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오>(유대얼, 2011, 단편) - 용기 있는 행위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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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있는 행위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듀오>(유대얼, 2011, 단편)

문화선교연구원은 어느덧 12번째 단편 영화를 내놓았다. 교육용 영화라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제작된 것들이라 비록 대중적인 관심은 크지 않았지만, 교회의 문화목회적 과제를 이행하기 위한 작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가 흔히 문화와 함께 떠올리는 말이 개혁이지만, 사실 문화 개혁은 비판이나 강제적인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 창조를 통해서 가능하다. 새로운 문화가 삶의 태도와 사고방식에 영향력을 행사해 기존의 것을 대체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다. 영향력 있는 한 편의 영화 제작은 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과감하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선교연구원이 ‘기독교 영화제’를 통해 다양한 기독교 영화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 영화 제작을 지원하고 또 자체적으로 기획하여 해마다 뮤지컬과 영화들을 제작하여 발표하는 것은 미래 기독교 문화 발전에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개교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지만 기독교 영화의 미래를 위해서는 지양되어야 한다.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전문 투자자 그룹이 형성되어 영화 제작 환경이 더욱 나아질 것을 기대한다.

소망교회의 지원과 총회 교육자원부와 협력하여 만든 12번째 작품 <듀오>의 감독은 유대얼이다. 그는 대중가요 가수 나얼의 쌍둥이 동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후 좋은 작품들을 선보여 각종 영화제에서 화려한 이력을 쌓았던 그는 영화감독으로서 기독교 영화의 미래와 관련해서 매우 기대되는 인물임에 분명하다. 단편 <듀오>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기존의 작품들과는 달리 표현에 있어서 결코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기독교적인 배경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감독의 기독교 영화에 대한 의지뿐만 아니라 그의 기독교적인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천재적인 색소폰 연주자 온유는 훌륭한 연주로 당연히 박수갈채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친구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된다. 마지막 연주를 멋지게 마무리 하는 순간에 찢어진 가랑이 사이로 속살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인 온유가 받은 충격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뜻하지 않은 사고의 원인을 고민하는 온유는 지원을 떠올리며 그녀에 대해 분노한다. 왜냐하면 연주 직전에 그녀가 자신의 바지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래서 그녀의 소행으로 단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던 온유는 복수를 다짐한다.
어버이날을 맞이해서 온유는 목사님의 소개로 지원과 함께 협주를 제안 받는다. 다소 소극적인 성격이었지만 온유는 복수를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목사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지원 앞에서는 언제나 마스크를 쓰고 말보다는 글을 사용하면서 온유는 지원과 소통할 의지가 없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협주를 위한 연습 과정에서 지원은 온유의 특별한 소통 방식과 전횡으로 심기가 불편하지만 성공적인 연주를 위해 꿋꿋하게 참아낸다. 게다가 온유를 위해 음료수도 준비할 정도로 남을 배려하는 고운 마음을 갖고 있다. 워낙 짧은 연습시간이라 특별한 연습 없이도 연주할 수 있는 곡을 선택하길 원한 지원은 온유의 의견을 물었지만, 온유는 지원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곡을 제시한다. 바하의 곡이다. 능숙한 색소폰 연주자인 자신에게는 어렵지 않다 해도 지원에게는 쉽지 않은 곡이다. 연습을 해도 계속 해서 틀려 연주 하루 전날까지도 연습을 제대로 못했다는 힐난을 온유로부터 들을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은 불평하지 않고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고 돌아간다. 불 꺼진 예배당에서 온유는 지원이 연주하는 동안 사람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될 방법을 은밀히 실행하게 된다.

오해와 복수라는 구도 설정은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감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감독은 매우 절제된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는 대사와 화려한 영상으로 관객을 압도하기 보다는 오히려 영화에 대한 관객의 내적인 성찰을 이끌어 내고 싶은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한다. TV 연예 프로그램에서 난무하는 자막과 현란한 대화에 익숙해 있는 어린이들이 그런 절제 있는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긴 하지만, 영화적으로 본다면 흠으로 지적받을 이유는 결코 아니다. 특히 애니메이션 사용과 산뜻한 반전은 영화 제작에 있어서 감독의 영상 미학적인 고민의 흔적을 잘 느껴볼 수 있게 한다.

오해와 복수, 그리고 화해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무작정 영화를 감상한 후에 필자의 마음에 떠오른 첫 번째 질문이었다. 이렇게 질문하게 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오해와 갈등의 중심에 있는 두 명의 아이들의 음악을 매개로 하는 화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필자에게는 다소 다른 독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꼼꼼하게 따져보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음악을 매개로 교회 안에서 오해와 갈등이 어떻게 극복되는지, 영화는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은 화해 그 자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야기의 중심은 오해를 푸는 실마리가 된 용기 있는 행동에 있다. 왜냐하면 친구의 바지를 찢어지게 만든 장본인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인해 오해의 실타래가 풀렸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용기 있는 고백은 온유로 하여금 자신이 꾸민 일로 인해 지원에게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심지어 자신의 연주를 망치는 희생을 감행하게 했을 정도였다.
하나님은 그저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끄시지 않는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정확한 표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7)이다. 여기서 앞부분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세상 가운데 나타내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27절은 성도들의 고난 받는 삶과 관련해서 소망의 중요성을 환기시켜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신비한 방식으로, 그러나 인간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하며 살아갈 것을 전하면서 바울 사도가 강조하는 일은 그런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나타내는 삶이었다. 이런 삶 속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고 또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 명의 아이들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 오해와 갈등, 그리고 화해의 모습에서 가장 주목받아야 할 아이는 두 명의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의 역할에서 바지를 찢은 것은 자신이었다고 고백한 친구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이런 용기로 인해 하나님은 교회 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해프닝 속에서도 우리를 만족시켜주시는 것이다.
두 명의 주인공이 아닌 조연을 맡은 아이의 용기 있는 행위에 주목하게 될 때,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더욱 도드라진다. 비록 역사 속에서 주인공이 되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는 작은 실천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더욱 큰 역사를 일으키신다는 사실을 시사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의 행위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영화는 강조한다. 첫째는 온유의 독특한 소통방식과 전횡을 오직 성공적인 연주,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참아냈던 지원이의 인내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큰 의미를 갖는다. 둘째는 찬송가를 연주곡으로 삼는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온유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는 지원의 마음을 접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온유로 하여금 지원이 좋아하는 찬송가를 혼자서 연습하도록 했고, 결국 자신의 곡이 망쳤을 때 더욱 멋지게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는 결코 장난이라고 볼 수 없는 교회 기물을 파손하는 아이들의 행위를 마다하시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신 목사님의 관용이다. 한 가지 덧붙일 수 있다면, 그것은 대가를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영화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용기 있는 결행이다.
결국 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용기 있는 행동들”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은 이들 가운데 신비로운 방식으로 역사하셔서 선을 이루신 것이며, 또한 오늘 우리가 기독교 영화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교회 교육을 위한 Tip
1. 로마서 8장 27절을 암송하자.2. 오해로 인한 갈등의 경험들을 나누도록 하자
3. 관련 내용: 요셉은 비록 형제들에 의해 버림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사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는 삶을 통해 사람들의 비뚤어진 의도와 역사를 바로잡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고 또 고백하게 되었다. 일을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용기와 정직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4. 내가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나의 정직과 용기를 통해 하나님은 선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며, 친구들 사이에서 혹은 가족 안에서 나로 인해 생긴 오해와 갈등을 풀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하며 용기 있게 고백하는 기회를 가져보자.
5. 교사는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어떤 용기를 필요로 할까, 부서는 그리고 교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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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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