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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장신대 교수 기독교와 문화,
문화선교연구원 원장)

<나는꼼수다(이하 나꼼수)> 열풍이 거세다. 열풍의 주연 역할을 하는 이는 사람의 태도는 살고 싶은 욕망과 자기 존재를 위협하는 공포로 결정된다고 한다. 특별히 불확실성이 강화하는 공포에 대처하는 방식이 우와 좌를 갈라놓는다고 그는 말한다.
 
‘우’는 공포라는 실체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지니는 두려움에 대한 동물적 반응일 뿐이고, ‘좌’는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려고 애쓰며 그 공포 실체에 대한 대처를 모색하는 논리적 태도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주장이 보수와 진보에 대한 일반적 분석은 아니며, 우리 사회 안에서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직관과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그의 직관과 통찰에 대해 공감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이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도 깊게 생각해야 한다. ‘나꼼수’ 식의 좌와 우에 대한 인식은 결과적으로 ‘좌’와 ‘우’의 대화와 공존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면에서 우려스럽다. 이미 내려 버린 ‘우’에 대한 정치적, 도덕적 판단은 그들을 대화와 동역의 상대로 대하기에는 너무 부정적인 반면 ‘좌’에 대하여서는 지나치게 우호적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역사적 경험과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보수와 진보는 모두 현실이 이상과는 다르다는 인식, 곧 삶의 문제점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을 갖는다. 보수는 현실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식하지만 급격한 변화가 가져올 미래의 문제점이 현재의 그것보다 크게 보이고, 반면에 진보는 현재보다는 미래의 변화가 가져올 결과에 대하여 더욱 낙관적 기대를 한다.
결과적으로 보수는 현실지향적인 경향을, 진보는 현실비판과 미래지향적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이미 선거를 통하여 나름대로의 보수적, 진보적 선택의 결과를 경험하였다. 그 어떤 선택도 ‘좌’와 ‘우’의 성향 자체로 도덕적, 정치적 결과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실력이 담보되지 못한 ‘좌’는 혼란을, 소통이 함께 하지 않는 ‘우’는 분열을 낳게 된다는 것이 우리가 얻은 교훈이 아닐까?

2012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다. 연이은 선거는 우리 사회 현실을 더욱 드러낼 것이다. 남과 북의 갈등 뿐만 아니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기성세대와 다음 세대들 사이의 갈등은 좌와 우의 갈등으로 더욱 격화될 것이다.
이러한 갈등의 시대에 기독인은 어떤 삶의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인가? 신앙이 없으면 믿음의 세계를 맛 볼 수 없어 불확실성의 공포로 인한 불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신앙은 불확실성과 모호함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삶에 대한 신뢰와 소망을 품게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로 작동한다.
 
보수적 성향이 있는 사람은 신앙을 통해 얻는 신뢰로 현재의 삶에 감사하고 미래의 변화에 대하여 품은 불신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진보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 신앙을 품는다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적 기대보다는 더욱 구체적 비전을 발견하고 현재의 삶과 다른 사회구성원들을 더욱 신뢰하게 될 것이다.

갈등이 심화할 수록 우리 사회의 진정한 소통과 공감과 연대는 오로지 진정한 믿음으로 가능하다. 2012년의 소망은 보수와 진보가 신앙 안에서 더욱 신뢰 중심의 공동체를 일구어 가는 것이다. 그 소망의 싹을 피워 나감이 신앙인과 그 공동체의 시대적 사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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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을 넘어선 새로움을 향한 소망


임성빈
(장신대 교수 기독교와 문화,
문화선교연구원 원장)

누군가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물레방아 인생을 노래하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인생은 새로움보다는 반복과 순환으로 이어지는 일상의 연속으로 보일 때가 많다. ‘해아래 새 것이 없다’는 성경의 증언도 이러한 생각에 힘을 실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2011년의 마지막 날을 맞는 우리의 마음을 새삼 돌아 볼 필요가 있다.
과연 2011년의 마지막 날들을 지내는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 매해 맞이하는 11월의 추수감사절과 12월의 성탄절. 어떤가? 이번에는 어떤 마음으로 맞을지 자신에게 물어보자. 만약 우리가 청교도와 미국 원주민의 역사만 말하는 추수감사절을 반복한다면 우리의 삶에 진정한 감사는 깃들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우리가 반복되는 연말연시의 소비문화를 부추기는 분위기에서 성탄절을 맞는다면 ‘섬김’과 ‘나눔’의 성탄 정신을 상실한 채 ‘과시’와 ‘쾌락’과‘탐욕’의 문화만 누리다 끝나는 또 하나의 그저 그런 성탄절로 보내고 말 것이다.

