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안시성> 읽기: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이름, 양만춘




1260년 몽골의 쿠빌라이는 여몽전쟁에서 이룬 승리를 두고 “이것은 하늘의 뜻”이라 말했다.


“고려는 만 리나 떨어져 있는 나라이고, 당 태종이 친히 정벌하였으나 굴복시키지 못하였는데 지금 그 나라의 세자가 스스로 나에게 귀부해오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다.”


이는 무엇보다 과거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하늘이 내린 장수요 전쟁의 신으로까지 알려진 당 태종도 이루지 못한 일이었음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하늘의 뜻이 아니고는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그만큼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사실을 자랑하듯이 말한 것이다. 쿠빌라이가 고려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난 후에 이렇게 스스로를 높이 치켜세울 수 있었던 것도 고려가 고구려의 후신으로 세워진 나라이고 또한 당태종이 전쟁에 관한 한 매우 뛰어난 인물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연개소문이 당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왕을 죽였을 뿐 아니라 당을 섬기고 있던 신라를 공격한다는 이유로 당 태종은 대규모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다. 난공불락으로 소문난 고구려 성들은 힘없이 무너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 태종을 마침내 물러나게 만들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다시는 고구려를 넘보지 못하게 만든 건 안시성 전투다. 무엇보다 안시성 전투가 전설로 회자되는 이유는 5천명의 병력으로 20만 대군과 맞서 싸우면서도 안시성을 사수했기 때문이다. 군사들이 수적으로 압도적이었을 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각종 첨단 공성무기를 동원하여 공격하였으면서도 속수무책이었고, 마지막에는 안시성보다 높은 토산을 쌓아 공략하려 했으나 때마침 비가 내려 갑자기 토산이 무너지면서(영화에선 상상력을 동원하여 적절하게 표현하였다) 수포로 돌아갔다. 당 태종은 한쪽 눈에 화살을 맞아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뿐 아니라 때마침 연개소문이 이끈 고구려 지원군을 보고 전의를 상실하여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안시성 전투로 엄청난 손실을 입고 돌아간 그는 다시는 요하강을 넘지 말라(고구려를 공격하지 말라는 의미)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안시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양만춘, 그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사실 우리 자신의 기록을 통해서가 아니라 중국에게서 전해들은 것이며, 그것도 정사가 아닌 야사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양만춘의 실제 모습에 관해서는 아직까지도 역사가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이 있다. 안시성 전투의 영웅으로서 양만춘이란 이름이 우리 역사에 처음으로 알려진 시기가 임진왜란이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혹시 이것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선인에게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만들어진 영웅 신화는 아닐지 의문이 들 정도다. 예컨대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신화 역시 그동안 구전으로 전승되어 오던 이야기를 고려가 몽고에 함락되자 승려 일연이 고려인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기록하였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친 산악지형을 이용하여 방어를 했다 해도 각종 첨단 무기로 무장한 당나라 군사 20만 대군을 단지 5천명의 군사로 맞서 싸워 이겼다는 사실은 생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안시성 전투의 중심에 안시성 성주가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다만 그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것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편을 들었던 명나라 장수 구정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을 뿐이다. 그 이름이 아직까지 불투명한 까닭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인데, 당시 양만춘이 왕을 죽인 연개소문에 반기를 들은 까닭에 그의 활약은 연개소문에 의해, 그리고 당과 화친 관계를 맺었던 통일 신라에 의해 철저히 묻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양만춘은 안시성 성주로 부활하여 오늘 우리 앞에 나타나 있다. 

당 태종의 침공을 막기 위해 연개소문이 15만 대군을 이끌고 싸웠으나 처참하게 패한 주필산 전투로 시작하는 영화 <안시성>은 영화 제목에 맞게 안시성 전투 자체를 재현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지도자로서 양만춘의 리더십에 집중한다. 일상과 전투 상황에서 보인 그의 영웅적인 리더십을 가능케 한 인품과 모습 그리고 용맹과 재능이 어떠했는지를 재현한다. 

감독은 양만춘에 관한 한 과거를 복원하려기보다는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재현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내비쳤다. 이것은 여러 단서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기존 사극에 익숙한 인물들보다는 현대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가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이나 사극적인 어투보다는 오늘날에도 흔히 사용되는 일상 언어를 사용한 것이 돋보인다. 특히 성주의 서민 친화적이면서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가족에게까지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모습은 당 태종의 대군에도 결코 기죽지 않고 일치단결하여 싸운 성 주민들의 혈전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모티브이다. 

