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예배 자료] 대림절 그리고 성탄-주현 절기: 기다림 가운데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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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주현 절기(Christmas-Epiphany Season)는 대림절과 더불어 우리에게 겨울이란 한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겨울의 색을 바꾼다. 성탄목 장식으로 나무에 색을 입히고 빛으로 거리를 채색한다. 교회는 예배당에 대림절 초를 밝히기 시작하고 크고 작은 화환을 만들어 예배당 안과 문 앞을 장식한다.

동시에 이 절기는 성육신과 현현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신비, 구원의 신비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긴 기다림 끝에 있는 사람에게 이 구원의 신비는 터져 나오는 기쁨이요 희망이다. 그러기에 이 절기의 기쁨은 단 하루 만에 얻어지지 않는다. 또한 단 하루 만에 그치지도 않는다. 이 기쁨은 희망이 되어 종말의 그날까지 계속된다. 특히 기다림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성탄-주현 절기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그 역설적 신비의 승리를 온 세상에 선포함과 동시에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 속으로 뚫고 들어왔음을 증언한다. 따라서 마라나타! 아멘으로 절규하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대림절과 성탄-주현 절기는, 기다림과 시간이라는 삶의 역설적 관계 속에서 희망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대림절과 성탄-주현 절기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우선 대림절은 매우 역설적인 시간의 신비를 드러내는 절기이다. “이미 오신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기뻐하는 동시에, “다시 오실그리스도를 기대하며 희망하는, 엄청난 시간의 역설과 긴장을 지니고 있는 절기가 바로 대림절이다. 그리고 이 기다림은 인간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성육신의 신비를 안고 오신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성탄절로 이어지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현현을 경축한다. 특히 주현절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세례를 기념하며 온 세상에 드러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선포한다. 성탄-주현 절기의 기쁨과 희망은 계속 이어지게 된다.





대림절(Advent)

 

초대교회는 이미 오신 주님을 기억하며, 다시 오마 약속하신 주님을 기다릴 수 있었다. “마라나타! 아멘이라 외치며[각주:1] 재림을 기다리던 초대 교회의 기도는 오늘 우리의 기도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없는 듯 살고 있는 이 땅을 향해 오늘 우리는 주 예수여 어서 오소서!”라고 기도하며 대림절(Advent)을 맞는다. 그리스도가 곧 오시니(He is coming soon), 깨어 기도하며 대림절 초에 불을 밝힌다.


주께서 오시리라: ADVENT!

주의 날이 다시 오리라: PAROUSIA!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대림절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already)와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기다림(not yet)을 동시에 기념하는 역설적 절기이다. 즉 육신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기대의 절기이면서, 동시에 다시 오실그리스도의 종말론적 구원 사역을 선포하며 파루시아를 대망하는 기다림의 절기이다. 따라서 대림절의 설교는 예언자적 선포를, 회중의 노래와 기도는 종말론적 희망(eschatological hope)을 담아야 한다. 루이스 보우어(Louis Bouyer)대림절과 성탄절, 그리고 주현절이 의도하는 바는 우리 속에 그 희망, 그 기대가 끊임없이 되살아나게 하는 것[각주:2]이라 강조했다.

그런데 세속화되고 상업화된 사회는 대림절의 그 희망과 그 기대를 박탈하고, 성탄절의 준비 기간으로 대림절을 전락시키고 만다. 기다림과 오심, 그리고 다시 오심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선포하기보다, 성탄목과 산타, 선물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대림절 마지막 주, 성탄이 가까울수록 우리의 주변이 이런 일로 분주하다면, 잠시 머물러 서서 생각해보자. 우리가 바로 대량 소비주의 사회에서 물질주의적 사고에 갇힌 현대인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때가 바로 지금이다. 파루시아의 희망과 기대가 우리 속에 되살아나도록 다시 대림절의 초에 불을 붙이자.


 

<대림절 예배 기획을 위한 제안>

 

1) 대림절에 적합한 기도문을 작성하고자 할 때 연도에 적절한 후렴구는 오소서구원하소서를 이용한다.


2) 대림절은 예배당 장식이 중요하다. 배너와 스톨 또는 각종 장식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색상은 보라색이다. 대림절 화환을 만들고 주변에 보라색 초 네 개,[각주:3] 그리고 중앙에 흰 색 초를 둔다. 화환의 보라색 초를 밝힘으로써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는데 주로 기다림과 기대감이다.