더 이상 상투적이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감사와 섬김과 나눔이 삶으로 구현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돌고 도는 인생, 물레방아 인생처럼 보이는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도 새로움을 경험하고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삶은 어디에서 기대할 수 있을까? 참다운 의미를 마음에 머금은 채 그 의미를 전해주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새로움을 기대할 수 있는 소망을 세상과 나누고 싶다. 우리가 경험하였기에 더욱 확신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소망 나눔의 이유이다. 우리가 반복되는 일상, 상투적으로 변해가는 삶을 새로움으로 맞고기대할 수 있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에서 출발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수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소망을 잃어가는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삶의 절망과 권태와 포기를 넘어서는 ‘새로운 피조물’ 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망은 ‘누구든지’ 우리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오늘’을 대하는 모든 이웃들이 삶의 무게와 지루함을 넘어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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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시대의 문화선교




임성빈 (장신대교수 기독교와 문화, 문화선교연구원원장)




21세기를 맞이하여 우리 모두는 한국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
습니다. 2008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시위는 우리에게 웹
2.0이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방식이 초래할 혁명적 사회변동을 미리 엿
볼 기회였습니다. 또한, 2010년부터 아이폰을 필두로 시작된 스마트폰의
보급은 트위터나 페이스 북 같은 SNS(Social Network Service, 소셜 네
트워크 서비스)의 가공할만한 파급력을 전방위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모두 이전의 의사소통체계와는 다른 적극적인 자기표현
과 확장성, 실시간성, 쌍방향성의 소통방식을 보여줍니다. 앞으로 이러한
혁명적 커뮤니케이션이 사회 전반에 미치게 될 영향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그 양상 또한 혁신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많은 교회는 이러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지 못합니다. 오히려 문화지체(cultural lagging) 현상을 보여주고 있습
니다. 세상은 자신들의 이념이나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하여 문화를 적극
적으로 활용한 반면, 복음 전파를 위한 우리 교회의 문화선교적인 노력은
너무도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문화 선교적 노력이 회중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성육신적인 자세와 태도
를 전제로 한다면, 교회는 무엇보다 웹2.0을 기반으로 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문화적 특징을 이해해야 합니
다. 교회가 먼저 이 세대의 감성과 가치를 이해할 때, 비로소 새로운 세대
와의 대화와 신학적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이 세대를 향한
적합한 설교와 교육 프로그램, 다양한 사역을 통한 삶의 모델을 모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세대의 등장
이른바 소셜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 세대는 포스트모던적 문화의 영향
권 아래에서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사회를
살아가는 세대를 뜻합니다. 이들은 자기표현에 대한 열망이 강하며, 공동
체적인 인정을 갈구하고, 감성적이면서도 전문성과 신속성을 담보한 문화
를 추구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세대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포스트모
던 문화와 디지털 기술에 기초한 인터넷 문화를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문화적 배경들에 대한 관심과 논의를 이해한다면, 아직은
비교적 낯선 이들 세대의 특성을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나'를 갈구하는 포스트모던적 문화의 특성
이성을 중심으로 한 보편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상황에서 급부상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상의 영원불변한 요소,
즉 불변하는 절대적 진리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양성에 대한 관심: 상대성과 다원성으로 상징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양
상은 전통적으로 관용(tolerance)을 주요한 덕으로 표방해 왔던 서구 자유
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합니다. 그리하여 이전에는 자신의 주도권이 은연중
전제된 가운데 다른 이들을(others) 관용하였던 자세에서, 이제는 어떠한
형태의 특권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다원주의(pluralism)가 주창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별히 신학에서는, 현대 해석학이 전제로 하는 해석
자와 텍스트의 시원적인(genealogical) 다원성을 근거로 성서 해석에 있어
근본적인 다원성이 요구되기에 이르렀으며, 또한 방법론에 있어서도 ‘특정
한 문화적 전통이나 사회적 해석에 영향을 받지 않고 우리의 신앙이나 신
학에 독립적인 기초를 제공할 수 있는 역사적이거나 인간적인 경험, 즉 어
떠한 외부적인 기준도 있을 수 없다.’1) 라는 주장을 낳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사유의 양상은 문화현상적인 다양성을 배태합니다. 전통적이고
독점적인 권위를 인정하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새로운 세대들은 다양성
을 추구하며 각자의 '튀는 문화'를 조성합니다.
억압에 대한 저항: 상대성과 다원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현
