 죽자고 달려들어 비판하고 분석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다. 그러나 포스트휴먼이니 제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말들이 회자되는 최첨단 과학 문명의 한복판에서 난데없이 부는 도깨비 열풍과 신적(神的) 개입에의 열망은 그냥 스쳐 지나가기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어 보인다.



내가 포착한 첫 번째 메시지는 다시라는 재기의 기회에 대한 열망이다. 끊임없이 걸러지고 한 번의 탈락은 영원한 아웃인 무한경쟁의 후기근대 사회에서, 이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치열하고 피곤하게 사는데, 어머나 드라마 속 저 세상에서는 무려 네 번의 환생이 가능하다지 않나. ‘저승이(저승사자의 애칭)김선(고려시대 왕비이자 도깨비의 여동생)이 안타까운 이별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었던 장치가 바로 환생이었다. 최종회를 앞두고 여주인공(은탁)이 죽는 참담함에도, 도깨비와 그의 신부가 단풍국에서 낭만스럽게 재회를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환생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생은 망했어.”  

청년들 사이에서 하나의 유행어처럼 회자되는 이 표현은 사실 진지하게 생각하면 기독교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표현이다

나는 아무래도 임진왜란 때 적에게 성문을 열어준 거 같아.” “쟤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지금의 삶이 노오오오~에도 불구하고 잘 풀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 혹은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또래가 땀 흘리지 않고 누리는 호혜에 대해서, ‘전생의 업보를 탓하며 자조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솔직히 드라마 도깨비에 열광하는 이성적인 현대인들 중에서 어느 누가 진지하게 전생이나 후생을 믿을까? 그저 현실의 치열함을 잠시나마 잊을 만큼 환상적으로 표현된 다시라는 기회에 행복해하는 것이겠지.



삼신언니라고 불렸던 빨간 정장의 미녀가 난발했던 대사, 널 만들어서 세상에 내어 놓을 때 내가 참 행복했거든,” 이 역시 오늘을 사는 이 땅의 모든 이들이 듣고 싶은 말이었다. 푸릇푸릇 미래를 꿈꾸어야할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잉여루저라 부르는 세상이다. 쓰임이 다하면 버려지는 호모 인턴스의 비애를 온 몸으로 겪어내는 청춘들이 가득하다. 한창 일할 40대에 죽어라 달리던 경쟁의 트랙에서 실적 따라 정리해고되고 구조조정되는 중년의 자존감도 바닥이다. 정말 이렇게 살려고 이 땅에 태어났나 자괴감이 드는인생들에게 눈에 보이는 예쁜 삼신언니의 입으로 전해진 저 말은 큰 위로였으리라. , 적어도 우리는 신이 지을 때만큼은 차별 없이 행복했던 귀중한 생명들이구나.



어디 그뿐이랴. 기승전결의 납득이 가는 성취를 경험하지 못하는 시절에 내 능력 너머에서 오는 도움의 손길은 얼마나 간절할까. 미혼모였던 은탁의 어머니가 뺑소니범에 의해 죽게 되었을 때, 도깨비는 어머니의 간절함과 은탁의 힘차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은총(?)을 베푼다

네가 살려달라는 것이 네가 아니구나.”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아이를 살려달라는 어린 엄마의 간절함에 도깨비는 생사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기고 모녀를 살려낸다. 

그대는 운이 좋았다. 마음 약한 신()을 만났으니.” 

