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한 끊임없는 도전 - '탈코르셋' 운동을 바라보며



전국을 ‘let it go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014)은 전통적인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공주’ 캐릭터들과는 달리 주체적 정체성을 가진 여성 캐릭터 ‘엘사’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엘사가 자신을 감추어야만 했던 장갑을 집어던지며 “let it go”를 열창하는 부분은 참 인상 깊은 명장면이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매우 특이한 연출이 가미된다. 한참 망토도 집어던지고, 공주왕관도 집어던지며 자유로운 온갖 모습을 보여주던 엘사가 마지막에는 완전히 해방된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옷은 예쁘고 화려한 파란 드레스로(물론 망토도 더 길고 멋진 것으로) 입혀지고, 화장은 더 진하게 칠해진다. 그냥 보면 멋질 수 있는 장면이지만 굳이 한번 생각해 본다면 “왜 엘사는 장갑은 집어던졌으면서 얼굴은 더 두껍게, 옷은 더 불편한 화려한 옷으로 입어야 했을까?” 

우리는 사실 꽤 자주 ‘여성의 주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에 진하게 녹아든 ‘꾸밈’과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머릿속에 상상하는 ‘주체적인 여성’의 이미지와 ‘꾸밈에 능숙한 여자’는 매우 친밀하다. ‘뉴스에서 남자 아나운서들은 평범한데 왜 여자 아나운서들은 저렇게 예쁠까? 혹시 예뻐야 했던 것은 아닐까?’ 당연하게 여겨져왔던 것에 하나씩 문제제기를 하는 것에서부터 '탈코르셋'은 시작된다.


'탈코르셋' 운동이란?

먼저 '탈(脫)-코르셋'에 대한 의미와 역사를 살펴보자. 코르셋은 여성들의 몸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허리를 잘록하게 조이는 강력한 기능성 속옷이다. 과장된 실루엣을 강조하기 위해 16-18세기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코르셋의 강도는 다 다르지만 너무나 괴로워 장기에 손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여성들은 그렇게 괴롭고, 압박적인 속옷을  ‘스스로’ 착용해야만 했을까? 그것은 여성의 외모가 누군가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으로 당연하게 작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탈코르셋은 이러한 사회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 자신 스스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하는 운동인 것이다. 

사실 탈코르셋 운동은 1960~1980년대에 미국에서 유행했던 제2세대 페미니즘 운동(second-wave feminism)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투쟁의 영역이 공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문화적인 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여성들에게 일상적인 것처럼 다가왔던 가정과 성역할들에 대한 반발과 더불어 진행되었다. 그렇기에 2세대 페미니즘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성’의 모든 외향적 특성들을 거부하고 여성적인 섹슈얼리티를 포기한 스테레오 타입을 규정하기도 한다. 특히 여성이 자신의 외모를 꾸미는 것과 하다못해 성행위를 하고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부터 하나의 억압에 대항하는 해방의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2물결 페미니즘은 페미니스트 성 전쟁(feminist sex wars)라고 불리는 성매매 논쟁과 함께 종식되었다. 그 이후 2세대 페미니즘의 ‘여성성 거세’에 대하여 반발하며 제3세대 페미니즘(third-wave feminism)이 등장한다. 제3세대 페미니즘은 다양한 유사성을 지닌 여성의 다양한 집단을 포함하는 여성운동을 주창하며 포괄적인 여성운동을 시도했고, 여성적인 성적매력을 더욱 긍정적인 것으로 부활시키고자 하는 경향성을 강조했다. 오히려 메이크업이나 하이힐을 통해 성적 존재로서의 이미지를 강화시키고 ‘착한 소녀’나, ‘정숙한 어머니’, ‘인내하는 여성’, ‘고결한 자매’와 같은 규정되고, 압박하는 이미지들을 해체시키고자 했다. 


왜 지금 탈코르셋 운동이 한국에서 벌어지는가?

이처럼 여성운동들은 당시 여성들이 마주한 문제와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도전받고, 그에 따라 변화되어왔으며 지금도 다양한 여성운동의 성격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사회에 다시 ‘탈코르셋’ 열풍이 불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자르거나, 자신의 화장품을 버리는 행위를 sns에 올리며 #탈코르셋 인증을 시도한다. 알다시피 메이크업과 미용 쪽으로 매우 특화되어있는 한국사회에 탈코르셋이 이슈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는 동등한 교육의 기회 속에서 경쟁하던 여성이 가정을 이룬 뒤 겪게 되는 유리천장이나 경력단절의 경험을 통한 좌절은 아직까지도 변화되지 않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 대한 반발심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소라넷’과 같은 불법 사이트를 통해 ‘몰카 범죄(리벤지 포르노)’ 등 하루에도 몇 천 건씩 여성의 몸을 상품화한 범죄 게시물이 올라오는 현실은 ‘외모를 갖춘 여성’이 여성의 커리어에 도움이 된다는 외모권력 자체에 대한 의심과 함께 탈 코르셋 열풍을 불러일으켰다고 보인다. 

우리는 정말 우리의 주체적인 선택으로 ‘꾸밈’을 선택한 것일까? 사실 우리는 누구나 익숙한 것에 친숙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곤 한다. 이렇게 중국의 여자들도 당연하게 전족을 했을 것이며 걷기에 벅찬 기형적인 발을 보며 예쁘다고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익숙하고, 친숙하기까지 했던 우리의 습관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정말 그것이 나에게 좋은 것인가?’ 


"너도 좋은 것을 선택하라"

매우 오래 전 그것을 고민했던 두 여성이 있었다. 정확하게 그것을 고민하게 만드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었다. 누가복음 10장 38-42절에 등장하는 마르다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마르다는 예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다. 당연히 초대한 사람의 입장에서 음식을 차리고 집안을 치우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자신의 여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근처에 앉아 그의 가르침만 듣고 있다. 점점 화가 난 마르다가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라고 이른다. 그런데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이 뜻밖이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 문제는 결코 가사노동과 말씀을 듣는 것의 귀천을 나누는 말씀이 아니다. 정확하게 당시 상황에서 여성의 마땅히 할 일은 ‘가사노동’이다. 그리고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은 남성들에게만 허락되었던 일이고 여성이 말씀을 듣는 것이 너무나 어색한 시대였다. 선택의 권한이 없었던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너도 좋은 것을 선택하라”고 말씀하신다. 너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라고 재촉하신다.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진 사회는 여태껏 없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이 사회의 관습과 대치될 때, 여성이 하는 사적 행동은 무언가 의미심장한 정치적 행위가 된다. 무언가를 마음껏 선택해도 아무에게도 정죄받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마르다의 집’이 더욱 하나님의 나라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오늘 내가 선택한 ‘화장하지 않기’, ‘나를 압박하는 브래지어를 벗어던지기’와 같은 개인적 행위가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어렵다는 것, 그리고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탈코르셋 운동은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모든 여성들에게 ‘좋은 편’을 선택할 수 있는 끊임없는 의심과 도전을 던진다. 


심수빈 기획간사(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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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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