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으로 영화 <라이언> 읽기 : 길을 찾았습니까?




 

인생은 길이다. 어딘가로 향해져 있지만 그 끝은 알 수 없는 길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배창호 감독은 영화 <>(2004)에서 길을 인생으로 표현하였다. 모든 인생이 각자의 길이 있지만, 자신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인지는 의문이다. 그 길을 찾는 힘겨운 여정에 관해 말하려 한다.

 

현실의 길에는 막혀 있는 것이 많아도, 인생의 길은 결코 막히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저지당하고 또 의도적으로 폐쇄된다 해도, 그래서 나아갈 길이 더 이상 없는 것 같아도 생명은 살아있음으로써 기어코 자신의 길을 만들어낸다. 높은 산꼭대기에 위치한 바위에 피어난 들꽃들이며 소나무를 보라. 모든 것을 다 태우고 지나간 자리에 피어난 새싹들을 보라. 이것이 생명의 위력이다. 비단 자연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볼 수 있다. 갈 수도 없고 물러날 수도 없어 그 자리에 마냥 버티고 서 있는 것 자체도 길을 걷는 삶의 하나다. 오히려 그런 길을 걷는 삶이 아직 걸어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열어 제친다. 저항과 해방의 역사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살아 있는 한 누구에게나 길은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절망할 이유가 없다. 라틴어 격언 중에 사는 것이 소망이라는 말이 떠올려진다.

 

그렇다. 인간에게는 살아 있는 한 길은 언제 어디서나 있다. 사는 것은 곧 길을 가는 것이다. 살면서 멈추는 경우가 종종 있고, 심지어 그 기간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있어도, 생명은 길을 가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오랜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도 길을 가는 것이며, 교도소에 갇혀 지내는 사람도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영원히 멈춘다면 그것은 죽음이다. 예수가 죽었다면 더 이상 길을 따를 필요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있고 또 영원히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또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그의 길을 따를 충분한 이유가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어떤 길을 걷는가는 어느 정도 숙명적일 수 있다. 선택의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어린 시기에 이미 뇌의 중요한 기능이 결정되고, 그래서 생각과 정서 그리고 삶의 방식이 어느 정도 결정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결정론자를 자처하는 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선택하기 이전의 시기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는 환경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각인된다. 내가 선택해서 걷는 길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들어선 길이기 때문에 완주하려 노력할 뿐이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갈 수 있지만, 사람은 교육을 통해, 혹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혹은 뜻하지 않은 계기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돌이킴을 통해 혹은 깨달음을 통해 사람들은 새 길로 접어든다. 인생에서 돌이킴과 깨달음은 새로운 길로 향하는 문을 여는 열쇠다. 잘못을 회개하고 또 깨달음이 많을수록 그만큼 인간은 다양한 길을 경험할 수 있고 또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갈 수 있다. 관성에 자신을 맡기지 말고 기회가 올 때 변화를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살아 있어 길을 걷는 동안에 그리고 설령 마땅히 가야할 길이라 여기면서도 사람들은 때때로 길을 잃는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익숙해져 있는 길을 잃었다 함은 큰 충격이다. 낯선 곳을 여행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아이나 노년의 경우는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다. 다른 길을 알지 못하고, 또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깨우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내게 익숙한 모든 것을 떠나 전혀 낯선 세상을 경험하게 되면 누구나 혼란에 빠지고 불안해지고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무작정 길을 나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평가하기를 주저할 까닭이 없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쯤은 길을 잃는다. 주어진 길이 있다 해도, 그 길이 내 길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일탈로 길에서 벗어나보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탈선하기도 한다.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는 한 모든 인간은 설령 길을 걷고 있다 해도 실상은 길을 잃은 상태다. 자신이 길을 잃었음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고,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두 가지에서 한 가지라도 실패하면 길을 잃은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 <라이언>은 어려서 집으로 가는 길을 잃었던 사람이 오랫동안 잊고 지내다가 성인이 되어 어렸을 적 기억을 되짚어가면서 마침내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길을 잃은 아이가 겪는 불안한 느낌은 물론이고 또한 성인이 되어 길을 찾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혼란과 갈등과 번민을 영상으로 잘 표현하였다. 한 사람의 실화로만 여겨질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졌겠지만 말이다. 지금 가는 길이 마땅히 가야할 길인지, 그 길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그 길을 찾는 과정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등으로 고민 중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영화에서 많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스포일러 있음)