한겨울 눈발과 함께 흩날리는 복숭아 꽃잎에, 기럭지 바람직한 공유의 비주얼과 목소리로 들려온 대사는 드라마를 보는 이들의 이성을 마비시켰으리라. 으응, 그래. 우리에게도 저런 기적이 있으면 좋겠어. 뭐 어떤 신이여도 좋아.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이 달음질에 지쳤어. 너무 힘겨워. 꼭 유신론자여서가 아니다. 시청자들은 자신들의 합리적노력 너머에서 작동하는 선물 같은 기적을 바라며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전개에 대리만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차별 없는 귀한 생명으로, 다시, 너머의 힘을 바라며! 드라마 <도깨비>가 동일 트랙, 무한경쟁의 후기-근대적 삶에 지친 대한민국 젊은이들과 중년에게 준 판타지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명에 등급을 짓고 차별하는 세상에 대한 불만, 한 번 넘어지거나 늦게 뛰어도 탈락되고 영영 재기가 불가능한 경쟁 시스템에 대한 좌절감, 하여 어떻게든 내 능력 너머의 도움이 선물처럼 오기를 바라는 간절함. 드라마를 보는 그 어느 누구도 도깨비가 실재하고 그런 기적을 인간들에게 가져다 줄 것이라 믿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영상물 안에서 기적을 행하며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기회와 힘을 부여하는 신적 존재는 잠시나마 가상의 위로와 소망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우리가 고백하는 기독교의 신은 결코 인간의 모습을 하거나 인간의 몸에 빙의하지 않는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이시지만, 시간을 멈추지도 인간 이성을 잠재우시지도 않는다. 에에? 내가 취한 거야? 겨우 위스키 한 잔에?” 덕화는 칠성신에 빙의된 순간에 자의식을 잃었지만, 기독교인들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에게 자유 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직접 찾으라고 초청하신다. 늘 함께 있으니 두드려라. 이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 원하는 것을 눈앞에 내어주시겠다는 마술적 약속이 아니다. 내가 함께 한다. 그러니 너희들이 만들어 내어라. 한 번의 실수로 버려지는 시스템은 내가 원하는 질서가 아니다. 나는 헤세드(은총, 사랑)의 하나님이다. 이 사랑이 너와 나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만물 사이에서도 가능케 하여라. 지금 이 땅에 버려지는 생명이 얼마나 많은지 둘러 봐라. 물리적 생명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생명도 그렇다. 하나님은 다음 생이나 그 다음 생을 바라는 삶 대신에, 지금 여기에서 살아갈 기회와 힘을 부여하는 관계를, ()을 건설하라고 신자들을 초청하신다.

그러니 난데없는 도깨비 열풍에 신자로서 관심할 부분은, 그 드라마에 사용된 상징이 기독교적이니 아니니 하는 싸움이 아니다. 사람을 귀히 대접하지 않는 이 차갑고 계산적인 세상에서, 버려져서 시리고 버려질까봐 불안한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생명으로 환영하고 다시 삶을 살아낼 버팀목이 되며 너머의 힘을 알려주는 선교의 텃밭이 주어졌음을 깨닫는 것이다.


백소영 

목사의 큰 딸로 태어나 목회밑천 노릇을 톡톡히 하는 동안 교회는 삶의 현장이요 기독교 신앙은 삶의 실존이 되었다. 기독교사회윤리학을 전공하고 그 중에서도 공동체의 윤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필연이다. 대학 강의, 교회 특강과 인문학 강좌를 통해 기독교적 세계관을 대중의 언어로 전하는 일이 즐겁다.


● 2017 1차 문화포럼 "탈종교 시대, 한국 교회는 어디로 가야 하나" 안내 ● 


지난 연말통계청이 10년마다 진행하는 종교인구 조사가 나왔습니다개신교의 교세 감소와 불교천주교의 약진을 기대하던 예상과는 달리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고종교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교계마다 분석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귀결은 한국 사회에 탈종교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평입니다그러나 엄밀히 말해 탈제도종교화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불안과 생존 경쟁 속에서 도피처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기성 종교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무교 인구의 증대와 영성 추구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이같은 움직임이 최근 드라마 도깨비’, 영화 곡성’ 등 대중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입니다문화선교연구원은 최근의 탈종교적 현상을 분석하고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모색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였고그러한 관점에서 2017년 첫번째 문화포럼을 엽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신청하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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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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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

      • 도깨비의 말 중에서
        "언젠가 너에게도 신이 머무는 날이 올꺼야"
        인생은 투 트랙이기에 신자든 불신자든 고난은 누구든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인간에겐 은총이 필요하다. 불신자에게는 일반은총이 신자에겐 특별은총이 합리적 노력 너머의 선물이지 않을까 싶다

      • 늘 눈으로만 보다가 처음 글 올립니다. 도깨비라는 드라마를 한편도 보지 않은 사람인데, 이 드라마에서 이런 내용을 건져올리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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