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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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인간을 숙주로 삼는 기생충이다

<연가시>(박정우, 드라마, 15세, 2012)

인간은 환경에 의존되어 있다. 지구상의 다양한 환경과 인종, 그리고 삶의 모습들이 단적인 예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변한다. 관건은 어떻게 변하느냐 하는 것이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환경을 찾아 나선다. 문제는 어떤 환경에서든 인간을 나쁘게 변화시키는 암적인 요소들이 잠복해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사회에서 대표적인 것은 알코올, 약물, 돈, 권력, 그리고 섹스다. 신문의 사회면을 차지하는 각종 범죄기사들을 분석해보면, 대부분 이런 것들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생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마도 돈이 아닐까. 돈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돈을 일만 악의 근원으로 본 것이라. 재난영화 <연가시>는 재난 상황에 처한 인간의 극한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돈이 인간을 얼마만큼 변질시킬 수 있는지를 암시하고 또 그것이 가져올 파국을 경고한다.

<연가시>는 메뚜기나 사마기와 같은 곤충을 숙주로 기생하는 가느다란 철사모양의 기생충 ‘연가시’를 소재로 해서 만든 영화다. 원래 유생일 때는 곤충에서 기생하다가 성체가 되면 민물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데, 이를 위해 연가시는 숙주인 곤충들이 물속으로 뛰어들도록 조정한다. 이 일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영화적 상상력은 바로 이런 미스테리에 착안해서 인간을 숙주로 삼는 변종 연가시를 등장시키면서 공포감을 한층 더 증가시킨다. 숙주의 소장에 흡착되어 영양분을 흡수하며 기생한다. 유생이 성체가 될 때까지 감염자들은 급증하는 식욕의 증세를 보이다가, 변종 연가시가 성체가 되면 숙주들에게 갈증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갈증 탓에 숙주인 인간은 물속으로 뛰어 들기를 주저하지 않게 되고 결국에는 익사한다. 참을 수 없는 목마름은 성체들이 자신들이 서식할 수 있는 곳으로 민물가로 숙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생기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을 물가로 유인하여 익사하게 만드는데, 이런 까닭에 전국의 강이나 하천 등에는 변사체들이 떠다니는 일이 발생하면서 엄청난 사회적인 혼란이 초래되고 결국에는 국가적인 재난 상태로 이어지게 된다. 문제는 변종이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약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생충이라고 해서 구충제를 복용했다가는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이런 가운데 감염자 중에 한 사람이 모 제약회사에서 만든 약을 복용한 후에 연가시가 괴사했다는 사실을 접한다. 국가적으로 초미의 관심을 가질만한 일이지만, 제약회사는 기계적인 이유를 들어 약의 생산을 지연할 뿐만 아니라, 회사의 사활이 걸린 이윤문제로 생산과정을 공개하기를 꺼린다. 결국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모종의 계략이 숨어 있음이 밝혀지는데, 처음에는 회사의 생존을 위한 연구 계획으로서 새로운 단백질 생산을 위한 신약 개발을 목표로 삼은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돈을 벌기 위한 전략으로 바뀐 것이다. 변종 연가시를 퍼뜨리고 치료제를 만들어 떼돈을 벌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사실 <연가시>는 자본에 눈이 먼 사람들의 욕망과 그것이 가져오는 사회적인 파장을 말하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장면상으로는 그것에 집중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를 위해 할당된 장면이 너무 짧을 뿐만 아니라 긴장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름에 개봉한 영화답게 인간을 숙주로 삼는 기생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사회 혼란과 공황 상태에 몰입하려는 장면들이 많이 연출되었다. 특히 재혁(김명민 분)의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김명민의 뛰어난 연기는 공황상태에 처한 인간, 특히 한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의 모습이 어떠할 것인가를 잘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포인트는 생명을 위한 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는 일일 것이다. 영화가 재난의 상황에만 집중함으로써 초반부의 긴장상태와 달리 후반부에 들어갈수록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영화의 진행과정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점은 재난의 혼잡한 상황에서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두 개의 흐름이다. 하나는 재혁과 아내인 경순(문정희 분)의 노력에서 볼 수 있듯이,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위해 온몸을 던지는 모습이며, 다른 하나는 돈을 벌기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잡는 제약회사 대표이다. 물론 여기에 양자 사이를 오가며 정치적인 결과만을 생각하는 국가를 고려하면 세 개의 흐름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여하튼 상반된 두 개의 모습을 바탕으로 추측해본다면, 감독은 분명 변종 연가시와 인간의 관계를 돈과 인간의 변질에 빗대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변가시가 인간을 식탐으로 이어지게 하고, 결국 타는 듯한 목마름을 유발해 인간이 스스로 익사할 정도로 만든다는 상황은 인간과 돈의 관계에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돈은 필요를 넘어서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고, 결국에는 인간을 멸망으로 이끌어 간다는 말이다.

이렇게 볼 만한 단서가 없지 않다. 재혁은 동생이 주식으로 돈을 날린 후에 제약회사 영업부에서 일하면서 돈 있는 고객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살아간다. 학문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이 돈 때문에 하루아침에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전락했을 뿐만 아니라, 부자들에게 종처럼 다뤄지는 것이야 말로 돈이 인간을 어떻게 변질시킬 수 있는지를 잘 말해주는 장면이다. 경찰인 동생 역시 경찰이 본업인지 주식투자가 본업인지를 헷갈리게 만드는 일들을 스스럼없이 벌인다. 강원도의 한 계곡에서 이상한 징후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소문이 나면 행락객의 출입이 줄어들어 한해 수입이 줄어들 것을 염려해서 신고하지 않은 노인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수많은 인간의 생명을 헌신짝처럼 여기는 인간 역시 돈 욕심 때문에 변질되었다.

만일 돈 때문에 변질된 인간이 하나의 기생충 같은 존재가 되어 사회를 숙주로 삼아 살아간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연가시>는 바로 이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우리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들을 경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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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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