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독교 문화콘텐츠를 기다리며-13] 협업의 공간이 교회와 문화사역을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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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

we shape our buildings and afterwards our buildings shape us. 

윈스턴 처칠이 1940년대 대공습으로 파괴되었던 영국 의회 회의장 재건에 대해 언급한 말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이참에 새로운 형태의 건물을 짓자고 했다. 여당 야당으로 구분되어 마주보는 형태를 바꾸어 반원형으로 바꾸고 자리도 넓히자고 했다. 하지만 처칠은 기존의 서로 바라보는 구조가 활발한 토론문화에 힘을 줄 거라고 했다. 또한 좁은 자리에서 부대끼는 것이 같은 이유로 좋다고 했다. (전체 국회의원은 646명인데 자리수는 427석 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처칠의 의견대로 의회장은 재건되었다. (영국국회 홈페이지 참조 https://www.parliament.uk/about/living-heritage/building/palace/architecture/palacestructure/churchill/) 여담이지만, 널찍이 떨어져 있고 지정석이 있는 한국의 국회의사당은 낮잠 자기에 딱 좋은 구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국 의회장의 사진을 보면 저기서는 웬만해서는 잠들거나 토론에서 벗어나 혼자만 유체이탈 할 수 없는 구조라는 생각이 든다. 

 

공간은 거기 거주하는 사람들의 문화를 만든다. 교회와 기독교문화에서도 공간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큰 것 같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도 중요하지만, 현실로 들어오면 교회공간이 교회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꽤 크다. 기독교문화사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달에 이어서 이번달에는 공간에 대해서, 특히 협업이라는 관점에서 공간 공유 등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 한다.

효율성만을 따져볼 때, 교회 예배당만큼 비효율적인 공간이 없을 것이다. 보통 수백석에서 수천석 까지 이르는 그 큰 공간이 일주일에 한번 사용된다. 요즘 세상에서는 공간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낮에는 음식을 팔고 밤에는 다른 주인이 간판을 바꾸어 술을 팔아서 24시간 돌리는 사례가 있을 정도 인데, 1주일에 한번 쓰고 문을 닫아 놓다니..비즈니스 관점에서 볼 때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교회는 교회 나름의 용도와 호흡이 있다. 공간이 아깝다고 여기서 장사를 하거나 다른 용도로 쓰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교회들이 눈을 돌리는 것이 문화사역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어떤 교회는 건축할 때 이미 공연장, 또는 지역사회 회관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설계하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활용되는 교회사례가 많지 않다. 이는 콘텐츠의 부재 때문이다. 이 부분이 생각보다 상당히 어렵다. 최신 음향시설과 화려한 조명 시설을 잘 갖추어놔도, 거기서 무슨 공연을 어떻게 올릴지가 없다면 먼지만 쌓여갈 뿐이다. 하드웨어는 있는데 소프트웨어는 없다.

반대로 기독교문화사역 주체들은 소프트웨어는 있는데 하드웨어는 없는 경우가 많다. 무대에 올릴 정말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냈지만 공간 사용료가 부담이 되어 쉽사리 공연을 기획하지 못한다. 실제로 주변에 모험을 시도했다가 수천만원대의 대관료만을 빚으로 남긴 사례들도 많이 본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교회-기독교문화사역단체 가 연결되어 한쪽은 장소(하드웨어)를 제공하고 한쪽은 콘텐트(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면 너무나 쉽게 해결될 것도 같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본인은 지역교회의 부목사로도 사역해 보았고 기독교문화단체에서도 사역을 해보았기에 양자의 고충과 입장을 잘 아는 편이다. 문화사역자들의 입장에서볼 때는, ‘남는 게 공간이 교회들이 조금씩만 공간을 내어주면 좋을텐데’라고 아쉬워 한다. 교회입장에서 볼 때는, ‘저번에도 무료로 빌려주었었는데 관리도 안되고 큰 성과도 없는 거 같다’며 유감을 표한다.

