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함께하는 고난 주간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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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와 함께하는 고난 주간 묵상

오 동 섭

사순절과 고난주간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그분의 수난을 기념하는 기간입니다. 특히 고난주간을 맞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하나의 텍스트로서 묵상하며 그분의 죽음과 고난에 참여할 수 있는 성화를 소개합니다.


예수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지금 당장!

제임스 앙소르, '1889년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 1888, 252.5×430.5cm, 폴 게티 미술관, 로스엔젤레스


고난주간의 시작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향해 외치는 호산나로 시작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예루살렘 도시 전체가 진동할 정도로 사람들은 흥분과 열광으로 외쳤습니다. 예루살렘을 흔드는 소리와 같이 브뤼셀에 울려 퍼진 호산나로 세상에 충격을 준 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벨기에의 화가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 1860~1949)입니다. 그의 작품 ‘1889년에 브뤼셀에 입성하는 예수’ (Christ’s Entry into Brussels in 1889)(1888)를 얼핏 보면 마치 예루살렘에 입성을 연상케 하는 환호와 함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자세히 보면 흠칫 놀라 뒷걸음칠지도 모릅니다. 한편 그의 작품에서 예수님을 찾는 것이 마치 윌리를 찾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쏟아지는 인파 속에 조그만 당나귀를 타고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게 중앙에 대충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의 오른쪽 가장자리 붉은 바탕에 브뤼셀의 왕, 그리스도 만세라고 적혀 있지만 너무나 초라해 보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림의 위쪽에는 거대한 현수막에 사회주의 만세(VIVE LA SOCIALE)라고 적혀있습니다. 군중들은 종려나무가지 대신 정치적인 슬로건이 적힌 깃발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 나타난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괴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며 다양한 얼굴의 가면이나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브뤼셀에 들어오시는데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고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조롱하듯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 너무나 파격적인 표현으로 전시조차 될 수 없어서 작품이 완성된 후 40년이 지난 1929년에 대중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천재적인 작가 제임스 앙소르는 에드바르트, 뭉크, 에콘쉴레 등과 같이 19세기 표현주의 선구자로 더 이상 자연을 모사하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내면을 대담하게 표현하는 일종의 감정표출 예술을 추구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예루살렘을 입성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패러디하여 산업 혁명 이후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주도되는 물질적 풍요와 쾌락에 감춰진 사회적인 병폐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면 속에 가려진 비인간적인 군중들과 헛된 욕망과 위선과 허세로 예수님을 인류의 구세주라기보다 초라한 패잔병 여기는 현대인들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호산나의 뜻은 요즈음 식으로 표현하면 예수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지금 당장!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이제 로마군대를 그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처단하고 부정과 비리와 거짓의 모든 것들을 심판할 것에 마음이 들떠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마치 자신들의 모든 가난과 질병은 예수님의 손에서 당장이라도 깨끗이 해결될 것이라 굳게 믿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외치지만 그들이 원하는 일시적 현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 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그들과 같이 호산나라고 외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 지금 당장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당신은 능력이 있잖아요.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면서요? 당신은 나를 책임진다면서요? 당신은 나의 구원자이잖아요? 혹시 이 작품에서 가면을 쓰고 환호하는 군중들 속에 우리 자신이 있지 않을까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나의 성공과 풍요를 위한 다른 예수에 열광하는 우리의 믿음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

안토니오 치세리, ‘이 사람을 보라!’ 1871, 45.72 x 60.96 cm 캠퍼스 유체 피렌체 근대미술관


우리는 성서를 읽으며 상상력을 다해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이 때 그동안 보았던 성화나 영화의 한 장면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당시의 상황을 그려보지만 상상력의 한계로 떠올린 성서의 장면은 뭔가 어설프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한 성서의 장면 이상의 실제적인 모습을 그려낸 한 화가가 있습니다. 그는 스위스 출신으로 인상주의가 유행했던 19세기 말에 성화를 그린 사람 안토니오 치세르 (Antonio Ciseri (1821~1891))입니다. 그의 작품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는 빌리도 앞에 선 예수님을 그린 장면입니다. 요한복음 19장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질하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별다른 죄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지난밤 흉몽으로 인해 예수님을 놓아주자고 합니다. 빌라도는 마음이 다급해져 절박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급기야 그는 유대 군중을 향해 팔을 벌려 예수님을 향해 이 사람이오라고 외치며 난감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마치 스냅 사친처럼 찍혀 화폭에 담은 주인공은 안토니오 치세르입니다. 그는 라파엘로 화풍을 이어받아 사진보다 더 섬세하고 매끄러운 초상화들을 그렸습니다.

이 작품에서 거대한 로마제국의 강력한 힘 앞에 아무런 저항할 것도 없이 무기력하게 서있는 예수님을 묘사했습니다. 그 앞에 빌라도는 금빛의 화려한 로마귀족 옷인 토가를 걸치고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정당함과 결백함을 맹세하듯 한 쪽 손을 들어 표시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힘과 승리의 상징인 빌라도 앞에 대조적으로 힘없이 초연하게 서 있는 예수님을 그려놓았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서는 그동안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담대히 말씀을 전했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듯 한 단호한 표정입니다.

예수님 뒤에는 창과 칼로 당당하게 서 있는 로마병사와 그들의 반대편엔 평소 예수님을 따랐던 여인네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강한 권력과 무력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입니다. 빌라도 아래에 있는 유대인들은 얼마 전만 해도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기며 환호했지만 이제 그들은 예수를 못 박으라고 핏대를 올리며 외치고 있습니다. 빌라도의 오른쪽에는 죽음 직전에 예수님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바라바가 살았다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면 서 있는 듯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그림의 배경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강력한 로마제국 수도를 배경으로 하여 예수님과 빌라도를 더욱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마치 당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한 섬세함과 진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유대 군중 속에 있습니까? 아니면 여인들과 함께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빌라도의 자리에서 우유부단하게 결단하지 못하고 군중에 이끌리듯 세상의 가치에 이끌려 고개 숙인 자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라고 외치는 소리에서 거대한 로마제국의 힘이 아닌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지고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동섭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M.Div) 계명대 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교육을 전공(Th. M.)하였으며 영국 옥스포드 선교대학원(OXFORD CENTRE FOR MISSION STUDIES)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M.A),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선교학 박사 수료(Th.D. candi.) 하였다. 포항 기쁨의교회, 서울서소문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섬겼으며, 영국 유학 후 대전 극동방송에서 홍보팀장으로 사역하였으며 동안교회에서 5년 간 사역 후 문화와 예술을 통한 도시선교의 열정으로 대학로에서 미와십자가교회를 시작하였다. 현재 미와십자가교회 담임목사이며 스페이스 아이 대표와 극단 미목의 기획제작 총괄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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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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