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본다면, 무엇보다 싸움을 승리로 이끈 인물 양만춘에 관한 정보는 역사적으로 확인이 안 된 상태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두고 감독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안시성 전투의 영웅으로서 성주를 안시성 전투의 결과를 놓고 우회적으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그의 용맹과 재능을 드러내는 데에 치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사극에서 볼 수 있었던 그런 모습으로 양만춘을 복원하여 재현할 수 있었겠지만, 감독은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을 염두에 두고 다른 방식을 택했다. 위기를 극복하는 영웅의 캐릭터를 오늘날 젊은 세대들에게 호감이 가는 방식으로 재현한 것은, 비록 다소 어설픈 부분이 있다 해도, 괜찮은 시도라 생각한다. 

안시성 전투와 안시성 성주인 양만춘의 활약을 본 관객의 머릿속에는 아마도 명량대첩에서 오직 12척의 배로 133척의 배를 이끌고 조선을 쳐들어온 일본해군과 맞서 대승한 이순신이 그려졌을 것이다. 일본 해군은 이순신의 이름만 들어도 겁을 냈다는 말이 결코 소문만은 아님을 우리는 영화 <명량>을 통해 더욱 실감나게 접할 수 있었다. <명량>에서 이순신과 <안시성>에서 양만춘은 묘하게 겹쳐진다. 비록 영화적인 캐릭터에서는 쉽게 비교할 수 없다 해도, 소수와 다수의 대결구도나 전쟁에 임하는 용맹과 전투에서 발휘된 재능을 재현한 부분은 특히 그렇다. 무엇보다 해전에서 이순신이 있었다면, 지상전에선 양만춘이 있었다. 

영화에서 인상 깊은 장면은 전쟁을 계속 할 것인지 항복할 것인지를 두고 벌어지는 종교와 정치의 갈등 관계다. 당시는 종교가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 때이다. 나라의 운명이 달린 문제에도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앞을 내다볼 수 있다는 신녀가 성을 지키고 또 성 주민의 생명을 구할 요량으로 양만춘에게 방어전을 멈추고 항복할 것을 종용하는 장면이 있다. 심지어 자신의 비전에 대한 확신에서 고구려의 비밀 전략을 배신하기까지 한다. 사실 안시성보다 높은 토산을 쌓으며 대대적인 공격을 준비하는 당 태종의 전략 앞에서 양만춘 역시 전쟁에서 승리할 자신은 없었다. 그에게는 다만 어떤 상황에서든 성을 지키고 주민들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책임감만 있을 뿐이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당 태종에게 항복하는 길이 성을 지키고 주민들의 생명을 구하는 길이라는 신녀의 말은 어쩌면 싸우지도 않고도 양만춘의 바람을 성취하는 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양만춘은 항복을 통해 보장받는 길보다 끝까지 싸움으로 성과 주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마침내 성 주민들의 용맹스런 희생을 바탕으로 태산을 무너뜨리고 당 태종의 공격을 물리치고 고구려의 운명까지도 구한다.

종교와 정치의 갈등 장면은 역사에 근거하기보다는 허구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간다. 이미 결론을 알고 영화를 제작한 감독은 이 장면을 왜 넣은 걸까? 물론 어디에서나 전쟁에 대한 회의론은 존재하는 법이다. 더군다나 20만 대군과 5천의 군사가 대결하는 구도에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회의론을 종교의 이름으로 제시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는 비전을 보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감독이 이 장면을 삽입한 것은 나라의 운명은 결코 신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양만춘을 비롯하여 안시성 주민 모두의 결사항전은 고구려의 운명을 바꾸는 일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을 오늘의 상황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어떨지 싶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 진행되는 남북 간 평화적인 관계로 한반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 들었다.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가 이제 막 발아하려는 시점이다. 싹이 나고 튼튼하게 자라나기까지는 아직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북미관계가 개선되어 제재가 풀어지면서 남북 간 상호 협력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희망으로 국민 모두가 부풀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기독교 단체들과 일부 대형교회들은 과거 북한이 보인 행적을 들춰내면서, 그리고 안보와 인권이라는 이유로 북한의 모든 행보를 위장 쇼라고 비판하며 시기상조라 말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에서 종교적인 이유를 앞세우는 것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관건은 우리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과 번영을 원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신앙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다. 남북 관계의 개선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굳이 확인되지도 않은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건 삼가는 것이 좋겠다.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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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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