영화는 인도 북부 지역 가난한 동네에서 엄마와 형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사는 사루(원래는 셰루, 그 뜻은 호랑이’)라 불리는 소년에 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영국의 BBC 방송을 통해 처음 알려졌고, 2013년에는 A Long Way Home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1986년 유독 총명했던 5살 소년 사루는 기차역에서 형을 기다리다 플랫홈에 멈춰 서 있는 기차에 들어가 깜빡 잠드는 바람에 14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까지 가게 되었다. 자신이 있는 곳도 엄마의 이름도 모를 뿐만 아니라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지역으로 간 사루는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며 다닌다. 사루의 여정을 비추는 영상이 마치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루는 노숙하는 아이들과 지내다 경찰에 쫓기기도 하고, 인신매매단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했으며, 쓰레기 더미에 묻힌 음식을 찾아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였고, 급기야 고아원에 머물면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내다 마침내 호주로 입양된다. 유난히 총명했던 사루는 입양 후 호주 생활에 별다른 문제없이 적응하였다. 대학교에 입학한 사루는 인도 출신의 학교 친구들과 만나 인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고통스럽게 경험한다. 25년 동안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 헤매고 있을 가족을 생각하면 할수록 사루의 현실은 너무 사치스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기억만으로는 도무지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던 사루는 점점 더 절망적이 된다. 그러나 구글 어스의 도움으로 몇 년 동안의 노력 끝에 마침내 어린 시절에 살던 지역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 후 인도에 있는 집으로 가서 엄마와 여동생을 감동적으로 재회하였다. 형은 사루가 길을 잃은 그날 기차에 치여 사망했다.

 

의도적으로 감동을 연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감동적인 이유는 이야기 자체가 주는 감동 때문이지만, 특히 길을 잃은 아이의 마음과 성인이 되어 돌아갈 집을 찾지 못해 번민하는 마음과 또한 이런 자신의 모습이 자신을 입양하여 키워준 부모님을 배신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는 마음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충분히 신파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감정을 절제하며 지켜볼 수 있도록 했는데, 오히려 감정을 절제한 표현이 오랫동안 감동에 젖어있을 수 있도록 하는 요인이 된 것 같다.

 

영화를 되새겨보고 또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고 있을까? 혹시 길을 잃었다는 사실 조차 모른 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현실의 안락함에 젖어 의도적으로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설령 알고 있다 해도 그 길을 찾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는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가 서 있는 위치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한편, 구글 어스가 어린 시절의 집에 대한 기억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면, 인생의 길에서 제 길을 찾도록 돕는 것은 무엇일까? 수많은 성인들의 글이 있고, 또 통찰력 있는 뛰어난 저자들의 책들이 있지만, 그리스도인에게 그것은 무엇보다 성경일 것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탕자가 아버지를 떠올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다 탕진한 그가 엄격한 율법적 세계관으로 가득한 사회에서 그 길을 어떻게 갈 수 있었을까? 어떻게 비난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과감하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성경은 바로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사랑을 제시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내가 마땅히 가야할 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모를 때,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할 때, 우리가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 또 어떤 길을 통해 돌아갈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할 때, 사람들을 의식해서 그동안 왔던 길에서 돌이키길 두려워할 때, 우리가 성경을 읽는다면, 성령께서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해주실 것이다. 말씀 속에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이 있다

 

최성수 박사가 본 <라이언>은?   기독교적 가치     작품성     대중성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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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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