3) 그 외 시각적 상징들은 대림절의 성서 정과를 참고로 성경적 이미지를 활용한다. 예를 들어 좋은 소식을 알리기 위해 사용되는 나팔, 정의의 추 이미지를 사용하거나 마라나타라고 새긴 판에 불을 켜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 전통적으로 대림절 캐럴 예배와 성탄 전야(Christmas eve)에 성경 본문과 함께 드리는 캐럴 예배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대림절 캐럴 예배(Advent carol service)는 방학 기간과 겹치지 않기 때문에 학교 채플에서 자주 드려졌다. 패턴은 매우 간단하다. 적은 인원으로 구성된 찬양대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익숙한 찬송과 캐럴을 택해서 할 수 있다. Carols for Choirs, 1, 2, and 3 (Oxford University Press, 1961, 1970, and 1978)을 참고하면 새로운 캐럴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성경 본문과 더불어 진행되는 캐럴 예배의 경우 아홉 개의 성경 본문을 읽는데, 이 책 1권 부록에 수록된 내용을 참고한다. Oxford Book of Carols 역시 매우 유익한 자료이다. 찬양대가 없을 경우 회중에게 잘 알려진 캐럴로 한다.


5) 대림절 캐럴 예배(Advent carol service)에 다음의 본문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사야 40:1-8, 예레미아 23:5-6, 스가랴 9:9-10, 학개 2:6-9, 이사야 35:1-6, 누가복음 1:26-35, 38(또는 로마서 8:28-29), 마가복음 1:1-15.



성탄-주현 절기(Christmas-Epiphany Season)

 

성탄 전야와 성탄절

대림절의 가장 큰 이미지와 상징이 오심”(Advent)이라면, 성탄절은 오신 주님에 대한 감사, 약속의 실현,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널리 전하는 축일을 테마로 한다. 성탄절은 성탄 전야 즉 크리스마스 이브에서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깨닫지 못하는 온 세상은 저마다의 일들로 분주할 수 있겠으나, 신실한 교회로 모인 우리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기다림, 그 최절정에 순간에 노래한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그 날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펼쳐진다. 이를 기리며 성탄 전야에 다음과 같이 성경 본문으로 함께 노래하는 캐럴 예배를 드려보자.


< 성탄 전야 캐럴 예배: 성경 본문과 함께 드리기 >

 

전주 (오르간 또는 기타 악기)

입례송(대림절 찬송 가운데) --------------------- 성가대

여는 기도(대림절에 적합한 내용으로) ------------- 집례자

주기도문(암송 또는 노래) ----------------------- 다함께

짧은 기도(축복 기도) --------------------------- 집례자

찬송(대림절 찬송) ----------------------------- 다함께

1 낭독 --------- 창세기 3:8-16 --------------- 맡은이

캐럴 부르기 ---------------------------------- 다함께

(계속해서 제2 낭독-캐럴로 이어지며 제9 낭독-캐럴까지 진행)

2낭독(창세기 22:1-8)과 캐럴

3낭독(이사야 9:2, 6-7)과 캐럴

4낭독(이사야 11:1-9)과 캐럴

5낭독(누가복음 1:26-35, 38)과 캐럴

6낭독(마태복음 1:18-21)과 캐럴

7낭독(누가복음 2:8-20)과 캐럴

8낭독(마태복음 2:1-11)과 캐럴

9낭독(요한복음 1:1-14)과 캐럴

기도 ----------------------------------------- 집례자

집례자 :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회중 : 또한 목사님과 함께

집례자 : 기도합시다.

오 하나님, 크신 구원의 은총을 내리사 하나님의 독생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베들레헴에 나게 하셨나이다. 이제 우리가 주님을 본받아,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된 것 같이 우리로 하나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온 세상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것을 보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찬송 ------------------------------------------ 다함께

축도 ------------------------------------------ 집례자 



성탄-주현 절기(Christmas-Epiphany Season)

성탄절(1225)에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과 그로 인해 드러나신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기뻐하며 감사한다. 그리고 주현절(16)이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왕으로 오심, 세례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현현을 더욱 강조하며 기쁨과 희망을 노래한다. 그리고 이 두 절기를 합하여 성탄-주현 절기로 확대하면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Incarnation) 현현하심(Epiphany)”을 기뻐하는 절기가 된다.

교회는 원래 주현절을 먼저 지켰다. 특히 세례의 신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주현절의 가장 큰 상징이었다. 그러나 4세기 후반부터 로마에서 유입된 성탄절(12월 25)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신 날탄생, 세례, 기적 등을 통해 드러나신 주의 현현을 기념하는 날이 서서히 구분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이 날(성탄절)이 전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아주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크리소스톰은 성탄절에 대해 언급한다. 계속해서 그는 주현절이 지니고 있는 특징과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날(주현절)에 예수께서 세례 받으셨고, 물의 본성을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 날을 왜 우리는 주현절이라 부를까? 이는 그가 태어나심이 아니라, 그가 세례 받으심으로 현현하신 순간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왜냐하면 이 전에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각주:4]