존의 질서(status-quo)가 갖는 억압성에 저항합니다. 미쉘 푸코(Michel
Foucault)와 코넬 웨스트(Cornel West)등은 사상이나 텍스트, 이론들과
언어의 사용 등으로 구성되는 담론들(discourses)이 그 자체가 일종의 실
천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간파하였습니다. 백인우월주의에 기초한 인
종차별주의의 예에서 관찰되듯이, 인종차별주의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며,
사상과 텍스트, 이론을 통해 조장되고, 언어의 사용 등에 의해서 더욱 강
화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
은 정치적으로도 매우 저항적인 행동을 유발하도록 합니다.2) 우리가 60
년대 말에 미국과 불란서 등지에서 목격하였던 체제저항운동이 이러한 사
조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포스
트모더니즘이 담지하고 있는 주요한 경향중의 하나는 ‘억압에 대한 저항
성 (Resistance to Domination)’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통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강조 : 그렇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의
미에서 과거와의 단절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 권위의 모순
에 도전하고 비판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연속성을
갖습니다. 즉 교회로 대표되는 기득권에 도전하면서 이성을 강조하였던
계몽주의자들과도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은 새롭게 형성된 권위와 질서에
반기를 듭니다. 그럼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이 의심 없이 수용
하면서, 그 안에 안주하고자 했던 ‘명확하고 분명한’ 이성에 대해서도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과는 구별됩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해체주의자들에게서 극치를 보이는 가차없는 비판은 허무주의 내지
는 상대주의로 귀결될 뿐입니다.
이러한 난국을 간파한 일단의 학자들은 모든 것이 파편화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의 자아 정체성을 담보하는 방편으로서 ‘전통’을 새롭게 강
조하였습니다. 매킨타이어(Alasdair Maclntyre)로 대표되는 일군의 학자
들이 주장하는 ‘전통’은 매우 공동체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주목할 만한 것
은, 공동체적인 전통을 강조하는 이들 대부분이 계몽주의 및 그에 기초
한 모더니즘, 나아가 모더니즘에서 비롯되는 현대문화 및 사조에 대해 매
우 비판적이라는 점입니다.3) 이러한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은, 종교에 대
하여 적대적이었던 모더니즘의 역사를 잊지 않고 있는 일단의 신학자들
에 의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수용되었습니다. 이른바 ‘후기자유주의 신학
(post-liberal theology)’을 주창하는 죠지 린벡(G. Lindbeck), 하우워와
스(Hauerwas) 등이 그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러나 전통이 강조된다고 해
서 무조건 문화적 보수로 회귀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성신학 등
의 해방신학 및 다양한 맥락적 신학들(contextual theologies)에서는 전
통 안에 감추어져 왔거나 억눌려 왔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그들의 주장에 역사성을 부여하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
단순화의 위험을 무릎 쓰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특징을 요약한다
면, 지금까지 전통이나 이성에 근거하여 ‘나의 정체성’을 발견하였다고 생
각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을 의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진
정한 ‘나’를 발견하기 위하여 기성의 권위에 반항하며, 온갖 형태로 ‘튀어’보
지만 결국은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몸부림치는 현실이 곧 포스
트 모던적 상황인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고려할 때, 우리는 새로
운 커뮤니케이션 세대가 갖는 특징-자기표현에 대한 욕구와 공동체적 참여
를 통한 인정의 과정-이야말로 포스트모던적 문화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한
나름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적극적인 시도로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커뮤니케이션’을 갈구하는 디지털 사회의 문화적 특성
사회의 구조와 문화가 급격하게 변화할 때, 방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
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혁명적인 발전입니다. 오늘날 커뮤니케이션을 주
도하는 매개체인 미디어는 수단 이상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새로
운 문화는 새로운 매체를 요구하고, 새로운 매체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간다고 하지만 21세기 미디어는 기존과는 또 다른 문화적인 문법을 만들
어내고, 새로운 인간의 등장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세대는 인터넷을 비롯한 SNS를 매개로 세계와 개
인적이고 주체적이며 쌍방향적인 관계를 맺어 갑니다. 때문에 이들은 철
저한 개인주의 문화와 감성에 바탕을 둔 지적 개방성을 문화적 특성으로
갖습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해 세계내의 다양성을 체험하기 때문에, 세계
에 대해 포용적일 뿐 아니라, 쌍방향적인 관계성을 지향합니다. 이들은 관
계적인 대화를 통해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시도하고, 문화적인 혁신을 추
구해 갑니다. 이 외에도, 성숙성에 대한 집착, 다소 성급한 신속성의 추구,
끊임없는 사실 확인을 통한 신뢰추구 등은 디지털 세대의 대표적인 문화
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포스트모던적 요구와 디지털 문화의 성숙단계로서의 SNS 세대
진정한 ‘나’의 발견을 갈망하며 몸부림치는 포스트모던적인 문화적 상황
에서,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나’를 표현하고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자 하
는 욕구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세대를 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세대는 포스트모던 문화에 대한 응답이며,