또 실무적인 난점들도 있다. 교회 입장에서는 문화사역할 수 있게 멋지게 공간을 해놓았다고는 하지만, 현업의 프로들이 들어가서 그 공간을 쓰기에는 뭔가 셋팅이 잘못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1억 들여서 음향시스템을 완벽하게 해놓았다고 자랑하지만 막상 가서 보면 스피커 스테레오 패닝도 안되어 있는 황당한 경우가..사후관리의 문제도 크다)

그런데 교인수의 감소와 성도들의 노령화가 현실화 되면서 공간활용에 대한 부분은 이제 심각한 문제로 다가올 거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1000석되는 예배당을 가진 교회가 성도수의 감소로 공간이 텅텅빈다면 크기를 줄여야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게다가 큰 빚을 내서 건축을 한 경우는 이자도 감당하기 어려워 집을 줄여 이사가야 할 수도 있다. 실제 요즘 매물로 나오는 큰 교회 건물도 심심치 않게 뉴스에 나온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교회공간 사용과 공유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논의해봐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교회개척 시점부터 또는 재건축 시점부터 기독교문화사역단체 또는 NPO, 지역사회 등과 교회공간을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이 기획되면 좋겠다. 그것은 치밀한 설계와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을 기억한다면 필수적인 부분이리라.

갈수록 세상은 교회에 대해서 배타적이 되어 간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스스로도 일주일 내내 문을 닫아 놓고 폐쇄적으로 존재한다면 복음이 어떻게 전해지겠는가. 매일 문을 활짝열고 세상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명확한 콘텐츠가 없다면 문을 열어놓아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세상에 얼마나 재밌는게 많고 좋은 공간이 많은가!

교회는 복음을 기초로 하여 세상의 일반적인 문화콘텐츠와 경쟁해도 뒤지 않을 좋은 콘텐츠를 준비하여 교회공간을 오픈해야한다. 최근에 이미 그러한 일들을 의미있게 시도해오고 있는 사례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어 상당히 고무적이다.

구체적 방식과 콘텐츠는 어떤 것이라도 좋으리라. 중요한 것은 폐쇄적, 독선적, 성을 쌓는 방식이 아니라, 공유와 개방, 길을 만들어 협업을 하는 것이다.

요즘 소위 ‘코워킹스페이스’가 뜨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공간을 공유하며 큰 테이블에서 함께 교류하고 서로간의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교회가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 어떨까.

샌프란시스코의 코워킹스페이스 'WORKSHOP CAFE'


10여년전 높은뜻교회가 명동에 청어람이라는 건물을 이러한 용도로 만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다양한 기독교시민단체 등에 거의 무료 또는 적은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곳에 입주한 단체들은 서로 긴밀한 관계로 시너지를 주고 받고 지하의 세미나실에서는 의미있는 많은 기독교행사들이 치러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현재는 그러한 활용은 계속 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코워킹스페이스 문화가 교회와 기독교문화사역을 함께 살리며 상생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는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실제 ‘공간’이 있어야 한다.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본인이 대표로 있는 작은 기독교문화공간 ‘나니아의 옷장’의 최근 사례를 이야기해보려한다. 나니아의 옷장은 ‘옷장’이라는 표현처럼 정말 작은 공간이다. 큰 교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장비들에 그렇게 쾌적하지 않은 환경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매주 금요일 저녁 크리스찬 아티스트들의 라이브 공연을 4년째 해오고 있다.

콘텐츠의 힘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하드웨어를 보러 오는 것도 대단한 건물을 보러 오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벌어지는 라이브 무대, 특히 복음에 기초한 크리스찬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다.

그런데 최근 매주 목요일에 나니아의 옷장에서 무언가 새로운 꿍꿍이를 벌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목요일에 옷장연대’ 여러 주체가 연대한다는 의미와 공간을 open한다는 중의적 의미를 갖고 있다. ‘목요일에 옷장연대’측이 나니아의 옷장에 매월 일정 금액을 후원하고 매주 목요일에 입주하여 대관하는 일종의 코워킹스페이스 개념이다.