오늘날 크리소스톰의 언급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스도가 이미 오셨다. 빛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세상의 어둠은 그 빛을 깨닫지 못했다. 성탄의 신비와 파스칼 신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이미 알려졌으나 지금도 세상은 그분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기에 성탄의 신비는 세속적 상업적 물량주의 공세 앞에 함몰되고 산타와 성탄 선물로 분주한 절기가 되어버렸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반면 주현절은 거룩하고 성스러운 이미지와 상징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성탄절과 더불어 주현절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며, 나아가 주현절은 세례, 동방박사의 별 따라 오심, 가나에서 행한 첫 기적, 변화산상의 모습 등을 통해 나타난 주의 현현을 경축한다. 그러기에 초대교회는 주현절을 부활절, 성령강림절과 함께 가장 숭고하며 장엄한 3대 절기로 지켰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가 주현절을 잘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세례를 통해, 기적을 통해, 이방인에게까지 빛으로 현현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 대단히 중요한 신학적 테마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성탄절과 송구영신 예배, 그리고 이어지는 신년 예배에 더 힘을 쏟는 경향이 있다. 이 거룩한 절기가 세상 달력에 파묻히지 않고, 대림절을 지나 성탄-주현 절기로 이어지길 희망한다.

4세기 시리아의 성인 에프렘(St. Ephrem the Syrian)이 쓴 주현절 찬송 시가(The Hymns on the Nativity)는 초대교회의 풍성하고 다양한 주현절 예식을 짐작하게 한다. 에프렘에 따르면 주현절은 가장 먼저 생긴 축일이며 첫째 되는 날이고, 예수께서 현현하신 날로서 화해의 날이다. 당시 교회는 주현절에 예수의 탄생과 세례를 함께 경축했다. 이 날 하나님은 죄인들과 함께 거하시려고 내려오셨고, 죄인인 인류가 기도할 수 있도록 문을 여셨다. 이 찬송 시가를 읽으며 오늘 우리의 주현절과 초대교회를 비교해본다. 에프렘의 찬송 시가는 풍부한 비유와 상징 그리고 성경적 이미지로 균형 잡힌 신학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거룩함과 성스러움을 잃은 현대인의 마음의 문까지도 두드려 열 수 있는 깊은 이미지와 상징이 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주현절 예배에 사용하기에 조금의 손색도 없다. 에프렘의 찬송 시가를 아래와 같이 적어본다. 오늘도 성령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신비를 노래한다.


 

이 날은 화해의 밤입니다; 어느 누구도 화를 내거나 우울해하지 맙시다.

모든 평화가 깃든 이 밤에 어느 누구도 위협하지 말고 떠들지 맙시다.

 

이 날은 감미로우신 그 분의 밤입니다. 어느 누구도 쓴 소리 내거나 거칠지 맙시다.

겸손하신 이의 이 밤에 어느 누구도 교만하지 말고 거만하지 맙시다.

 

용서의 이 날에 대적자들에게 복수하지 맙시다.

즐거운 이 날에 슬픔을 삼키지 맙시다.

 

달콤한 이 날에 격노하지 맙시다.

침착한 이 날에 격동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현존하시려 오신 이 날에

한낱 인간이 죄인보다 낫다 우쭐대지 맙시다.

 

모든 주의 주께서 하인들 가운데 오신 이 날에

주인들이라도 자신의 하인들에게 사랑스레 굽힙시다.

 

이 날에 그 부요한 이가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으니

부자들 또한 자신의 탁자에 가난한 이와 함께 앉게 합시다.

 

이 날에 우리가 구하지 않은 한 선물이 주어졌으니

우리도 달라고 간구하며 비는 자들을 위해 구제금을 줍시다.

 

이 날은 높은 문이 우리의 기도를 위해 열린 날이니

용서를 구하며 찾는 이들에게 우리 또한 문들을 엽시다.

 

오늘 (변하지 않는 본성을 지닌) 그 분이 자신의 본성을 거스려 변화된 날이니

우리 역시 우리의 죄악된 의지를 거스려 끊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네.

 

본성상 그 몸은 더 크거나 더 작아지거나 할 성질의 것이 아니지만

모든 크기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음은 그 의지가 더 강력하기 때문이네.

 

오늘 그 신성이 인류에 새겨진 날이니

인류 또한 신성의 봉함을 깨치고 들어갈 수 있게 된 날이로다.

 

-Ephrem, The Hymns on the Nativity 1:88. 글 번역: 김 정 (2013)

 


김정  외대 영어과, 장신대 M.Div를 거쳐 보스톤 대학에서 초대교회 예배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장신대에서 교수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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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님, 당신 교회를 기억하시어 악에서 교회를 구하시고 교회를 당신 사랑으로 완전케 하소서. 또한 교회를 사방에서 모으소서. 거룩해진 교회를 그를 위해 마련하신 당신 나라로 모으소서.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총은 오고 이 세상은 물러가라! 다윗의 하나님 호산나! 어느 누가 거룩하면 오고 거룩하지 못하면 회개하라, 마라나타! 아멘.” 디다케 10.5-6. [본문으로]
  2. Louis Bouyer, Liturgical Piety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55), p. 204. [본문으로]
  3. 보라색 세 개와 분홍 또는 빨간 색 초 하나를 쓰기도 한다. [본문으로]
  4. Chrysostom’s Sermon, PG 49.351; Talley,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135-13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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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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