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적 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2> 보기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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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신은 죽지 않았다 2>

(해롤드 크롱크, 드라마, 12, 2016)

 최 성 수

이 글은 영화의 줄거리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편집자 주 


고등학교 역사 교사 그레이스는 오빠를 잃은 슬픔에 빠져있는 여고생 브룩에게 성경 말씀으로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오빠의 유품에서 성경을 발견한 브룩은 오빠도 같은 길을 걸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브룩은 역사교재 속 위인에 예수님이 빠진 것에 의구심을 갖고 그레이스에게 질문한다. 예수님 말씀을 인용해 대답을 한 그레이스’. 하지만 그 답으로 인해 그녀는 큰 시련에 빠지고, 실직은 물론 엄청난 민사 소송에 휘말리게 되는데… 변호사 과 함께 학교 이사회와 미국 시민자유연맹에 맞선 그레이스’, 믿음을 위해 피고인이 된 교사그녀는 과연 법정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켜낼 수 있을까? - 다음 영화 소개 


<신은 죽지 않았다> 제작팀은 세상 속 그리스도인시리즈를 만들려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전편에 이어 동일 제목의 두 번째 작품 역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살면서 겪는 문제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편에는 대학 신입생과 철학교수 사이에서 전개된 논쟁을 통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었다. 현실성이 떨어지고, 영화에서 전개된 논쟁 역시 지나치게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야말로 기독교인을 독선적인 카타르시스트로 만들었던 영화였다. 실망을 금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개봉된 영화는 영화적으로 보나 내용적으로 보아도 전편보다 훨씬 나아졌다. 법정 토론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조금은 기독교 우호적으로 전개되어 아쉬웠지만, 논쟁은 훨씬 진지하고 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진 25개 유사사례를 통해 확인된 논쟁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그 이유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학교와 종교의 관계가 인권문제를 중심으로 첨예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장차 한국의 학교 현장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므로, 학교 교육에 몸담고 있는 목회자나 성도들에게 매우 유익할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들여다보기

미국 공립학교에선 종교 수업이 금지되어 있다종교교육은 건전한 교양인을 양성하는 목적을 가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비합리적인 사고를 갖게 만든다는 이유 때문이다비록 미국 개척이 청교도 신앙을 지키려는 의지에서 비롯했다 해도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몰려드는 다국적 다민족 다종교의 현실을 무시할 순 없었다게다가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 재임 기간에 미국에선 특정 종교 수업과 교실에 종교적 상징(십자가)을 거는 일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었다기독교인들의 홈스쿨링과 대안학교 운동이 바로 이즈음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기독교인들을 크게 자극했던 결정이었다그 후로 창조론을 가르칠 수 없을 정도로 학교를 종교의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노력은 더욱 커졌다학교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교사가 자신의 신앙을 학생들에게 전하는 일이 엄격히 금지되었다.



이런 배경을 전제로 전개되는 내용은 이렇다.

역사 교사 그레이스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인권 운동에 관한 수업을 진행하는 중에 학생 브룩에게 질문을 받았다. 마틴 루터 킹의 인권운동이 예수의 원수 사랑과 관련되어 있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브룩은 6개월 전 오빠를 잃은 후에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오빠의 유품에서 나온 성경책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중이었다. 그레이스는 브룩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예수가 했던 말을 구체적으로 인용했다. 이 사실은 학급의 다른 학생에 의해 학교 당국에 알려졌고, 결국 학교 징계위원회가 소집되었다. 그레이스는, 학생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공립학교 교사로서 적합한 것이었는지, 국가와 교회의 분리 원칙을 위배한 것은 아니었는지를 두고 심사를 받는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사건은 쉽게 종결될 수 있었지만, 그레이스는 그것이 자신의 신앙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임을 밝히며 거부한다. 결국 그레이스는 해고 통보를 받고, 공립학교 교사 자격마저 박탈 당할 위기에 놓이게 된다. 많은 공립학교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련해서 선례가 될 수도 있기에 학교가 이런 결정을 내리기 쉽지는 않다. 또한 받아들이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에 그레이스 건은 결국 학교의 소관을 넘어 세상 법정으로 넘어간다.

