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화의 세 가지 흐름 : 세속화, 다원화, 사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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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화의 세 가지 흐름 : 세속화. 다원화. 사사화.

사회학자인 피터 버거는 현대사회가 3가지 흐름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세속화(secularization) 다원화(pluralization) 그리고 사사화(privatization)라고 말했다.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동시 다발적으로 깊이 있게 그리고 빠르게 전환되고 있는 변화의 흐름속에 교회가 설 자리는 어디일까? 종교의 영역이 축소되고, 지도적 위치를 상실하고, 개인적인 영역으로 변화되는 상황에서 ‘신앙’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1. 세속화

세속을 뜻하는 영어 단어 secular는 라틴어 saeculum에서 왔는데 이는 ‘현 시대’를 뜻하는 것으로서 세속은 한 사회가 전통적으로 지배적인 종교의 영향력을 받아온 것을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종교와 영적인 부분에서 사회가 분리된 상태를 뜻하는 세속화는  영적 타락과 비신앙화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세시대와 같이 교회와 종교적 영향력이 막강하던 시대로부터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과학기술의 진보로 인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리처드 존 노이하우스는 종교가 더 이상 공공의 담론이 되지 못하며, 신앙은 모든 것이 발가벗겨진 상태가 되었으며 신앙인은 그런 상태에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서구사회를 비롯해서 그동안 기독교가 감당했던 신앙적 세계관은 무너져가고 있으며, 세속화를 통해 교회와 성서적 세계관이 설 자리를 점점 잃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세속화의 과정에서 기독교는 점점 자리를 잃어가면서 인간의 삶의 목적과 이유를 제공하던 종교적 지위는 상실되어가고 있으며, 기독교의 삶의 양식과 제도성에서 기인한 사회적 관습과 삶들에 대한 의문과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C.S. 루이스의 지적처럼 현대철학을 통해서도 이 땅에서 얼마든지 좋은 인간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세속화가 진행될수록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사라질 것이며, 인간 중심의 합리적 사고와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와 논리들이 증대될 것이 분명하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한 것도 인간성의 확대의 결과이다. 알랭 드 보통과 리처드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자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종교의 무용론, 신의 죽음과 인간의 위대함을 선언할 것이다. 이 모두 세속화의 과정이다.

하지만 인간을 통해 완성하려 했던 그 무엇도 허무한 것임을 깨달을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현대 인간들은 점점 정체성과 정신적, 심리적, 관계적 혼돈을 경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삶의 목적과 이유를 모르고 방황하며 현재를 즐기고 만족하는 타락으로 치닫고 있다. 오히려 종교적 성찰과 의미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어떤 모습을 취해야할까? 이전과는 분명 다른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맹목적인 믿음과 신앙에서 벗어나, 자율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사람들과도 소통하며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로 소통이 필요하다. 또한 어쩌면 더 종교적이면서도 영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 세속에서는 맛볼 수 없는 기독교의 진수와 복음의 통전성이 요청되는 시기이다.


2. 사사화

사사화는 공적 영역과 개인적 사적인 삶의 영역에서 생성되는 과정이며, 누구로부터 간섭을 받거나 제약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의 영역과 만족을 누리려는 태도이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일어나는 특징으로 정부와 같은 공적인 집단이 주도했던 영역들을 민간과 개인에게 전환하는 것이기도 하고, 종교적으로는 사회에는 동떨어져 교회의 공동체와 각 개인의 신앙에 좀 더 관심을 두는 형태라 할 수 있다. 개인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가 확대되는 과정이기고 더불어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무응답의 모습이기도 하다.

신앙의 사사화가 문제가 되는 것은 믿음이 단지 개인적인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관심이 자기 안에 머물게 될 때 사회적 문제와 주변의 아픔들에 대해 무관심 할 뿐 아니라 세상과는 소통하지 못하는 자신들만의 왕국을 만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떠올려본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삶이 사적인 영역에서의 안주와 행복추구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자이면서 교육가인 페이지 스미스는 하나님이 몇몇 사람들의 대화에 등장하는 이야기 주제거리가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 논의되어야 하는 분이라 말한다. 만인은 공통 담론이며, 핵심인 것이다.

믿음 생활을 개인적인 문제로 특히 내면의 문제로 국한시켜버릴 때 기독교의 영역은 축소될 뿐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선교적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분명히 말하지만 믿음은 공적인 영역의 것이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한 지역의 시민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을 포함한다. 또한 건강한 역사관과 시민의식을 갖는것도 믿음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3. 다원화의 과정

세계화의 과정에서 다원화는 증대될 수 밖에 없다. 서로 다른 문화와 문명들이 만날수록 상대방에 대한 관용과 대화의 자세가 요청되며 타문화와 타종교를 인정하고 서로 공존하고자 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사사화가 진행되면서 동시에 다원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있기에 자기가 자신을 존중하듯 다른 누군가를 존중하는 자세를 미덕으로 여기는 상황이다. 자신들의 논리와 이데올로기의 절대성을 주장할 때 다원화되어가는 사회에서는 고립될 수 밖에 없으며,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왕따를 자처하게 된다.

다원화 사회에서는 마치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수많은 물품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처럼 종교를 선택하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개인적 취향과 목적에 맞는 종교를 택하고 누구의 간섭과 통제가 아닌 자신의 필요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신 중심의 삶에서 인간 중심의 삶으로 급격한 전환이 이루어질 것인데, 다양성 속의 일치라는 미명하에 하나님은 상대적 신으로 전락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신성한 지위와 위치를 누려왔으나 다원화 상황에서는 수많은 종교중에 하나로 인식되며, 기독교 구원의 절대성을 주장하기보다 혼합의 형태로 다원주의로 빠질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다. 종교적 다양성에서 기독교적 진리를 고수하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타종교에 대한 관용과 존중의 자세는 필요하지만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구원의 절대성을 놓쳐버린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다원화는 인정하지만 다원주의로 빠지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http://www.churchleaders.com/pastors/pastor-articles/175643-james-white-need-to-know-these-3-cultural-current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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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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