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적 영화 <그녀> 보기 - 공감: 관계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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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관계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출발점

<그녀>

 

최 성 수*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로, 아내(루니 마라)와 별거 중이다. 타인의 마음을 전해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너무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 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해해주는 ‘사만다’로 인해 조금씩 행복을 되찾기 시작한 ‘테오도르’는 점점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네이버 영화 소개]


인간학적인 문제로서 '관계'


관계는 인간학적인 개념이다. 인간을 이해할 때 반드시 고려되기 때문이다. 특히 기독교 인간학에서 관계 개념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인간학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을 대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말할 때 우선되는 개념은 신앙이다. 신앙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개념이다.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매개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존재와 말씀 그리고 그분의 행위에 대한 신뢰의 정도를 가리킨다. 최근에는 인간 혹은 신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생태환경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신앙을 말함에 있어서 문제로 여겨지는 때가 있다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는 환경을 만났을 때이다. 쉽게 공감할 수 없는 환경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거나 간절히 기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 오히려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났을 때가 대표적이다. 이 때 인간은 관계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더 심하면 하나님의 존재는 물론이고 그의 살아계심을 의심하기까지 한다. 신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숨어계신 하나님으로 표현한다.

신앙인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보았을 상황이다. 도대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은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까?

성경은 여러 상황에서 하나님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혹은 위기의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했고 또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숨어계신 하나님을 가장 분명하게 말한 장본인이지만, 또한 신앙의 위기 상황에 직면해서 이렇게 말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55:8~9)


문제는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생각을 헤아리지 못한 인간에게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 앞서 행하시지만, 한참 뒤에 있는 우리는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어떨까? 사람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차원이 다를 뿐이다. 사람 관계에서 문제는 늘 성(姓) 혹은 세대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또 문화와 세계관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에 있지만, 때로는 상대가 변하는 속도를 따르지 못하거나 상대의 변화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을 때에 나타난다. 무엇보다 나를 중심으로 상대를 보려고 할 때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하며 결국 파국을 맞이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할 때는 신앙을 말하지만,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인격을 말한다. 인격이란 상대의 신비를 인정할 때 형성되는 관계다. 나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 또 파악될 수 없는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틀에 가둘 수 없는 존재로 상대를 대하는 관계를 표현할 때 인격을 말한다. 인격 개념의 기원은 인간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다시 말해서 마치 삼위 하나님이 서로 교류하면서도 같지 않고 또 다르면서도 하나인 것같이 인간의 관계도 그렇다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 공감적으로 교류하면서도 같지 않고 또 다르면서도 성령 안에서 하나이다영화 <그녀>는 인간학적인 관점에서 바로 이런 점을 성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대상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로 표현되었지만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다

사람이 아닌 기계를 소통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까? 멀지 않은 미래에 기계가 인공지능을 가지게 되면 가능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소통 방식에서도 문제는 있을 것인데, 그 문제는 어떤 것일까? 굳이 사람을 놔두고 기계와 소통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스마트 폰이 우리와 어떻게 공생하고 또 인간 사회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깊이 생각하며 그 심각성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를 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존즈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 테오도르와 그녀와 함께 보내는 다소 긴 밀어의 시간을 지켜보도록 하면서, 영화 말미에 가서야 비로소 대답의 실마리를 보여준다영화의 내용을 들여다보자.



배경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생활의 일부가 되는 가까운 미래다. 자판기를 두드리지 않고 음성만으로 컴퓨터와 소통할 수 있다.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는 이런 시대에 이런 소통 방식을 십분 활용하며 삶을 영위해간다. 주로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감성을 담아 대필해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적인 소통을 도와주면서도 정작 자신의 감정 소통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아내와는 별거중이고, 유일한 여자 친구로 게임 프로그래머가 있지만 그저 겉도는 친구일 뿐이다. 그의 유일한 소통 대상은 목소리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만다(목소리 역으로 요한슨 스칼렛)이다. 비록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 운영체제에 불과한 존재라도 거의 인격적이라고 할 만큼 누구보다도 테오도르를 잘 이해하고 또 그의 기분과 삶의 리듬을 맞춰줄 수 있다.