디지털 문화의 성숙과정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웹 2.0은 디지털 기술이라고 하는 새로운 과학기술에 익숙한 사람
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정보격차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회 이분
화 현상을 개선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전에
홈피를 제작하려면 어느 정도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비교
적 손쉽게 웹 2.0을 기반으로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사이버 공동
체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SNS를 비롯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은 기존 언론을 견제하는
대안 언론으로서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성언론이 강대국들과 자본의 이
해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면, 블로그 및 SNS 등은 그러한 이
해관계에서 상당 부분 자유롭습니다. 이라크 전쟁 시 세계적 주목을 받았
던 평범한 건축가 살람 팍스의 ‘라에드는 어디에 있나?’라는 개인 블로그
는 이해관계와 무관한 대안적인 보도의 형태를 보여주었고, 트위터 같은
곳에서 논의되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트윗들과 방식들은 기존의 언론들
과는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에서 꿈꾸었던 참여적 민주시민사회의 가능성
을 더욱 높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세대의 부상과 교회의 과제
이러한 보다 스마트하고 역동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익숙한 세대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주류를 부각되면서, 교회는 매우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의 청년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를 고
민하게 되는 선교적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먼저 기성 종교에 대한 의심과 비판을 담은 이른바 ‘안티 기독교’의 움직
임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더욱 활발해 질 것이라는 점을 주목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안티기독교세력이 SNS와 같은 공간에서 제
도권인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 비판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
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을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들이 여전히 기독교
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습
니다. 아울러 여전히 신비적인 경험에 대한 관심이 왕성하다는 사실을 지
적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정통 기독교나 교회의 가치관과는 다르지만, 뉴에
이지나 요가, 도 등 인간의 구원과 수양, 영혼의 문제에 대해 알고 싶어 하
는 욕구가 적극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1)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문화의 종교적 특징
웹 2.0을 비롯하여 SNS등에서 종교적 신비나 영혼의 문제가 왜곡된 상
태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종교성이 존재하는 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
제는 왜곡된 상황에 대한 적확한 분석과 수정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
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분석적 시도가 요청됩니다.
첫째, 새로운 세대들은 기성·제도적 종교에 대해서 비판하며 지금까지 당
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기존의 가치관에 대해서 회의를 품습니다.
예컨대 인터넷에서는 기존 종교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기성 종교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성직자에 대한 비판이 성행합니다. 이것은 권위에 대한
비판의식이 매우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5)
둘째, 종교적 특징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초월
에 대한 경험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정보 교
환에 있어서 비약적인 속도를 담보한다면, 디지털 세상에서 속도(speed)
는 시공간의 압축(time-space compression)을 통하여 나와는 다른 실
재(reality)들이 다양하게 존재함을 절실히 경험하게 합니다. 결국 이러한
다양한 실재의 발견은 자신의 존재를 상대화하게 되며, 결국 이성의 한계
안에서 포용할 수 없는 세계의 다원성을 인식하게 합니다. 이러한 다원성
인식은 결국 상대적인 상태를 극복하고자 하는 초월에 대한 욕망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셋째, 새로운 세대의 종교적 특징은 모호함입니다. 전통적인 신앙에서는
정통성이 중요했던 반면, 이들의 커뮤니케이션 환경 속에서의 신앙은 다
원적 차원의 문제로 인식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 1절을 검색하면,
하이퍼텍스트로 바벨론 신화나 다양한 신학자들의 견해, 비판적 정보가
동시에 제공됩니다. 때문에 그들은 교회가 특정한 교리적 차원의 가르침
만을 고수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만약 이러한 현상이 교회에 가장
근본적인 도전이 된다면, 이를 위해 교회는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바
른 해석과 신학적 설명을 제시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2)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세대를 향한 교회의 과제
교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러한 세대들의 커뮤니케이션 속에 있는 갈망
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블로그나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이루어지는 커뮤
니케이션은 실은 진정한 ‘나’를 찾으려는 갈망입니다. 이러한 본질적 욕구
