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미드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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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삶

<비포 미드나잇>(리차드 링클레이터, 드라마, 18, 2013)

 

남녀가 등장하는 세상의 거의 모든 동화는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난다. 시작과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해피엔딩을 인류 모두의 꿈이 되게 만든 이유이다. 현실적인 사람들은 종종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말인가?’라며 행복한 시간 이후를 물으면서 동화적인 세계관에 대해 의심을 품기도 한다. 경험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남녀의 행복한 만남 이후의 시간 혹은 삶은 결코 동화와 같지 않다. 문학 혹은 영화라는 것이 독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을 잊게 해주거나 혹은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 이후의 세계는 작가들에게 사실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것을 궁금해 하고 추적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현실주의자이다.

사실 사랑의 행복을 잠깐 보여주며 시작해서 그 후에 이뤄지는 결혼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없지는 않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부부로서 혹은 부모로서 사는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내며 결혼과 삶의 현실을 보여주는데, 이 경우엔 꿈을 꾸게 하기 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현실을 새롭게 혹은 다시 보게 만드는 목적이 있다. 이런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간과했던 삶의 단편들에 주목하게 되고 삶을 되돌아보며 다양한 맛의 인생을 디자인한다.

<비포 선라이즈>(1998)<비포 선셋>(2004)에 이어 <비포 미드나잇>으로 비포 시리즈를 만들어낸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세 편의 영화를 통해 남녀의 만남과 사랑과 결혼 그리고 중년의 삶까지의 여정을 추적하고 있다. 처음부터 의도하진 않았지만 현실주의자로 자리매김 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정도다.

세 편의 영화를 통해 그는 무엇보다 남녀의 만남과 열정적인 사랑과 현실적인 삶이 청춘에서 중년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바뀌어 나가는지를 추적한다. 남녀의 만남이 결코 꿈같을 수 없는 현실과 그 현실에서 겪는 희노애락의 단편들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세 편 모두에서 동일한 두 남녀가 출연하고 또 그들의 대화를 통해 진행되기 때문에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의 남녀가 모습에서 어떻게 변화하며, 세대에 따라 서로 나누는 주제나 관심거리 그리고 대화의 방식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영화에서 어느 정도 예고하고 있긴 하지만, 추측하기로는 50대나 60대 즈음에 혹은 그 이후 시기의 삶을 다루는 또 한편의 비포 시리즈가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 늙음의 문제를 다루겠지만, 어떤 주제들이 어떻게 다뤄질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그리스 아름다운 해안가에 마련된 근사한 식사 시간에 네 쌍의 남녀가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20대부터 70대까지의 남녀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비포 미드나잇>은 이미 중년이 된 두 남녀를 중심에 놓고 있다. 그들의 만남과 결혼과 이혼과 재혼으로 점철된 삶, 이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아쉬움과 이별의 아픔,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엄마로서 살아야 했고,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겪어야 했던 불안과 두려움을 충분히 이해해주지 못한 남편에 대한 섭섭함, 또한 언제나 남편의 성공 뒤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던 아내가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발견하며 겪으면서 남편과 겪는 갈등 등을 다루고 있다. 물론 중년의 대화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섹스와 늙음과 죽음의 문제도 결코 빠지지 않고 있다.

이 영화의 재미는 중년시기의 두 남녀가 자녀들로부터 떨어져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중에 일어난 각종 해프닝이다. 전편에서와 마찬가지로 길을 걸으면서 나누는 대화에서 그들은 서로를 추억하기도 하고, 서로에 대한 궁금증을 걸쭉한 농담과 함께 질문과 대답으로 치고받는다. 서로의 대화에서 때로는 따뜻함을 느끼면서도 때로는 오해하기도 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중년의 위기에 대한 조바심을 자아내게 한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해도 서로가 갖는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더 이상 화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격하게 싸우다가도 오해가 풀어져 화해하는 순간은 중년의 삶과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20대부터 30대를 거쳐 40대에 이른 두 남녀의 삶의 단편과 그들의 대화를 들여다보면서 한국 관객들은 아마도 그들이 나눈 대화의 풍성함에 놀랄 것이다.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대화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에서 우리 문화와는 너무 이질적인 부분이 있어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년의 시기를 보내는 남녀의 관심이 무엇이고 또 남녀가 서로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중년의 시간을 보내는 관객들은 아마도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주된 목적은 아니겠으나, 아름다운 중년시기를 보내려고 할 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언급해보겠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특히 서로의 관계를 위협할 정도로 갈등을 일으키는 대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점 하나는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자존심을 고집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고집함으로써 상대를 무시하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다. 황혼이혼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이점은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어지는 법인데, 성경은 중년과 노년의 시기에도 적용되는 말씀일진대, 중년과 노년의 시기라도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태도에서는 어떠한 변화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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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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