 

처음 상황은 그레이스에게 불리하게 전개되는 듯이 보였다. 사안이 복잡하고 또 예민해서 국선 변호인 중 어느 누구도 변호하려 하지 않았다. 반면 브룩의 부모를 원고로 내세운 상대편 변호인단은 이미 이런 소송과 관련해서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목사를 배심원으로 선정할 수 있었던 것부터 시작해서, 수업 시간에 언급한 예수를 역사적 존재가 아니라 종교적인 인물로만 보는 것이 문제임을 지적하고, 역사적 인물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전문분야의 증인들 때문에 승소의 가능성은 점점 높아졌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질문을 했던 브룩이 선생님을 보호할 목적으로 스스로 증인을 자처하고 나서면서 사태는 급격하게 역전된다. 다시 말해서 브룩은 증인으로서 자신의 질문에 역사적인 관심에서 비롯한 것임을 주장했지만, 오히려 브룩이 자신의 개인적인 고민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그레이스와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왜냐하면 배심원단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이것이 브룩이 수업 시간에 예수에 관한 질문을 유발한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배심원단은 그레이스가 그동안 진실을 숨겼다고 의심하게 되었다. 게다가 유일한 희망이었던 목사마저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게 되어 배심원단에서 빠지게 된다. 이제는 승소 가능성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변호인은 물론이고 그레이스는 거의 절망적인 상태였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이 벌어지는데, 그레이스 변호인이 마지막 증인으로 당사자인 그레이스를 요청한 것이다. 그레이스를 변호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그녀를 적대적인 입장에서 질문을 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었지만 변호인은 일종의 진내사격에 해당하는 마지막 카드를 사용했다. 그레이스가 개인적으로 예수의 음성을 들었던 말이 무엇이며, 그 말에 대해 당신은 어떤 대답을 했었느냐고 물었다. 변호인은 이미 그레이스와의 개인적인 대화에서 그레이스가 신앙을 갖게 된 이유를 들어 알고 있던 상황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고, 법정에서 그런 말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그 대답은 예수를 언급한 일이 객관적인 일임을 입증해야 하는 그레이스에게 지극히 불리하게 작용할 일이었다. 그레이스는 변호인의 돌발적이고 공격적인 질문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승소의 가능성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절망감을 온몸으로 확인하면서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답해야 했기에 그레이스는 자신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말을 들었고, 그 질문에 대해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신앙고백일 수밖에 없는 그녀의 말 때문에 법정은 동요했고, 판사마저도 불리한 증인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사건의 판결은 이미 결정 난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배심원의 판단은 오히려 그레이스 편이었다. 모두가 그레이스를 공격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앙 양심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낸 그녀에게 동정표를 던졌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진내사격을 통해 변호인이 마지막으로 기대한 것이었다.

 

계속되는 의혹과 질문들

신은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지성적이고 교양인다운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에도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살 수 있을까? 오히려 하나님은 확실히 살아 계시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미 기독교 초기부터 제기되었던 것이다. 유대교 유일신 신앙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민족이나 사회 심지어 가족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할 가능성이 현저함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또한 하나님 자신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없고 또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취직과 승진에서 배척당할 것을 알면서도,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 일에 대해서 오직 신앙 때문에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두가 긍정하는 일에 대해 오직 신앙 때문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이런 질문은 이미 기독교 초창기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박해를 오직 물리적인 핍박으로만 이해하는 상황에 익숙해지면서, 오래 전부터 잊고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잊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며 질문을 회피하고 또 왜곡하며 살았다. 이런 질문이 갖는 심각성과 도전은 신앙고백 때문에 손해와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있다. 한 순간만 모면하면 되는 일에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에게 피해를 입힐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신은 죽지 않았다 2>신은 죽었다고 말하는 분위기에서 신은 죽지 않았고, 확실히 살아계시다(God’s not dead, He’s surely alive)’를 외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신앙 양심을 지키는 것이 무엇이고 또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직면하게 한다. 화려하고 달콤한 말이 아닌 용기 있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살아계심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신다.


영화를 보면서 다니엘을 떠올랐다. 나라의 힘과 신의 힘을 비례관계로 보았던 시대에, 멸망한 나라의 백성이며 포로로 끌려온 다니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로 뜻을 정했다. 도전이 있었고, 위협이 사방에서 엄습했고, 생명의 위기를 겪었어도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용기 있는 신앙 때문에 하나님은 바벨론의 군주마저도 무릎을 꿇게 만드는 신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다니엘의 용기 있는 행위는 하나님이 하셨다는 말로 결코 묻혀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은 비록 살아계시며 영원하시지만, 그리스도인의 용기 있는 신앙행위를 통해 당신의 존재와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이신다고 말한다면 무리일까? 기독교가 개독교라 불리는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올바른 행위를 통해 신앙고백을 지키며 살아가는 기독교인은 얼마나 될까?


기독교적 가치 

작품성 

대중성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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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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