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미디어 #1] '프사' 바꾸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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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미디어 #1.

‘프사’(=프로필 사진) 바꾸기 좋은 날


조 성 실*


1. 우리는 수시로 '프사'를 바꾼다.

‘프사’는 ‘프로필 사진’의 준말이다. 우리는 '프사'를 바꾸며 자신을 표현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근사한 곳을 여행 중일 때,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화가 나서 우울할 때, 새로운 결심을 세웠을 때, 아니면 단지 화장실 불빛이 마음에 들 때... 우리는 프사를 바꾼다. 그리고 우리는 상대방의 ‘프사’를 통해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다. 성별이나 외모, 옷차림뿐 아니라, 요즘 상대방의 관심사, 연애사, 정치성향, 심리적인 상태까지도 추측한다. 이쯤 되면 ‘프사’는 단순한 ‘개인 식별용 사진’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된다. 



2. 이미지를 소비하는 사회

‘보드리야르’는 앞으로의 사회가 ‘이미지를 소비하는 사회’로 변화되리라 예측했다. 사람들은 상품이 가지고 있는 기호를 통해 의사소통하고, 개인은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기 위해 또다시 이미지를 소비하는 구조로 나타난다. 소비자는 이러한 '기호가치'를 소비하면서 '문화권력'을 얻게 된다. 자동차는 소유자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고, 아파트는 그 안에 사는 사람의 가치를 나타내는 사회가 되었다. 이때 자동차와 아파트의 가격은 단순히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를 넘어서는 '기호가치'로 평가된다. 흔히 말하는 명품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라, '문화적 권력'이라는 쓰임새를 얻게 되는 것이다.



3. '프사'는 막강한 '이미지 소비재'

오늘날 SNS의 ‘프사’는 중요한 '이미지 소비재'로 등장한다. ‘프사’를 통해 자신의 생김새나 기분, 감정, 상태 등의 기본적인 정보를 전달함은 물론,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 정치적 지향성까지도 드러낸다. 하지만 한 개인이 자신의 존재를 한 장의 '프사'로 재현(representation)할 때에는, 반드시 이미지를 소비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쾌락'이나 '안정감', 혹은 '만족'이 개입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당사자는 시대의 참사나, 타인의 아픔에 동참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의 자발적인 표현이겠지만, 이것이 마치 새로 나온 액세서리를 유행 따라 바꾸는 것처럼 소비된다면... ‘프사’ 한 장 바꾸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대신하고, 자신이 그리는 이미지에 편승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만족감을 위한 소비재로 사용한다면... 그 진정성의 왜곡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4. ‘프사’ 바꾸기 좋은 날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테러 당시,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에게 클릭 한 번으로 자신의 ‘프사’를 프랑스 테러를 애도하는 ‘프사’로 손쉽게 바꿀 수 있도록 버튼을 생성해 주었다. 해당 버튼을 누르면 기존 자신의 ‘프사’ 위에 프랑스 국기가 입혀지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파리 테러 하루 전날 발생한 레바논 베이루트 테러에는 페이스북이 이러한 버튼을 생성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혹시 사람들에게 프랑스의 국기가 레바논의 국기보다 더 가치 있는 ‘이미지 소비재’로 평가된 것은 아니었을까? 레바논의 국기로 ‘프사’를 변경하는 버튼을 생성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버튼을 사용해 ‘프사’를 바꿨을까? 레바논 국기로 ‘프사’를 바꿨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레바논의 국기’를 알아볼 수 있었을까?


‘필자도 처음 찾아본 레바논 국기’


 

5. 우는 자들과 (오프라인에서도) 함께 울라! 

‘프사’를 통한 손쉬운 애도. 그것은 ‘이미지의 소비 행위’와 맞닿아 있다. 개인적으로는 삼성페이나 애플페이처럼 샥~! 하고 지나가 버리는 듯한 이질감이 불편하다. 최소한 이렇게 끔찍한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신문 기사라도 찾아보고, 이웃의 아픔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라도 하고 난 뒤에, ‘프사’를 바꾸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는 성경의 가르침은 ‘프사’ 바꾸는 것 정도로 만족하는 피상적인 위로를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기호와 자유에 따라 선택되는 ‘소비재’로서의 위로도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는 자들 곁으로 다가가셔서 함께 눈물을 흘리셨다(요 11:35). ‘프사’를 바꾸기 좋은 날, 곁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자신의 모습을 한번 돌아보면 어떨까?


조성실 장로회신학대학원과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와문화 박사과정을 앞두고 있다. 본원의 객원연구원이자 소망교회에서 미디어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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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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