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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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위에 집을 지을 것인가

<제보자>(임순례, 드라마, 12세 관람가, 2014)

 

전직 CIA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정보를 폭로함으로써 미국이 전 세계 국가로부터 비난을 받도록 했다. ‘스노든 사건으로 불리는 이 일은 진실과 국익의 관계에 대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국익과 진실, 무엇을 우선해야 할 것인가?

국익을 국가의 이익이라고 본다면, 당장에는 통치 집단의 치적을 높이거나 정권 연장을 위한 기회가 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지만, 만일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정체성에 충실한 경우에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는 이익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국가의 이익이 국민의 이익이 될 수도 있고 국민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통치계급이 치적을 자랑하거나 정권 연장을 위한 기회로 그칠 때가 있다. 어떻게 받아들여지든, 국익은 진실에 우선할까?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일까?

이 주제는 과거와 현재의 좋지 않은 경험 때문에 대한민국 현실에선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인권도 제한받아 살기를 강요받았던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시대를 거쳐 왔고, 또 소위 국가의 품격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이뤄진 각종 언론 장악과 탄압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대한 사법부의 상식 이하의 판결도 국익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천안함 사건이나 세월호 침몰 사건은 숱한 의혹에도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국익을 위해 묻으려는 시도와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가 부딪혀 파열음을 내는 까닭은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만, 특히 다수의 언론매체들은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려는 태도는 차치하더라도 사건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각종 집회에 대해서도 편파적으로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이 가득한 시점에서 <제보자>가 개봉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감독은 영화 초반부터 돌직구를 던지며 스토리를 전개해나갔는데, 화두가 되는 질문은, ‘진실과 국익 중 무엇이 우선일까?’ 이다.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근거로 만들어졌지만, 엄연히 허구이다. 제목이 말하고 있듯이, 감독은 사건 자체를 재구성하기보다 제보자에 초점을 맞추었다. 소위 국익에 반하는 진실을 밝히려는 제보자의 한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과 고뇌, 그리고 비난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요구되는 용기 등을 다루면서 또 다른 제보자의 등장을 촉구하고, 특히 진실에 대한 언론의 책임을 강조했다.

제보라는 것이 그렇지만, 진실이라고 하나 단지 개인적인 진술만 있을 뿐, 그 진술을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한 것이 태반이다. 진술을 입증하는 또 다른 사람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은 무리라고 느껴질 정도로 한 방송사의 피디에게 주어졌다. 언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감독의 기대를 엿볼 수 있다. 과연 피디 한 사람의 노력으로 진실을 입증할 증거는 확보될 수 있을까? 거국적으로 거짓 현상을 진실로 믿고 또 믿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고 여겨지는 때에도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폭로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타당할까? 게다가 진실을 말했을 때,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자신의 가족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제보자로서 나설 수 있을 것인가? 진실을 밝힘으로써 얻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영화 안에는 제보자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들과 동시에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방해하고 억압하는 각종 시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피디의 성실한 역할이 비중 있게 다뤄졌는데, 이를 통해 감독은 진실에 대한 언론의 역할이 결정적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런 노력이 재현될 것을 기대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결과적으로 희생을 각오하는 제보자의 노력이 결실로 나타나기까지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싸워야 하는지를 영화는 잘 보여주었다.

영화는 국익과 진실을 두고 벌어지는 게임에서 결국 진실이 이긴다는 사실로 마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국익이나 회사의 이익 혹은 교회의 이익을 전면에 내세워 진실을 은폐하는 일들이 많다. 진실을 밝힘으로써 일어날 파장이 두렵기도 하지만, 진실을 밝힌다고 해서 거인과 맞서 싸워 이길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제보자로 나서는 것을 처음부터 포기한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진실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은 권력과 자본력이며 또한 교회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다. 그러니 제보자로 나서는 일은 기름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권력과 자본력과 왜곡된 신앙에 눌려 진실이 버젓이 은폐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필요하다면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제보자가 되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거인과 맞서 싸우는 제보자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할 것이다. 진실을 은폐하고 얻은 이익은 일시적으로 눈가림을 할 수는 있어도 모래 위에 기초를 놓은 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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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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