를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과제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
한 욕구를 진심으로 인정하면서, 블로그나 SNS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
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매개하기 위한 전술적 지혜가 필요하리라 여겨집
니다. 교회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만물의 창조자요 구원자이
시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는 진리의 하나님을 소개하고, 그들이 그 분
을 만날 수 있는 초대의 자리로 인도해야 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으
로 블로그나 SNS미디어 등을 활용하여 선교의 장으로 활용해야 할 것입
니다. 아울러 교회 내에서도 새로운 세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적극 검
토하여 SNS를 이용한 큐티나 모임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
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SNS를 통한 예배도 현재 시도되고 있는 상황
가운데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교회는 신학적 가이드라인을 통해 교회 안
에서의 다양한 SNS 활용방안을 전향적으로 모색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교회는 기성세대들과 이른바 SNS 세대 간의 여러 의미의 격차가
존재하고 이 간극이 쉽게 해소될 수 없음을 인식하면서, 기성세대에게 새
로운 문화에 대한 이해와 교육을 강화하고 아울러 젊은 세대들에게는 기
성세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실천하게 함으로써 서로 소외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회의 중요한 과제는 커뮤니케이션은 블로그나 SNS
와 같은 공간에서 꾸미기 위한 너와 만남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로서 만날 때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들
의 삶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교회는 가상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에서는 결
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통전적이고 인격적인 만남의 모
델을 만들어가야 하며, 이를 삶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교회는 이들이 사
이버 세계에서 꿈꾸는 삶이 실제적인 삶에서 구체화될 수 있도록 인도해
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가며: SNS시대, 문화선교의 방향
무엇보다도 교회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려 애써
야 합니다. 사실상 젊은 세대는 우리 사회의 미래의 주역이자, 교회로서
도 선교 2세기의 주역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대를 선교적 섬김의
우선 대상으로 선언해야 합니다. 여전히 종교적 욕구를 가진 이 세대에
게 그 방식에 맞는 새로운 방식으로 기독교의 가치관을 전달해야 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가장 먼저 노력하여야 할 것은 더욱더 섬기며 겸손한 교회
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기성종교에 대해서 비판하고 회의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기존의 교회가 수용해야 할 점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
나 만약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전통적이며, 장유유서적인 관점에서 권위
만을 내세우면 소통은 불가능합니다. 교회는 더욱더 사랑으로 섬기며 공
감하며 함께 행동하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둘째 교회는 블로그나 SNS등을 선교의 영역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이
러한 공간은 새로운 선교지입니다. 먼저 선점하는 세력이 이 공간의 영향
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유로움과 새로움과 다양함으로 인해
서 기존의 교회들이 쉽게 영역을 확보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이 영역은
결코 포기할 수는 없는 마지막 ‘땅 끝’인 셈입니다. 그 영역은 권위와 전통
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기독교가 가진 우수한 가치관과 문화로 채워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이트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적극적인 변증
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통전적 영성, 즉 몸과 영혼, 세상과 교회와 같은 이원론적 도식을
극복하는 온전한 성경적 영성을 보급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인 영성훈련
의 프로그램이 제시되어야 하며, 전교회가 이를 중심으로 문화적 삶의 갱
신이 있어야 합니다. 육과 영혼을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관심을 표명하는
풍조를 지양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보다 더 통전적이고 성경적인 영성
으로 바로 가져갈 수 있도록, 성령 안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실현해가야 합니다.
넷째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지표를 교회는 적극적으로 상기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
대는 새로운 방식의 소통방식과 도구를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갱
신을 추구할 때에는, 젊은 세대의 소통방식이 갖는 갱신의 방향과 접촉점
을 이루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러한 소통방식에 일방적
으로 편입되거나 수용하려는 입장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항상
복음을 보수하되, 그 복음의 해석과 적용은 오늘의 맥락 속에서 지속적으
로 모색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 복음은 새로운 소통의 도구와 방식으로
땅 끝까지 선포되고 나누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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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2.0시대와 문화선교
         