영화는 상당 부분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소통 장면에 할애한다.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테오도르가 그녀와 감정적인 교류는 물론이고, 심지어 육체 없이도 성적인 쾌락을 공유할 수 있으며, 함께 여행을 가면서도 전혀 심심하거나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실제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계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말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영화를 SF 장르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기계와 인간의 소통에 초점을 맞춰 영화를 해석한다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존즈 감독은 이미 <존 말코비치 되기>(1999)와 <어댑테이션>(2002)에서 기발한 과학적인 상상력을 발휘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특히 세계적인 인공지능 전문가 커즈와일이 쓴 영화 평은 이 영화를 그렇게 독해하는 데에 일조를 했다물론 보기에 따라서 가까운 미래의 가능성을 두고 기계와 인간의 소통에 대한 철학적인 해석도 가능하다고 본다. <매트릭스>에 대한 다양한 독해방식을 염두에 두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감독의 의도를 비껴가는 해석이다. 감독은 남녀의 소통을 말하면서, 다만 이야기를 담는 형식으로 IT 기술을 도입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관점을 SF에 두는 것은 무리다. 주객이 전도된 독해다. 영화의 주제는 단연코 사람과 사람의 소통에 있다. 새로운 소통 방식을 통해 상처 입은 소통을 치유하고 회복하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남녀의 사랑을 말하는 새로운 방식일 뿐이다.

테오도르와 그녀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정리될 것인지가 궁금했다. 인간과 기계(안드로이드, 사이보그 등)의 관계 문제는 이미 여러 영화의 소재로 다뤄져 왔지만 모두가 기대만큼 그렇게 만족하게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드는 질문이 있었다. 테오도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또 그 사람의 마음을 공감적으로 전해주는 역할을 하면서도 왜 그 자신은 스스로 감정적인 소통을 못하는 것일까? 아니 왜 기계를 소통의 대상으로 삼은 것일까?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는 감정적인 소통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감독의 메시지에 접근할 수 있으며, 영화가 단지 인공지능 시대의 소통방식을 상상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서 사만다와의 관계에서 테오도르는 사람과 사람의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의 변화를 인정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녀의 기술적인 진화를 따르지 못하고 또 이해하지 못한 테오도르는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가 그녀와 관계하는 수천 명 가운데 하나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고통스러워한다. 결국 그녀와의 관계에서 파경을 앞두고 테오도르는 불현 듯 아내와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고, 아내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의 틀에 맞추려고 했던 과거를 반성하게 된다.

나를 고정시켜 놓고 상대를 볼 때는 언제나 상대를 구속하게 만들 뿐이다. 모든 관계에서 사람은 자신의 틀을 가지고 있는데, 틀을 바꾸든가 아니면 상대를 바꾸어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녀>는 인간의 소통 방식을 문제 삼으면서, 서로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상대를 자신의 틀에만 맞추려고 할 때, 소통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공감, 관계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출발점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관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오해는 하나님을 인간의 틀에 맞추려고 할 때 발생한다. 무한자는 유한자에 담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하나님의 행위를 사람의 생각에 담아두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일은 늘 새롭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며, 또한 관계를 정상적으로 갖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녀와 관계가 그녀와의 관계로 변화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다시금 그녀와의 관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인간은 서로의 차이와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도록 자신 또한 성장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인간은 답답한 관계를 만들고,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인간은 불안한 관계를 만든다. 계속 성장하면서도 공감 능력을 잃지 않는 인간이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 낸다.


기독교적 가치 

작품성 

대중성 

※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입니다.


인공지능을 다룬 다른 영화 살펴보기

①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차이점은? <엑스 마키나> 
②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으로 잃어버린 딸을 찾는 아버지의 이야기,  <로봇, 소리> 

최성수  서강대 철학을, 본 라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특히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두고 신학과 영화라는 주제를 깊이 있고, 적절하게 녹여 여러 매체를 통해 독자와 만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문화선교연구원의 취지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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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선교연구원은 교회의 문화선교를 돕고, 한국 사회문화 동향에 대해 신학적인 평가와 방향을 제시, 기독교 문화 담론을 이루어 이 땅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신실하게 참여하고자 합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와 영화관 필름포럼과 함께 합니다.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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