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데이와 기독교 신앙 - 가장(假裝, costume)의 신앙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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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축제의 계절 가을이다. 전국 방방곡곡에는 지방색을 담은 축제가 넘쳐난다. 이런 축제들의 피날레라도 장식하려는 듯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TV, 인터넷과 거리에는 할로윈이 가득하다. 외국에서나 볼 수 있었을 법한 가면과 가장(假裝, costume)들은 이제 서울 도심과 놀이동산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데이가운데 이제 할로윈데이까지 가세해서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자극하며, 유흥과 유희를 부추기고 있다. 과거 발렌타인데이가 유행했을 때도 그랬고, 이후 빼빼로데이가 유행했을 때도 그랬고, 무슨 새로운 데이가 생겨나면 사람들은 그 근본 없는 데이에 대해서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행태라며, 경계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내 그 데이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새롭게 생겨난 데이는 어느새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이제는 할로윈데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온갖 매체, sns와 각종 커뮤니티에는 할로윈데이를 소비하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그렇지만, 그 수많은 데이들 가운데에서도 기독교계가 유독 할로윈데이에 대해 좀 더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할로윈데이는 여타 다른 데이만큼 근본 없는 데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할로윈의 가면가장(假裝, costume)문화

할로윈데이의 기원은 대체적으로 가톨릭 전통의 성인 대축일 전야제의 의미와 켈트족의 이교도 풍습이 결합된 혼합 문화로 이야기 한다. 이렇게 시작된 할로윈의 의미는 점차 변질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하나의 축제처럼 가면과 가장을 통한 유흥과 유희의 장으로 대중에게 인식되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할로윈하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귀신이나 유령 또는 섬뜩한 혐오(?) 분장들을 통해서 자신들의 개성을 표현하는 가장(假裝, costume)문화로 인식되어지곤 한다.

 

이러한 가면이나 가장은 풍속의 전통성과 신성성을 기대하는 삶의 양식에 영감을 주면서 인간과 보이지 않는 존재 사이의 역할이나 대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이때 가면가장은 일상생활 속의 습관과 규칙을 지켜야 하는 타성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자 하는 인간의 본질 내에서 새롭고 다양한 자아를 발견 할 수 있게 만든다.[각주:1]

 

아마도 할로윈데이의 가면가장 문화를 경계하는 마음이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냥 평범한 가면가장에 너무 큰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닌가 반문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최근 등장하는 가면가장의 아이템들은 우선 우리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한다. 왜냐하면 보여지는 첫 모습에 거부감을 느낀다. 상상이상으로 가학적이고 잔인한 비쥬얼들은 보는 이의 심장을 발바닥까지 떨어뜨리기도 한다. 마치 누가 더 잔인하고 가학적 아이템을 보여줄 것인가 경쟁하는 자리같이 보일 지경이다.

 

이런 문화를 소비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하셔도 좋다. 그렇지만 과연 이러한 가면가장의 축제로 인간의 본질 내에 건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리스도의 옷을 덧입자

사실 할로윈(Halloween)이라는 말은 Hallow라는 Holy(거룩한, 성스러운)라는 옛 영어이고, Eve(ning)이라는 말은 전야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할로윈이라는 말은 “Allhallows Eve(ning)”이라는 말, 즉 거룩한 전야라는 뜻이다. [참고 "할로윈데이, 기독교 신앙 안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

 

예수님은 수천 년 전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참 신이자 참 인간으로써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신비였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의 낮아지심이야말로 어찌 보면 가장 거룩한 승리(Hallow Win)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정체성이 아닌가 생각한다. 온갖 가면과 가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그리고 이제는 그런 가짜 형상을 소비하기에 이른 할로윈데이에, 우리는 우리안의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더욱 기억하며 그것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빛의 갑옷을 입자.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할로윈에 가장(假裝, costume)문화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하는 축제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 할로윈 속에 등장하는 세속문화는 이제 일 년에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이미 많은 청소년, 청년들에게 유행이라는 단어로 트렌드라는 분위기로 가장(假裝)돼 그들에게 거부감 없는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과연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중고등학교의 축제, 체육대회 행사를 가보고도 아니라 할 수 있을지 되묻고 싶다.

 

글을 맺으며

여름성경학교를 떠나는 버스 안. 신이 났는지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노래를 가만히 들어본다. 그 시절 티비, 라디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유행가 가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어서 와요. 예쁜 그대. 몇 명이서 놀러왔나요~! 사양 말고 한잔해요. 모든 것이 그대 거에요~!” 순간 마음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밀려 왔다. ‘저 아이들은 저 가사가 무슨 뜻인지는 알고 부르는 걸까?’

 

비단 이런 현상은 우리들이 흔히 접하는 대중가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늘 익숙하게 불러오는 찬송가나 CCM의 가사에도 사실은 많은 신학적 의미와 신앙적 고백이 담겨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노래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된단 말인가?

 

할로윈데이를 상업적으로 소비하려는 기업의 행태까지는 우리가 멈출 명분도 마땅치 않고, 사실 멈출 수 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소비하려는 대중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마음의 자세다. 워낙 거대한 세상의 소비문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의미나 뜻도 모르고 나이트클럽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을 흥얼거리는 교회학교 초등학생들의 모습은 사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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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정민식 목사는 문화선교연구원의 기획간사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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