 임성빈 (장신대 교수, 문화선교연구원장/기윤실공동대표)


  들어가며

2008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시위와 2009년의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그 이후 조문정국은 우리에게 21세기적인 문화변동을 경험하게 해 준 사건이다. 우리는 인쇄 매체가 디지털 영상매체로 전환된 사회를 실감했으며, 이른바 웹 2.0 시대로 명명되는, 적극적인 자기표현과 쌍방향성의 문화가 도래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만약 촛불과 조문정국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또 그렇게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가를 이해할 수 없다면, 이는 아직 이 시대의 문화변동을 읽어내지 못했다는 뜻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교회가 이러한 변화에 기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반면, 복음 전파를 위한 우리 교회의 문화선교적인 노력은 너무도 아쉬운 점이 많다.
문화 선교적 노력이 회중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성육신적인 자세와 태도를 전제로 한다면, 교회에게는 무엇보다 웹 2.0 세대의 문화적 특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교회가 먼저 이 세대의 감성과 가치를 이해할 때, 비로소 성경에 바탕한 신학적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 세대를 향한 적합한 설교와 교육 프로그램, 다양한 사역을 통한 삶의 모델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 


    1. 웹 2.0 세대의 등장

이른바 웹 2.0 세대는 포스트모던적 문화의 영향권 아래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사회를 살아가는 세대를 뜻한다. 이들은 자기표현에 대한 열망이 강하며, 공동체적인 인정을 갈구하고, 감성적이면서도 전문성과 신속성을 담보한 문화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웹 2.0 세대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포스트 모던 문화와 디지털 기술에 기초한 인터넷 문화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러한 문화적 배경들에 대한 관심과 논의를 이해한다면, 아직은 비교적 낯설은 웹 2.0 세대의 특성을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1) ‘나’를 갈구하는 포스트 모던적 문화의 특성

이성을 중심으로 한 보편성을 강조하는 모더니즘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감소되는 상황에서  급부상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상의 영원불변한 요소, 즉 진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웹 2.0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다양성에 대한 관심:  상대성과 다원성으로 상징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양상은 전통적으로 관용(tolerance)을 주요한 덕으로 표방해 왔던 서구 자유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리하여 이전에는 자신의 주도권이 은연중 전제된 가운데 다른 이들을(others) 관용하였던 자세에서, 이제는 어떠한 형태의 특권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다원주의(pluralism)가 주창되기에 이르렀다. 특별히 신학에서는, 현대 해석학이 전제로 하는 해석자와 텍스트의 시원적인(genealogical) 다원성을 근거로 성서 해석에 있어 근본적인 다원성이 요구되기에 이르렀으며, 또한 방법론에 있어서도 ‘특정한 문화적 전통이나 사회적 해석에 영향을 받지 않고 우리의 신앙이나 신학에 독립적인 기초를 제공할 수 있는 역사적이거나 인간적인 경험, 즉 어떠한 외부적인 기준도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낳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유의 양상은 문화현상적인 다양성을 배태한다. 전통적이고 독점적인 권위를 인정하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새로운 세대들은 다양성을 추구하며 각자의 '튀는 문화'를 조성한다.

억압에 대한 저항: 상대성과 다원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존의 질서(status-quo)가 갖는 억압성에 저항한다. 미쉘 푸코(Michel Foucault)와 코넬 웨스트(Cornel West)등은 사상이나 텍스트, 이론들과 언어의 사용 등으로 구성되는 담론들(discourses)이 그 자체가 일종의 실천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간파하였다. 백인우월주의에 기초한 인종차별주의의 예에서 관찰되듯이, 인종차별주의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며, 사상과 텍스트, 이론을 통해 조장되고, 언어의 사용 등에 의해서 더욱 강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인간사회의 억압들이 이러한 담론들에 의해서 매우 교묘하게 조정되고 있음을 간파한 것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독특한 공헌 중 하나이다. 담론들의 형태뿐 아니라, 담론적인 억압이 유지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여 주는 보다 ‘비담론적인 것들(extra-discursive affairs)’-예컨대 사회제도, 계급구조, 경제적 필요와 제도적 기구 등-의 존재에 의하여 억압이 가능해진다는 관찰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 정치적으로도 매우 저항적인 행동을 유발하도록 한다. 우리가 60년대 말에 미국과 불란서 등지에서 목격하였던 체제저항운동이 이러한 사조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담지하고 있는 주요한 경향중의 하나는 ‘억압에 대한 저항성 (Resistance to Domination)’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원고는 2009년 6월 11일 청어람에서 문화선교연구원과 기윤실이 공동개최한
교회의 사회적 책임 2.0 포럼 <교회와 사회, 문화적 감수성으로 만나다>에서 본원 원장이자 장신대 기독교문화 교수인 임성빈 원장의 기조발제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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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의 위기와 영화

