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쿼바디스>를 보고 - 대형교회, 성장에 대한 기대와 인간욕망의 결속이 빚어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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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교회, 성장에 대한 기대와 인간욕망의 결속이 빚어낸 결과

<쿼바디스>

(김재환, 다큐, 15, 2014)

 

 

한국교회의 모델은 민중교회를 제외하면 신학자의 연구가 아니라 모두 대형교회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증거를 댄다면, 대형교회에서 소위 한국교회를 섬긴다는 차원에서 시행하는 각종 세미나에 많은 중소형 교회 목회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현실이다. 좋게 말한다면, 작은 규모에서 시작하여 대형교회를 일군 목회자의 목회 경험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교회가 성장을 지향하다 보니 앞서 성장한 교회를 벤치마킹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한 결과다. 또한 대형교회에서 성장 모델을 찾는 까닭은 성장한 교회에는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있다 해도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전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말씀이든 프로그램이든 아니면 다양한 사역이든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기대의 결과다.

한편, 한국교회가 끊임없이 대형교회를 지향하며 모델로 삼는 이유인 이런 확신과 기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실제로 대형교회로 옮긴 후에 교회를 경험한 사람들의 입소문에 가까운 간증과 전도가 있었겠지만, 작은 교회에서 겪는 부담과 불편함을 피해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시설과 규모에 끌려 대형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아무런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 의해 강요되지 않은 채 편안하게 성도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확신과 기대는 개인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뿐, 신앙적으로 혹은 신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옳았다고 판단해서 교회에 머물러 있든, 아니면 설령 처음 기대에 부합하지 않다고 보거나 혹은 평소에 들어 알고 있었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된다 하더라도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대형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머물러 있는 성도들이 많다.

대형교회 자체가 다 문제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교회론적인 측면에서 재고해야 할 점이 없진 않으나, 지금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대형교회와 인간욕망의 결탁 관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쿼바디스>는 교계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되고 있는 몇몇 대형교회들, 특히 목회자의 윤리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한다. 언론은 한국교회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평가할 정도다. 특히 대형교회의 목회자 윤리, 목회자 세습, 성윤리, 교회가 기업화됨으로써 나타나는 재정 비리, 외형적인 성장제일주의에 사로 잡혀 무리하게 빚을 내어 지은 교회건축으로 맞은 부도 사태 등, 그간 여론에 회자하여 듣거나 혹은 읽었던 사실들을 다큐로 담아냈다.

영화의 힘을 염두에 둔다면, 읽거나 들었던 것과는 또 다른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교회의 압력으로 배급사와 상영관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하고 또한 서울과 인천 지역에서는 상영계획을 취소할 정도로 견제를 받고 있는 점을 생각해볼 때, 대형교회의 비리를 영화로 표현할 생각을 실행에 옮긴 감독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또한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한 분명한 의지를 충분히 엿볼 수 있게 한다. 게다가 <트루맛 쇼><MB의 추억>에서 볼 수 있었듯이, 가상과 실제를 서로 섞어놓음으로써 무거운 주제를 편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한 연출방식은 매우 돋보인다.

한편, 영화를 보며 드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대형교회의 문제는 단지 목회자의 문제일까? 성도들에게는 없을까? 영화의 말미에 성도들을 깨우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함으로써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 저항하는 성도가 없다는 사실만이 문제는 아니다. 결과적으로는 동일한 말 같아도, 말하는 방식이 달라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앞서 말했듯이, 대형교회로 성장하게 된 데에는 성도들의 이기적인 욕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가 그것을 부추겼든 아니면 성도들을 교회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목회를 했든 결과적으로는 모두 공범이다. 결국 영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목회자의 윤리 부재나 문제 있는 교회정책과 목회자에게 저항하지 않는 성도에만 집중하게 하는 것은 영화의 스토리텔링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할 염려가 있다. 문제를 보면서 균형 있는 시각을 놓쳤다는 말이다. 만일 또 다른 <쿼바디스2>를 기획하지 않는다면, 또한 영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안타깝게도 영화는 처음 의도와는 달리 교회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기독교에 대한 안티를 더욱 많이 양산해내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회자하는 대형교회의 문제는 목회자와 성도 모두의 욕망이 만나 상승 작용하여 발생한 결과다. 비록 믿음으로 의인됨을 약속받았으나 여전히 죄인인 우리 모두가 개혁의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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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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