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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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의 관심 끌기 전략

<네트워크>(시드니 루멧, 1976, 15, 드라마)



2011121일이면 네 개의 종합편성방송국이 개국 된다. TV조선(CSTV), MBN(매일경제), iTBC(중앙일보), 채널A(동아일보) 등이다. KBS, MBC, SBS와 같이 기존의 지상파(공중파)방송과 달리 케이블을 통해 송수신되는 방송이라고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시청자가 케이블을 통해 시청한다는 점에서 볼 때, 규모를 제외한다면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 이미 오랫동안 국회에서 토론되고 그리고 여론에서 회자한 것이라 종합편성 기능을 가진 새로운 방송국의 개국이 갖는 장단점들에 대해서는 모두가 숙지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과거 영화가 컬러텔레비전 수상기의 보급으로 말미암아 사양사업으로 전락했을 때, 영화계는 나름대로 자구책을 구한 적이 있다. 영화관에 텔레비전 수상기와 비교할 수 없는 대형스크린을 설치하고 새로운 영상(3D와 같은)을 구현하며, 스타시스템을 도입하는 것, 그리고 안방에서 볼 수 없는 장면들을 영화 속에 담는 것이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며 폭력적인 장면을 삽입하였다. 일단은 성공하는 듯이 보였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그것 탓에 교회와의 갈등은 첨예화됐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미디어에 대한 바른 이해에 근거한 미디어 비평능력을 기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대중문화 시대에 미디어의 역할과 의미는 결코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와 신학교에서 미디어 비평 교육이 시행되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필자는 지금까지 <트루먼 쇼>, <모비딕>,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를 통해 미디어의 세상과 본질과 그리고 폭력적인 속성에 대해 간단하게 생각해보았다. 이번에는 비교적 오래된 영화 <네트워크>를 다루면서 대중의 관심에 절대적으로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미디어의 속성으로 때문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성찰해보도록 하겠다.

미국 기독교 잡지 Christian Century지의 편집장인 윌리엄 포어(William Fore)매스미디어 시대의 복음과 문화에서 대중매체와 문화의 관계를 말하면서, 문화 속의 무엇인가가 소통을 요구하기 때문에 매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 자체의 문화생산력을 말하고 있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견해이다. 왜냐하면, 산업화한 매체 때문에 문화생산의 주체는 자본가나 지배계층이 된다고 주장하는 프랑크푸르트학파와 견해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소통의 기술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매체가 되게 한 배경으로 산업자본주의를 들었다. 다시 말해서 소통기술의 향상에는 기술혁신과 산업 자본이 사회 경제의 주축이 되는 단계의 자본주의 정신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산업자본주의에 기반을 둔 대중매체와 문화, 이 양자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기술혁신은 새로운 소통 방식을 가능케 했다. 예컨대 구술에서 문자로, 문자에서 영상으로 그리고 이제는 멀티미디어를 통한 소통이 가능해졌다. 자본주의는 이윤추구를 기본정신으로 하므로 신기술 개발과 함께 대중들의 소비욕구를 충족시키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가속했다. 겉보기에는 문화 자체에 내포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시작했어도 나중에는 전혀 다른 결과에 이르게 된다. 매스미디어가 하나의 문화이며 또한 문화를 생산하는 주체가 된다. 대중의 생명활동에서 비롯되는 문화가 아니라 대중의 감각적이고 외면적인 욕구만을 충족시켜주는 문화다. 이런 점에서 문화생산의 기제이면서 또한 후기산업사회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매스미디어는 한편으로는 문화의 첨병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의 이단아라고 말할 수 있다.

윌리엄 포어가 지적하는 자본주의의 문제는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것이 인간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이 되고 있는가?”만을 묻는다는 사실이다. 곧 제대로 돌아가는가, 손해 보지 않고 수익을 올리고 있는가에만 관심을 둔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스미디어는 시청자 혹은 청취자 혹은 독자나 관객의 관심을 끌 만한 것에만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소위 대중의 관심과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면서 매스미디어는 생산주체의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주입함으로 대중의 생명이 지향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비록 대중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도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후기 산업사회 곧 정보화 시대 혹은 지식사회가 되면서 정보와 지식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콘텐츠다. 이로 말미암아 기업형 미디어 업체들은 이윤을 얻기 위한 매우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기능만이 아니라 거대자본을 바탕으로 정보와 지식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경쟁업체들이 많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많은 자본이 투자되는 일이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미디어 운영은 대부분 광고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관심이 몰리는 곳에 광고가 집중하다 보니 대중의 무관심은 곧 기업의 직접적인 손실로 이어진다. 따라서 경쟁업체들이 많아질 땐 미디어 업체들 사이의 경쟁은 명약관화한 일이며, 이 때문에 콘텐츠는 선정적이며 자극적일 가능성은 매우 커진다.

바로 이런 사실을 소재로 삼아 영화로 표현한 것이 <네트워크>. USB라는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삼으면서 텔레비전이 얼마나 시청률에 목을 매고 있는지, 그리고 높은 시청률을 위한 생존전략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잘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시청률 하락으로 퇴출당할 위기에 있는 아나운서 하워드 빌은 마지막 방송을 하면서, 텔레비전이 추구하는 것이 고상한 가치를 갖지 않는다고 폭로하고 또 자신은 방송을 마친 후에 자살할 것이라고 말한다. 방송사고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이 덕분에 대중의 관심이 폭발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음을 알게 된 방송사는 그의 프로를 존속시키기로 한다. 거짓을 폭로하는 진실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결정의 배후에는 야심으로 가득 차있는 프로그램 기획자인 다이아나가 있다. 높은 시청률에 대한 다이아나의 병적인 집착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그녀의 모든 관심은 오직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것에 집중되어 있다. 심지어 불법 집단의 강도와 테러 행위를 생방송으로 방송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지 못하는 하워드 빌에게서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여 프로그램 폐지를 주장하지만, 그의 방송을 지속시키려는 사주와 갈등을 겪는다. 방송 책임자들과 장시간의 토론 끝에 그녀는 방송사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 하워드 빌을 죽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또 그러한 시도 가운데서도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그 일을 테러집단에 위탁하는 것은 물론이고, 실행과정을 생중계하는 잔인함을 드러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발전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과도한 경쟁, 특히 방송사간에 시청률을 두고 벌이는 과도한 경쟁이 대중과 다음 세대들에게 어떤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신 예수님은 스스로 메시지로서 또한 미디어이셨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대중 가운데 침투될 수 있기를 원하시면서 대중의 관심을 지향하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겸손과 희생 그리고 순종을 통해서 하셨다. 겉보기에는 동일하게 보여도 미디어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는 방법에 있어서 얼마나 다른가! 그 차이를 연구하고 실천할 과제는 교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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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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