로버트 존스톤(Robert Johnston)의 관찰에 따르면 현대교회의 위기는 ‘현실 외면의 위험’과 ‘자기만족의 위험’으로 대변된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동 떨어진 곳이 되어 사회와의 일반적인 소통(communication)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른바 게토(ghetto)가 되어가고 있다는 비판은 교회가 이러한 위험들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하여서는 사회와의 소통을 회복하여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이루기 위하여 교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분야중 하나가 영화이다.

그것은 영화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문화적 양식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가지는 많은 매력이 있지만 우리가 영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사람들의 숨겨지고 억압된 욕망과 그것으로 인하여 파생하는 개인적, 사회적 갈등들로 구성되는 사회문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영화를 통하여 우리는 그 시대의 문화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

21세기의 특징 중 하나는 영상시대가 더욱 본격화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문자시대가 끝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전히 문자는 우리들의 의사소통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영상시대의 도래를 더욱 강조하는 이유는 문자시대와는 다른 차원의 준비와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나름대로 문자시대에 적응하여 살기 위하여 수많은 준비를 하여 왔다. 의식이 발달함과 거의 동시에 우리는 부모님의 이야기와 책읽어주기를 통하여 문자해독 능력을 길러 왔다. 또한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책을 읽었고, 학교에 가서는 국어 교육을 받았다. 그 모든 노력을 통하여 우리는 문자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을 배양하여 왔다. 덕분에 우리는 문자문화에 그런대로 적응하여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문자의 해석은 문장 안에서 문자를 읽고, 이해하는 것으로 온전히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문장이 위치하고 있는 전체적 주변 맥락(context)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더욱 온전한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문자시대에도 문화에 대한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이제 영상 시대가 본격화되는 21세기 초반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우선적 과제중 하나는 영상을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우리가 예전에 문자를 이해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였듯이 이제는 문자이해의 노력과 함께 영상이해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되었다. 때로 우리들은 오늘날의 영화가 주로 의존하고 있는 폭력과 성의 노골적 이미지와 표현에 당혹스러움을 느낄 적도 많다. 특별히 이러한 영상 이미지를 통한 메시지들이 우리와 청소년들에게 미칠 교육적, 사회문화적 영향력에 대하여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당혹감과 우려는 영상읽기를 통한 바른 이해를 거쳐서 더욱 적극적인 대안, 즉 기독교 문화적 대안으로 열매 맺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열심히 책을 읽는 법을 배워야 하듯이 영상 메시지도 읽을 줄 아는 우리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문자시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상시대에도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선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와 교회의 관계

