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로 영화 읽기 <환상의 빛> - 당신을 부르는 빛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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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고레에다 히로카즈, 드라마, 15, 1995, 2016년 재개봉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가지 않은 길, <환상의 빛>

영화는 일본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의 1979년에 발표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소설가의 데뷔작이면서 또한 영화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점은 우연이겠지만, 두 작품 모두가 성공했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조합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작품은 이후 계속 이어지는 작품들(<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걸어도 걸어도>, <공기인형>,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과 비교해볼 때 성격에서 많이 다르다. 가족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같지만 전개방식에선 데뷔작과 다르게 영화들을 만들어 나갔다.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이 작품을 두고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가지 않은 길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원작 소설은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곧 독백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영화는 극도로 절제된 대사와 영상으로만 표현되어 있어 책을 읽지 않은 관객은 홀로 남은 아내의 절절한 심정을 담고 있는 편지의 내용을 오직 영상을 통해 느껴야 한다. 그야말로 보고 느끼는 예술, 영상으로 기록해나가는 영화예술의 특성을 잘 구현한 작품이다. 그러나 책을 읽은 관객이라면 비록 말은 없어도 아내가 겪었던 상실의 고통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필자는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보다는 영화를 감상한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고 있다. 따라서 자세한 이야기 요약은 생략하고 먼저 영화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회자하는 마지막 장면으로 시작해보자.


'죽음'의 길을 따라서

유미코는 우연히 마주친 장례행렬을 조금 떨어진 간격을 두고 따라가고 있다. 그녀는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려 했지만 버스를 그냥 보내놓은 뒤였다. 어디로 갈지 행방을 알지 못했던 그녀는 누구의 장례인지 알지도 못한 채 장례행렬을 무작정 뒤 따라가 간 것이다. 그녀가 얼마나 복잡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아마도 궁금해 할 것이다. 유미코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녀의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남편의 뒤를 따르면서 유미코는 묻는다. 전 남편이 왜 뒤에서 오는 열차를 알고 있음에도 피하지 않고 묵묵히 걸으며 죽음을 선택했을까?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고, 또 재혼하여 알콩달콩 살고 있으니 이제는 잊을 법한 일이지만, 상실의 고통은 그녀를 여전히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질문은 유미코가 새로운 삶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했다. 빚도 없었고, 술도 마시지 않은 상태였으며, 게다가 3개월 된 아들이 있었던 때였다. 한창 행복을 느끼며 살았을 그가 갑자기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그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더욱 힘들어 했던 까닭은 어쩌면 과거 그녀가 어렸을 때에 고향으로 간다면서 치매 걸린 할머니가 집을 나갔을 때 강하게 붙잡지 못하고 놓아버린 것에 대한 자책감과 아무 이유도 모른 채 남편의 자살 소식을 접했을 때 느꼈던 상실감이 서로 상승작용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유미코는 심한 자책감에 빠져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공간에서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걸 기대했을까, 그래서 유미코는 새로운 남자와 재혼하여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살았다. 그럼에도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무의미할 정도로 흐르는 시간조차 상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었다.

 

전 남편의 죽음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며 절규하듯 질문했던 유미코는 남편에게서 대답을 들었다. “[어부였던] 아버지는 바다가 자기를 부른다고 하셨어. 바다에서 빛을 봤다고 하셨어. 누구에게나 그런 빛이 있는 게 아닐까?” 유미코의 전 남편이 철로를 걸으면서 뒤에 오는 열차를 피하지 않은 것은 그를 부르는 빛을 따라갔기 때문일 수 있고, 이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인생은 결국 누군가의 부름에 따라 자신의 길을 선택하여 가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할머니가 고향에 가고 싶다며 무작정 길을 나선 것처럼, 인간은 누구든지 부름을 받고 자기가 가야할 곳으로 가는 것일 뿐, 만일 죽음의 원인 제공자가 아니라면, 굳이 주변 사람이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말이겠다. 유미코는 남편의 말을 듣고 아무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죽음'의 길에서 빛을 보다

유미코는 남편의 말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을까? 아니면 위로를 받았던 것일까? 그녀가 이제는 누구를 따라가야 할지를 알게 된 것일까? 영화가 더 이상 말하지 않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밝게 변화된 유미코의 모습을 통해 그녀가 새롭게 마음을 정리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유미코는 남편의 말을 듣고 자책감으로부터, 어쩌면 할머니와 전 남편의 죽음의 의미를 묻는 번민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전 남편의 죽음 때문에 겪는 상실의 고통에서 유미코는 남편에게서 위로를 받았고, 위로와 함께 비로소 위로를 삶의 의미를 깨달은 셈이다. 할머니도 전 남편도 빛을 따라 간 것뿐이고, 그리고 유미코 역시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그녀가 생각하는 빛을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정말 그럴까?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빛을 따라가는 것일까? 적어도 성경적인 세계관에 비춰볼 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빛은 은유로서 진리를 의미한다. 모든 빛은 하나님에게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빛에 대한 생각과 해석은 각자 다르다. 사람들은 대개 옳다고 여기는 것 혹은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것을 빛으로 삼는다.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며, 때로는 그것으로부터 조명을 받아 길을 걷는다. 모두에게 그런 빛이 있기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으면서도 결국은 제 길을 걷는 것이다. 누구는 돈을 빛으로 삼고, 누구는 권력을 빛으로 삼으며, 누구는 명예를 빛으로 삼고, 누구는 지식을 빛으로 삼는다. 또 누구는 사람을 빛으로 삼고, 누구는 사랑을 빛으로 삼는다.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빛으로 삼기도 한다. 이데올로기를 빛으로 삼는다. 무엇을 빛으로 삼으며 살든, 그 빛을 따르다가 어느 순간엔 그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열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이런 현상을 그레고리 K. 비일은 우상숭배자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우상숭배의 특징은 우상을 닮는 것이라 했다. 무엇을 빛으로 삼든 그 빛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스도인이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길과 빛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 빛은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빛으로 삼아 따르는 사람이다. 남들이 어떤 빛을 따라 살든, 그리스도인이 따르는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셨고, 하나님의 영광을 빛으로 삼아 사셨다. 그리고 오늘날 그를 따르는 자들을 위해 길과 빛이 되셨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과 인격 그리고 삶을 빛으로 삼는다. 그 빛을 열정적으로 따르면서 그 빛으로 빨려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많아 기독교는 비판의 시대를 맞고 있다. 빛을 따라 산다고 하면서 그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빛을 따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빛에 대한 열정이 없다. 신앙이 미지근하다. 빛을 따라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빛을 따르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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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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