나니아의 옷장 입장에서는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며 월세 부담을 더는 이점이 있다. ‘목요일에 옷장연대’측에서는 일주일에 하루만 공간을 빌려씀으로써 자체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는 부담없이 원하는 기획을 펼칠 수 있다.

관련기획자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 교회공간과 문화사역공간에 대한 상상을 펼쳐보았다.

사실 교회는 주일에 예배드릴 공간만 있으면 된다. 마커스 등의 주중 예배모임은 화 또는 목 저녁에 찬양예배드릴 공간만 있으면 된다. 가끔씩 공연 등을 하는 문화사역단체는 한달에 한두번정도 필요할 때에 행사할 홀이 있으면 된다.

그렇다면 하나의 홀이 있고 부속사무실 몇 개가 있는 공간을 함께 마련하여 목요일은 예배팀이 찬양예배모임으로 쓰고 금요일은 공연팀이 쓰고 주일은 교회가 예배공간으로 쓰고, 각자 사무실 하나씩 쓰고..이렇게 세팀 정도가 모이면 월세 부담 등을 1/3로 줄이고 또한 서로의 사역에도 시너지가 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즐거운 상상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의 현실상 이제는 재정부담등으로 교회개척 등 새로운 사역의 시작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수도 있다. (이민사회 등에서는 한교회 공간을 주일 하루에 3교회까지 나누어 쓴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어찌보면 나니아의 옷장은 이미 그런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목요일에는 ‘옷장연대’(기독교문화사역자들의 연합), 금요일에는 크리스찬 아티스트 라이브 공연, 주일에는 주님의 숲교회 예배공간. 

‘목요일에 옷장연대’는 이미 많은 사역주체들을 연결하여 다양한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 만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는 주체들이 그들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서포트해주는 방향성이다.


‘이 달의 ccm’[바로가기]이라는 ccm 신보소개 페이지를 확대운영하여 10인의 리뷰단으로 매주 간격 ccm신보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목요일에 새 음반 음감회로도 이어질 계획이다. 또한 디자이너들을 위한 세미나 도 준비되고 있다. 그리고 예배장소를 찾지 못한 찬양예배 모임등도 정해진 주차의 목요일에 배정될 예정이다. 

'이 달의 CCM' 페이스북 페이지


중요한 것은 이 다양한 기획들이 나니아의 옷장, 또는 본인의 주체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사역자들의 연대과 협업으로 연결되었을 뿐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간’이라는 현실적 구심점이 생겼고 자신의 재정을 헌신하는 분들, 또한 연대를 위해 힘을 모은 귀한 손길들이 있었기에 이 일들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실제 현장에서 뛰어본 사람이면 현실과 디테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거라 말씀 드리고 싶다. 주님이 말씀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이 정말 와닿는다.

문화사역 이야기가 나오면 너무 자주 듣는 말들이 있다. “저도 문화사역 관심 많죠! 저도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건물 하나에 지하는 공연장, 1층에는 멋진 카페, 2층에는 교회공간 등등. 제가 옛날부터 생각해온 아이디어에요! 

좋다. 다 좋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것 만들어 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매월 운영비와 유지구조를 만들어 지속가능성을 이루어내는 것은 정말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

하지만 작은 희망은, 혼자는 할 수 없지만 연대와 협업의 방식으로, 새 시대의 방식으로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글쓴이_이재윤
20대부터 문화선교 영역에 부르심을 느껴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시도를 해왔다. 인디밴드를 만들어 홍대클럽에서 복음이 담긴 노래를 하는 무모한 시도를 하기도 했고, 문화선교연구원에서 기독교 뮤지컬, 영화, 잡지 만들기 등의 일도 했다. 현재는 성신여대 앞 '나니아의 옷장'(옷장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http://facebook.com/narnia2015)이라는 작은 클럽의 사장이자 같은 장소의 '주님의 숲 교회' 목사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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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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