그러나 영화와 교회의 관계는 그렇게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영화가 등장한 초기에는 교회가 매우 적극적으로 그것을 활용하려 하였다. 이 시기에는 복음 전파의 새로운 수단으로서의 영화라는 새로운 문화적 도구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다. 예컨대 오버아머가우(Overammergau)의 그리스도 수난극(1898)과 성 안토니의 유혹(1898) 등이 이때 제작되었다.
그러나 급속한 영화산업의 성장은 교회의 영화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부정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게 만들었다. 미국의 경우 1913-16년 사이 21,000개의 극장이 문을 열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추세는 결국 교회가 영화를 경쟁자로서 경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것은 교회와 영화는 가치와 의미와 삶의 비전에 관심한다는 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또한 극장과 교회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점차로 그 관심을 교회로부터 영화로 옮겨가는 것으로 보이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20세기 초는 이른바 ‘영화발명의 시대’로 불리는 시대로서 스타 시스템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 무렵에는 직장인들의 80% 이상이 특정스타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비판적으로 본다면 점차로 영화는 현실 도피의 장이 되어 갔다. 또한 대형 스튜디오와 극장 체인이 영화산업의 기반을 다져감으로써 점차로 영화산업의 예술성이 위협을 받게 되었고, 교회와의 관계도 상당한 긴장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유흥’이라는 요소의 유용성을 발견한 영화계는 영화의 힘을 깨달은 교회, 특별히 로마 가톨릭과의 사이에 심각한 대립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결국 1927년에 이르러서는 종교계의 영향력과 정부의 검열위협에 직면한 영화계 스스로 MPPDA(Motion Picture Producers and Distributors of America)를 조직하고, 자체 검열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불경스런 말, 성직자에 대한 조소, 반 애국주의 등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경제대공항의 시작으로 상황이 급변하였다. 영화의 생존을 위하여 영화계는 감각주의, 즉 섹스와 폭력에 눈을 돌리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자 영화계와 교회의 관계는 더욱 갈등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예컨대 가돌릭은 품위단(Legion of Decency)을 조직하였다. 이 모임의 성격은 다음의 견해들에 잘 나타나 있다. 1933년 미국의 바티칸 사도직 대리자는 “가톨릭 신자들은 도덕에 치명적 위협이 되어 버린 영화를 정화하는 켐페인에 하나되어 활발히 참여하라는 소명을 하나님과 교황과 주교와 사제들로부터 받았다” 고 선언하였다. 또한 1934년 필라델피아의 더거티 추기경은 “모든 영화를 멀리하라... 이것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죄로 인해 고통당하는 모든 양심에게 주는 단호한 명령이다”. 이러한 부정적 반대운동의 결과 필라델피아 주에서는 영화관객이 40%나 감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50년대에 이르러 검열제도는 확연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점차로 수용 가능한 것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바뀌어 가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등급체계가 등장하였으며, 영화의 내용도 매우 다양하여져서 심지어 악행과 죄를 호의적으로 묘사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포스트 모던적 문화가 부상하여 득세하는 21세기를 맞이하여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성과 함께 일반적으로 교회는 영화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영화는 이전만큼 교회를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기지 않아도 될 만큼 자체적인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교회는 영상시대를 맞이하여 영화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가다듬을 때가 되었다.

하나님 나라와 영화

일반적으로 영화를 비롯한 대중예술은 우리에게 삶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실체 자체가 아니라 예술적으로 묘사된 경험(Imaginative ordering of experience)임을 알아야 한다. 즉 영화는 문화적 텍스트일 뿐 아니라 예술적 구성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삶의 다양한 주제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여 주고,삶의 복잡성 속에서 살아가도록 하여 줌으로써 "삶을 구비케 함"의 역할을 한다. 또한 영화를 비롯한 대중예술은 문화적 개념과 가치의 전달, 즉 문화소통[cultural communication]의 주요한 수단, 사회 문화적 비평의 도구 (social and cultural criticism), "특정한 집단에 의하여 선택되고 형성된 과거의 모음"으로서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의 도구로서, 또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냄으로써 우리의 감각을 통하여 경험하는 실체와는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영화의 기능은 우리들에게 그것이 우리로 이 세상과의 대화와 이해에 매우 중요한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또한 영화는 한 개인의 한정된 시각을 넘어서 존재하는 다른 세계에 대한 소개를 통하여 우리의 감각적인 경험을 넘어서는 세계에 대한 탐색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영화가 기독교문화의 형성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시사하여 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교회가 사회를 ‘제대로 보지 못함’도 의미한다. 물론 영화가 보여 주는 사회적 현실이 실제의 현실 자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사회에 그러한 시각으로 현실을 이해하는 이들이 존재함을 우리는 영화를 통하여 알 수 있게 된다. 결국 우리는 영화를 통하여 이 세상을 더욱 온전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 신앙인들은 영화를 취사선택하는 것과 식견 있는 영화 관객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영화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신앙인들은 “예수님이 우리 삶의 빛이시라는 것을 보여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여정에 빛이 되고 길잡이가 될 수 있는가를 보여 주어야 한다. 예컨대 일상의 고통이나 부정의, 용서나 구원, 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이른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기독교문화적 영화는 노골적으로 종교적 주제를 다루거나, 혹은 ‘가족’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영화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더욱 넓은 관점에서, 즉 하나님의 일반 계시의 차원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와의 관계성을 다양하게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영화라는 독특한 문화적 양식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더욱 넓혀 나갈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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